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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폐자본주의적 이상향
글쓴이 retelf 등록일 14-04-07 13:37
신석기혁명에 의하여 인류는 종속 차원에서의 생존을 보장 받았다. 적어도 멸종될 위험은 사라졌다. 하지만 종속이 아닌 개체 차원에서는 반드시 행복해졌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더욱 삶이 힘들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맬더스가 그의 인구론으로 대변해주고 있다. 신석기혁명으로 인하여 그 생존을 보장받은 인류라는 전체 종속은 그 개체수를 급격히 늘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인류는 언제나 극대개체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최저생존수준만을 영위하며 살아왔다. 최저생계비는 지난 수만년간 인류의 숙명과도 같은 법칙이었다.
 
이제 그 수준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인류의 개체수는 이제 더 이상 급속한 증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그 반면 인류의 생산력은 역사상 최초로 최저생존수준을 넘어 돌파하고 있다. 그것이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후기 산업혁명 시대인 것이다. 이 혁명은 적어도 앞으로 수백년이 더 진행될 것이다.
 
인류는 신석기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종속과 개체 두 방면에서 생존을 보장받고 나아가 천국까지 보장받았다. 이제 인구가 아무리 팽창한다 하여도 인류의 생산력은 얼마든지 그 모든 인구를 천국의 성 안에 포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격변의 과정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하여는 처음에는 먼지가 더 많이 날리는 것과 같이 인류는 새로운 천국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언젠가는 이 모든 몸부림이 안정을 찾게 되고 경착륙이던 연착륙이던 천국의 공항에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을 우리 살아 생전에 볼 수도 있고 못볼 수도 있지만 결국 그날이 오게 되리라는 것만큼은 너무도 명백하다.
 
천국에서 화폐는 다시 베일로 돌아간다. 지금은 화폐가 아닌 실물이 베일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은 생산자들과 유통업자의 눈에는 물건이 아니라 돈으로 보인다. 그 상품들이 인간의 생활에 봉사를 하는 것은 최종소비자가 카트에 물건을 담고 계산대를 통과하고 집에 가서 소비되는 그 짧은 간격 뿐이다. 그 외의 원재료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간생산, 최종생산, 유통 등의 과정을 거치는 그 장구한 기간 동안 그 물건들은 물건이 아니라 화폐로 존재한다. 매장 진열대에 올려져 있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화폐인 것이다. 필자는 이를 두고 종종 '산업혁명 이후 화폐가 경제의 전면에 등장하였다'라고 표현한다. 물건은 상품이 되어 화폐의 뒷전에 물러나 그 존재가치가 희미해졌다. 이제는 화폐로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상품을 만들어 그것으로 화폐를 사려고 발버둥치게 된 것이다.
 
고전파 시대에는 이와 정반대였다. 필자가 어린시절이었던 1970년대의 시골마을에서는 화폐 그 자체를 보기 힘들었다. 화폐는 보조물이었으며 실물경제라는 자동차가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 정도의 역할만 했다. 돈이라는 것은 한달에 한두번 우연히 구경해보는 식이었으며 대부분의 경제생활은 실물과 노동의 교환으로 이루어졌고 그 매개는 화폐가 아니라 신용이 담당했다. 이런 시대에서는 지금처럼 화폐를 사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비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생산하고 노동하였다. 즉 이 시대에 있어서 화폐는 본연의 목적 그대로 '물건을 사기 위해' 존재했다. 사람들은 자기자신 또는 공동체 스스로 필요해서 생산하였기 때문에 그 공급이 터무니없이 넘쳐날 이유는 없었으며 설령 어느 정도의 과잉생산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스스로 이를 소비해 낼 수 있었다. 특히 당시는 맬더스의 인구론 시대였기 때문에 남는 재화는 결코 버려지는 일이 없었다. 재화가 1단위 더 생산되면 인구가 1단위 더 증가하게 되는 필사적인 생존함수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생산이 넘쳐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풍년'이었고 축복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풍년이 들더라도 쌀 한톨 버려지는 일은 없었다. 이것이 세이의 법칙이다.
 
밥을 한끼 먹으면 배가 고프다. 세끼 먹으면 배가 부르다. 하루 한시간을 일하면 밥이 한끼 생산된다. 하루 세시간을 일하면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다. 하루 6시간을 일하면 밥 6끼를 먹을 수 있지만 몸이 고달프다. 이 중에서 인류가 선택할 생산양식은 하루 3시간의 노동과 3끼의 식사다.
 
