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논현동 공동체의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면서 필자는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규모 공동체에 있어서 기본소득제의 채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본래 필자는 이 공동체를 구축하면서 기본소득제도 역시 접목시키려고 하였으며 나아가 공동체의 가장 핵심적인 포지션에 기본소득제도를 위치시키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실천을 위하여 없는 돈에 각종 건축 및 인테리어 자재를 구입하고 혼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의문이란 논현동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이 돈 받을 때만 나타나고 그 외에는 오로지 공동체와 관계없는 생활을 하게 되면 어찌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의 대부분 아니 그 전부를 공동체 외부에서 영위한다. 공동체에서 받은 소득으로 공동체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입, 예를 들어 쌀을 사서 이를 가지고 밥을 해 먹고 자신들의 직장이나 학교에 출근한다. 이와 같이 기본소득을 공동체로부터 지급받지만 지급받은 모든 혜택이 공동체가 아닌 외부세계만을 위하여 사용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필자가 추진하고 있는 논현동 공동체와 같이 소규모 공동체에서만 발생하는 문제라면 다행이지만 이런 현상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심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형식적 국적의 문제는 대략 다음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유럽을 예로 든다. 유럽이란 대륙은 국가간 국경이 없는 곳이다. 여권이나 비자 없이 얼마든지 타지역으로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의 국적이 있는 곳 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페인, 그리이스, 동유럽 같은 저소득 국가에서 기본소득제도가 채택이 되는 경우, 그리고 그 저소득 국가 국민들 중 상당수가 고소득 국가인 프랑스나 북유럽에 거주하고 또한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경우를 상정해 본다. 이러한 경우 본국은 외국에 거주하는 국민을 아무 이유 없이, 단지 국적이 본국에 두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소득의 지원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본국의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고 있는데 외국 거주 국민들은 기본소득의 지원을 받기만 하면서 외국에서 보다 나은 생활환경 속에서 일반 생활 및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는 외국인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과 하등의 다를 바 없다.
기본소득의 관념은 각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적어도 청빈한 생활 만큼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보장해 주는 것이 기본소득의 관념이다. 따라서 개인이 기본소득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이제 더 이상의 경제생활을 청산하는 것까지도 용인하는 것이 기본소득제도이다. 따라서 그가 이 세상 어느 나라에 가서 그 어떤 생활을 하더라도 이를 문제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는 없는 것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서의 경우와 같은 미묘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국내에서 놀고 먹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데 외국에서 놀고먹는 경우 이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놀고 먹는 것 외에 경제생활을 외국에서 영위하는 경우 역시 동일한 미묘함이 발생하게 된다.
필자의 소규모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동체 내부생활만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 외부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경우, 나아가 공동체의 생활은 일체 없으면서 공동체 외부생활만을 영위하는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는 저소득국가 국민이 고소득 국가에 거주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소득의 고하를 막론하고 기본소득을 지급하지 않는 국가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국가 사이에서라면 항상 발생하는 문제이다.
고소득 국가인 스위스의 경우라도 기본소득을 받는 자가 이디오피아의 난민구호 활동과 같이 오로지 외국을 위한 일에만 전념한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된다. 그가 스위스의 환경문제를 연구하거나 적어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는 용인될 수 있다. 하지만 비록 그가 스위스 국내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더라도 오로지 외국만을 위한 일에 전념한다면 이는 사실상 그가 이디오피아에 나가서 거주하면서 그 나라만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과 같으며 그 결과 이는 스위스 후생청이 이디오피아인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이는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도저히 눈감아줄 수 없는 모습으로 비쳐지게 된다. 본래 이디오피아 정부가 부담했어야 할 비용을 스위스가 대신 부담해 주는 것인데 이는 국민적 동의가 없는 국부의 유출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지리적으로 격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여전히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즉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한국사람이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 그는 평생 아무 일도 안하고 그곳에서 청빈한 낙원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외화의 유출이라는 추가적인 문제까지 발생하게 된다. 물론 이 경우 그에게 한국에 주소가 없으므로 그런 사람을 지급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외국 거주기간을 기본소득의 지급기간에서 제외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사업 목적의 장기체류를 하는 경우까지 기본소득 지급기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사업목적인지 아니면 여행목적인지 색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자가 비록 한반도 내에 거주하고 있고 주민등록을 국내에 두고 있더라도 여전히 문젯거리는 존재한다. 그의 국내거주가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예를 들면 그가 외국 회사의 정직원이나 시간제 근무자 또는 인터넷을 통한 아르바이트로서 오로지 외국 회사의 일만 하고 그로부터 보수를 받는 경우가 문제가 될 것이며,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그가 이디오피아 난민수호활동에만 전념하는 경우 역시 문제가 된다.
아직까지 기본소득의 반대진영에서는 기본소득제도의 채택에 관하여 이렇다 할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반론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론의 필요 자체를 느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인데 외관상으로는 반론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앞으로 기본소득제도의 논의가 활성화되면 될수록 이제 제대로 된 반론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필자의 느낌으로도 기본소득제도의 가장 심각한 걸림돌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노동의욕의 상실 문제가 아니라 이상에서 언급한 형식적 국적의 문제등 앞으로 속속 등장할 문제들이라고 생각진다. 노동의욕 상실의 문제는 그저 평범한 일반인의 입과 혀로부터 출발한 반론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의 경험이나 깊이 있는 성찰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나아가 어떤 경제이론적 기초가 있다거나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재반론에 성공하였다고 하여 이제 기본소득제도의 걸림돌이 대충은 제거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항상 밝혀 왔듯이 필자는 독서량이 극히 부족한 사람이다. 어쩌면 이 형식적 국적의 문제를 가지고 심도있게 논의한 사례가 있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논의의 내용이나 결론이 무엇이며 그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출처를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