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 나아가 특히 좌파적인 사람들이 금융에 대해 적대적이다. 금융시스템이 이 세상을 필연적으로 붕괴시킬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나름대로 이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더글러스 소령이다.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을 어느 정도 잘 요약해 놓은 녹색평론 제113호 2010년 7~8월호에 실린 글을 이곳에서 인용해 본다. 이곳 클릭
더글러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리모형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류경제학에 편입되는 데 실패했다. 또한 제시할 수도 없었다. 그의 주장은 내부적으로 정합성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이것이 그의 출신성분의 한계였다. 그는 엔지니어였으며 경제이론에 대한, 즉 주류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주장을 ceteris paribus에 입각한 정치한 이론으로 발전시켜 나갔더라면 그는 자신의 주장의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교정한 다음 기존의 주류경제학을 자신의 주장으로 대체할 수 있었을 것이다.
ceteris paribus는 현실경제의 본질을 족집게처럼 파악해 내는 기능과 함께 또 한가지 그에 필적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기 검증이다. ceteris paribus에 입각한 이론모형을 구축하고 이를 전개시켜 나가다 보면 스스로의 오류가 자연스럽게 발견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소령은 이러한 숫자의 정직성에 바탕을 둔 치열한 이론전개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달팽이산책님이 이곳에 올린 "기본소득의 당위성 시리즈 - 01 사회적 배경 " 이란 글처럼 산문 방식으로만 일관했다. 경제의 현실을 직관한 것까지는 좋은데 아쉽게도 거기에서 멈추었다. 그의 불완전한 주장은 그 이후의 치열한 이론적 전개와 검증을 통하여 한차원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섰어야 했지만 그는 'ceteris paribus' , 즉 수리모형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러한 작업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게을렀다. 그 결과 그의 주장은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지금까지 더글러스 소령의 주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 보았고 따라서 충분한 음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불채택"으로 낙착되었다. 더글러스는 미완성의 주장을 남겨 놓고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이 모든 아쉬움의 원인은 'ceteris paribus' , 즉 수리모형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불찰 때문이었다.
기본소득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본소득의 이론은 더글러스 소령의 주장 이후로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단순무식하고 산만한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과거 더글러스 소령의 생존시대와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논란만 일으키고 또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갈 버릴 위험마저도 분명 없지 않다. 따라서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것은 할복과 같은 막가파식 정신이 아니라 ceteris paribus 적 정신이다. ceteris paribus 는 이 세상에 쓸데없는 피바다를 뿌리지 않게 하면서 기본소득의 추진력을 일백배 증강시켜 주게 된다.
더글러스 소령은 이 세상을 통관한 측면도 있지만 간과한 측면도 심각했다. 그는 저축이 공황의 원인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근거로 공황의 시기에는 저축의 사회적 총량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음을 예로 들었다. 그는 경제이론적으로 무지하였기에 공황 시기이던 경기과열 시기이던 저축과 투자는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라도 언제나 일치할 수 밖에 없다는 경제학적 항등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저축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으며 나아가 투자를 초과하지 않는데 왜 구매력 결핍이 저축 때문에 발생하느냐라고 반문하였다. 즉 공황 시기에도 경제전체적으로는 유출(저축)과 유입(투자)가 일치하므로 전체적으로 순유출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저축은 구매력 결핍의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정적으로는 더글러스의 주장이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동적인 관찰을 하는 순간 그 주장은 무너지게 된다. 공황이던 과열이던 간에 그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저축과 투자는 일치한다. 하지만 그 균형 상태로부터 누군가가 저축을 더 늘이기 시작하면 그 균형은 깨어진다. 그리고 그 늘어난 저축의 승수배만큼 구매력이 저하된다. 즉 저축이 투자를 초과하는 동적인 시점에 있어서 그 초과량의 승수배 만큼의 구매력 결핍 현상이 발생한다. 그 결과 경제는 급속히 하강하기 시작하고 결국 저축할 소득마저 말라붙어버리는 시점까지 이르게 된다. 어차피 저축은 소득을 재원으로 하는 것이므로 소득이 말라 비틀어지면 저축도 같이 말라붙게 된다. 결국 저축이 축소되고 이것이 투자와 균형을 이루는 시점까지 그러한 과정이 진행된다. 그 결과 저축과 투자가 일치하는 시점에서 경제는 균형을 이루게 되며 이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공황의 균형인 것이다.
더글러스는 공황의 결과만 보았으며 그 원인과 붕괴의 과정을 보지 못하였다. 이상과 같은 저축과 투자의 균형 붕괴 과정은 이미 80년 전에 절약의 역설이란 ceteris paribus 로서, 즉 수리모형으로 증명되었다. 그 순간 더글러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했다.
그래서 지금 쓰는 이 글은 더글러스를 옹호하기 위한 글이 아니며 그가 기본소득 이론의 창안자였다는 것을 칭찬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실은 금융의 본질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잠시 사잇길로 들어서게 된 것일 뿐이다. 더글러스의 경제학사상 업적은 기본소득도 아니고 'A+B정리' 역시 아니다. 그의 업적은 그가 금융시스템에 있어서 '신용창조'를 발견해 내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맨큐를 위시한 경제학자들은 더글러스의 신용창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학의 화페금융론에서 신용창조는 마치 뚝 떨어진 외딴 섬처럼 다른 경제이론과는 절연된 상태로 단편적으로만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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