단순한 사회에서는 화폐가 개입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적정 생산양식은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정착된다. 생산과 노동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고도 사회에서는 화폐가 필연적으로 개입되게 되고 이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은 하루 6시간을 일해서 쌀을 6끼분 생산해 낸다. 그리고 이를 시장에 내놓는다. 물론 팔리지 않는다. 쌀이라면 3끼분을 스스로 소비하고 나머지 3끼분을 시장에 내어 놓으면 되지만 장난감을 만드는 사람이나 복덕방을 하는 사람은 모든 생산물과 서비스를 시장에 내어 놓는다. 나아가 쌀을 생산하는 사람 역시 6끼분이 아니라 6만명 분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어 놓으므로 이 중 3끼분을 남겨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이러니 자연적인 과잉생산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다들 망하게 되고 생산물 대부분은 폐기처분된다. 이것이 바로 공황이다. 그리하여 공황의 공포, 또는 지금과 같은 장기침체의 공포에 경악한 사람들은 화폐를 꽉 쥐고 손에서 놓지를 않으려고 한다. 그 결과 최저수준의 생활만 하고 나머지 돈을 호주머니 깊숙히 쑤셔 넣고는 그것을 매만지면서 생존의 안도감을 느끼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경제주체들의 행동은 사회 전체적으로 최저수준의 총수요만을 야기할 뿐이다. 그 결과 최저소비, 최저생산의 악순환이 끝없이 돌아가게 된다. 모든 생산시설이 최저수준에서만 돌아가고 나머지는 유휴상태가 된다. 침체된 경기 앞에서 바짝 얼어붙은 사람들은 절대 주머니에서 화폐를 꺼내려 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정부가 나서서 화폐와 동일한 가치물인 국채를 발행해서 사람들의 얼어붙은 주머니 속 돈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인가를 한다면서 국민체조를 시키고 그 운동량에 따른 임금을 지급한다. 이때 지급된 임금 중 일부는 시장에서의 최저생활 수준의 상품을 구입하는 것에 사용되고 그 나머지는 또 다시 호주머니 깊숙히 숨어버린다. 그러면 국가는 또다시 국채를 발행해서 그 돈을 끄집어 내어 이것저것 국민체조를 시킨 후에 돈을 지급한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의 양은 최저생존수준량일 뿐이며 그 나머지는 또다시 저축된다. 그 저축되는 만큼 국가는 끝없는 국가부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 발행이 곤란한 시점에 다다랐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그 낭떠러지가 바로 재정절벽인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나 한국과 같은 저축성향이 강한 나라들의 상황이다. 미국의 재정절벽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투자의욕 감퇴가 재정절벽의 원인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손주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가장 직접적인 재정절벽의 원인이다.
 
미국이던 한국이던 호주머니 깊숙히 숨어버리는 화폐가 바로 모든 문제의 원인이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면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이다. 그 구조적 모순 속에 숨은 이 돈을 다시 밝은 세상 위로 퍼올려야 한다. 케인즈 이후 지금까지는 국가부채를 가지고 펌프질을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곤란한 시점이 되었다. 이제 그 펌프질은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 자체가 붕괴되어 버린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펌프질 중단을 주장하는 자이고 그 반대파들은 펌프질 지속 내지 가속을 주장하는 자들이다. 둘 다 그 결과는 뻔하다. 국가가 붕괴하거나(반대파대로 한다면) 아니면 시장경제가 말라비틀어지거나(신자유주의에 따르게 되면) 둘 중 하나다.
 
신기하게도 이 두가지 주장 밖에는 없다. 희안하게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다. 국가부채라는 80년 된 녹슨 펌프 이외의 다른 펌프를 떠올리지 못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생각하면 된다.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돈을 내 놓으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개별경제주체들에게 그 돈이 호주머니에 머물러 있으면 이상과 같은 사태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므로 그 돈을 시장 시스템 내로 다시 흘려 보내라고 하면 된다. 당신이 시장에서 빼돌린 돈을 다시 뱉어 내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내어 놓지 않으면 국가가 강제로 뺏어서 이를 시장에 내 보낸다. 남은 방법은 이 방법밖에는 없다. 가장 솔직하고 근본적인 방법이다.
 
결자해지다. 일은 국민이 저질러 놓고 이를 국가더러 책임지라는 것이 바로 견주주의다. 그래서 필자는 민주주의를 견주주의라 부르며 이 나라 국민을 국민으로 부르지 않고 견민이라 부르고 여론정치를 견론정치라 부른다. 만약 이 나라 국민이 견민이 아니라 다시 국민으로 불리워질 수 있으려면 그들은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돈을 다시 시장에 토해 내야 한다.
 
이 일은 마치 국민을 개잡듯이 족쳐서 해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러한 생각은 그 어느 정치인이나 경제학자들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기 시작하면 결국은 방법이 나오게 마련이다. 국민이 되었던 견민이 되었건 그들의 하등의 저항 없이 나아가 그들의 지지를 받으면서까지도 시도할 수 있는 통화량 환수의 방법은 필자의 국가펀드 사상 외에도 여러가지가 나올 수 있다. 다만 태산이 너무 높아 보여서 감히 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고자 이자율만 비비작거리면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국이 오게 되면 사람들은 하루 세끼를 먹는다. 그 직전까지는 그 동안의 굶주림의 반동으로 10, 20끼도 먹으려 할 것이다. 다 좋다. 원하는 대로 먹어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는 결국 세끼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그 연착륙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방법은 본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생각하지 않아서 만들어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하루 1시간을 일하고 한끼를 먹으면 배가 고프고 하루 6시간을 일하면 배는 불러 터져서 좋은데 몸이 고되다. 그리하여 하루 3시간 일해서 3끼를 먹는다. 우리가 화폐를 현명하게 다루어서 도달해야 할 종착지는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화폐는 다시 베일로 돌아가 있다. 이처럼 화폐의 분업 매개기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면서도 적정 노동과 적정 풍요를 이룩하여 인간 본연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제의 최종적인 종착역이다. 이를 이름하여 화폐자본주의적 이상향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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