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필자는 최근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제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사람이므로 기본소득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런데 거의 100페이지 정도 써나가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도형이 떠오르면서 글쓰기를 잠시 중단하고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2. 기본소득제도의 본질
A. 초기상황
i.도표
어떤 경제의 소득분포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이 도표의 Y축은 1인당 소득수준을 나타내며, X축은 당해 경제 내에 존재하는 국민을 소득수준에 따라 일렬로 세워 놓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래의 M은 OB의 중심점이며 C는 사각형 전체의 중심점이다.
ii. 소득재분배 이전의 상태
최초의 상태를 나타내는 소득분포선은 AB 선이다. 가장 소득이 높은 사람은 OA 의 소득수준을 영위하고 있고 가장 소득이 낮은 사람은 B 점에 위치하는 사람, 즉 소득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소득재분배정책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목적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례세를 부과하여 사람들의 최소소득수준을 OF, 즉 BI수준으로 상승시키는 것이다.
B. 단순한 구빈세의 부과와 그 지급
정부는 OM 에 대응하는 사람들로부터 삼각형 ACA’만큼의 세금을 징수한다. 그리고 이를 MB 에 대응하는 사람들에게 BCB’만큼 복지후생비로 지급한다. 그리하여 이 사회의 소득분포선은 A’B’가 되었다.
C. 기본소득제도의 실시
정부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 소득에 비례하여 OBE만큼의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리고 이를 모두에게 OF만큼 총 OFB’B 를 지급하였다. 그 결과 MB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삼각형 BDB’만큼을 소득수준에 비례하여 지급받은 것과 같다. 그런데 삼각형 BDB’는 삼각형 ACA’와 동일한 밑변(BB’)과 동일한 높이(MB)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두 삼각형은 같은 면적의 삼각형이다. 또한 삼각형 EFD와 삼각형 BDB’는 합동이며 삼각형 ACA’와 BCB’역시 합동이다. 그 결과 삼각형 EFD와 삼각형 ACA’의 면적 역시 같다. 밑변과 높이가 같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제도 시행 후의 소득분포선은 A’B’ 이며 이는 단순한 구빈세 방식의 경우와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D. 과세자료와 수혜자료의 수집
기본소득제도는 과세자료의 수집만 하면 되며 수혜자료는 따로 조사할 필요가 없다. 수혜는 모든 이에게 동일한 액수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구빈세 방식은 과세자료와 수혜자료를 모두 수집해야 한다. 따라서 기본소득세의 지급이 제도의 시행에 있어서 공정성이나 제도 시행의 편의성에서 앞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의 확보를 위하여 사람들 모두의 소득과 재산조사를 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 때 어차피 수혜자료도 동시에 수집될 수 있다. 따라서 실제문제로서는 두 제도 모두 거의 비슷한 행정업무량을 필요로 한다. 다만 간접세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경우에는 굳이 소득의 조사를 할 필요 없이 간접세율과 기본소득수준의 결정만으로 제도를 시행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일체의 행정업무가 불필요하게 된다. 그리하여 간접세 방식은 매우 매력적인 방법이지만 이 경우 재산보유상황의 고려가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오히려 재산이 없는 자에게 불리한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다.
E. 소득재분배와 총수요
기본소득제도를 실시하는 경우 고소득자와 부자들의 소득이 저소득층에 이전되므로 소비성향의 차이에 따른 총수요 부양의 효과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본소득제도만의 효과는 아니며 구빈세 방식 역시 이와 똑같은 효과를 가진다.
3. 결론
그렇다면 구빈세 방식과 기본소득제도 방식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기본소득제도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구빈수준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수준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앞서도 본 바와 같이 구빈세율을 높이면 여전히 그와 똑 같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제도가 기존의 제도와 그 본질을 달리하는 부분은 어디에 있는지 이를 명확히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복지제도의 수준이 너무 부담스러운 수준이라 복지후생비를 추가지출하자는 주장이 먹혀들지 않으므로 이를 기본소득제도라는 이름으로 눈속임을 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필자는 근본적으로 기본소득제도의 취지에 찬성하는 사람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던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바로 이 부분이, 즉 기본소득제도의 독자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여부가 앞으로 기본소득제도가 채택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이라고 생각되는데 혹시 이 부분에 관하여 언급한 글이 있으면 필자에게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본소득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반드시 이에 관한 글이 다수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