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라는 제하의 책들이 많다. 물론 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고 인류의 경제적 성장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경제는 인간의 몸에 꼭 맞게 변화되어야 할 뿐이다. 즉 영원한 것은 변화이지 성장이 아니다. 인류의 몸에 맞도록 영원히 옷을 고쳐 입는다. 그 옷이 경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장이라는 옷을 또 경우에 따라서는 축소라는 옷을 입으면서 인류는 그의 삶을 따스하게 감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춥다. 따라서 더 두터운 옷이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인류의 생산력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미 산더미와 같은 목화솜이 창고에 쌓여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제는 그 솜으로 옷을 지어 입기만 하면 된다. 두겹, 세겹이 아니라 백겹의 옷도 지어입을 수 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솜이 아니라 방적기다. 그 방적기가 바로 총수요다.
축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앞으로 아무리 성장을 거듭해도 지금 우리들의 삶은 나아질 수 없다. 그렇다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속으로 들어가 독거생활을 누리면서 '성장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호롱불 아래서 집필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인류는 비행기를 발명했고 그것을 타고 단 하루만에 전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다. 옛날에는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데리고 십년을 걸어가던 길이었다. 이러한 문명의 이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더 발전되어야 한다. 성장은 요긴한 것이다. 문제는 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화불량에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배가 부르다면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배는 고프다. 먹으면 소화가 안되어 배탈이 나고 그래서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므로 몸이 여위어만 가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병든 위장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장을 부정하는 것은 병든 위장이 아니라 음식 탓을 하는 것과 같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성장을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장을 치료하는 것이다.
인류는 축습 내지 절약습성이라는 술에 중독되어 그 위장이 망가져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그 술을 끊어야 한다. 하지만 수만년간 마셔온 그 축습이라는 술을 끊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알코올 대용품이 필요하다. 지금의 경제학이 할 일은 그 알코올 대용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필자가 하는 일 역시 그 일 하나뿐이다. 필자는 이 일 하나만 하고 이 세상을 마감하려 한다.
성장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못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우문에 지나지 않는다. 창고에 솜을 더 쌓지 않으면 따뜻하지 못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을 소화해 내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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