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c Income Korean Network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 /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광장

제목 기본소득의 당위성 시리즈 - 01 사회적 배경
글쓴이 달팽이산책 등록일 14-02-20 00:34
-기본적 인식과 정의에 입각하여-

(우선 난 학자도 아니고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기본소득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한 사람으로써 알량한 지식이지만 기본소득에 대하여 시리즈로 구성해 보고자 한다. 잘 못 된 것은 과감하게 지적해주시라.)
 
왜 사람들은 '기본소득'를 듣자마자 혹하는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을 열어 버리는 이유와 열린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자.
 
요즘 다시 고전경제학이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있다. 1700년대 초반에 근대경제학을 만들었던 아담 스미스, 인구론의 맬서스, 자유무역의 빗장을 열고 세금의 근거를 마련한 D. 리카도, 도덕적 경제를 주장하던 스튜어트 밀, 굶어주는 자식을 보며 이런 세상을 부셔버려야 한다고 분노하던 맑스까지... 이들이 과거의 유물로 박스에 담겨져 '고전'이라는 타이틀로 구석에 이미 처박혔는데...
지금 다시 '고전'을 꺼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에게 지금의 문제를 물으면 이른바 '좌파적' 말투로 주저없이 '신자유주의'라고 말하다.
최소한의 경제규제를 보장하는 그야말로 작은정부, 국경은 단지 지도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전세계를 시장삼은 거대 복합기업과 다국적기업, 첨단의 가치를 따라서 그리고 그 첨단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에 투자하고 이득을 올리는 거대한 국제금융세력들이 천방지축 날 뛰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라고 쏘아 붙이면서 침을 튀긴다.
모두 주먹을 쥐고 신자유주를 부수어 댈 듯한 이 분위기는 무엇인가?
아마도 리카도가 보면 얼씨구나 할 정도로 세계화되고 개방화된 경제에서 사람들은 왜 지금을 끌고가는 신자유주의를 등지고 박스에서 자꾸 '고전'을 꺼내려 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긍극의 세분화 분업화된 직업이 한번 실패하면 다시 기회조차 주지않는 무서운 사회

2.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발전에 한참 뒤쳐진 그야말로 '고전'스러운 정치와 정치시스템에서 비롯하는 정치적무능

3. 통합된 단일시장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보호무역에 매달리면서 주변국가를 황폐화시키는 근린궁핍화

4. 뉴턴 같은 천재의 출현이 없어서 더 이상 생산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기존의 공장과 기업들

5. 산업혁명이 아니고 에너지혁명이었는데 실상이 은폐되어 문제해결을 경제사이클에서만 찾는 바르지 않은 접근방식

6. 사회발전에 뒤쳐진 정치구조가 적절한 분배에 실패함으로써 사회내 기본적 기회평등의 불가능

7. 위에 것들이 복합적 결과로서 저소비성, 저생산성, 무너지는 일자리와 새로운 생산인 금융이 주는 불확실성 등
 
대충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문제인 것이 아니고 변화에 뒤쳐져서 사회가 만들어가는 생산성을 적절하게 분배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밀의 규범경제는 어디있는가? 분배는 정치의 책임이니 무조건 정치인의 멱살을 잡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위의 3번에서 아직도 자국산업을 위한 보호무역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평생 공항에 가지 말아야 할것이다.. 팽창해가는 경제와 고갈되는 자원으로 최고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단 자유무역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여 보호무역은 정치가들이 진실을 숨기고 투표수 때문에 애국심을 빌어 징징대는 특정세력에게 폭리를 취하게 하는 일종의 자본가와의 폭리공모다. 더하여 자국산업보호를 통하여 주변을 황폐화시키는 근린궁핍화, 우리는 이런것들을 가지고 정치인들들을 닥달해야 한다.

글이 옆길로 빠지는 것 같지만 노무현이 시장을 개방한 진정한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비판은 신중해야 한다. 물론 개발국가에서 유치산업의 보호를 해야 할 필요가 있고 농산물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만... 만일 모든 국가가 완전한 자유무역을 한다면 보호무역을 실행하는 국가의 국민들은 바로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보호무역이라는 자물쇠를 채워서 더 처참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사회에 어느사이 '협동조합(공동체경제단위)'이 많이 생겨났다. 대부분 취약한 경제구조(생산-소비)로 외부충격에 매우 약하다. 더우기 개별 협동조합은 거의 폐쇄적이다. 리카도가 주장하는 비교우위에 절대로 신경쓰지 않고 조합내 회원들끼리 만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위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있다. 조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낮은 이익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수준의 급료를 받고 있는데 돈이 절대적인 세상에서 저임금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이며 그런 생활이 진정으로 행복한 것인가 물어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은 리카도의 충고를 들어야 한다. 어쩌면 협동조합은 싸워야할 거대자본과 기능을 상실한 정치를 외면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협동조합 끼리 거래를 해야 한다. 우위에 있는 것에 집중하고 다른 공동체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상품을 허용해야 한다. 만일 지금처럼 협동조합이 독야청청 노래부르면 아열대기후로 몇 년 후 사라질 소나무와 같이 전부 고사할 것이다. 숲은 어떤 생물과도 영양분을 교환하는 참나무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은 마치 자연의 섭리와 같다.
 
1번을 보자. '단 한번의 실패로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잔인한 사회'가 바로 지금이다. 용기를 내어 노역을 권하는 사람들은 청소부를 모집하는 지자체에 가봐야 할 것이다. 석·박사 학위를 가진 친구들이 줄을 서있고 체력테스트로 쌀가마니를 매고 뛴다. 힘들여 가르친 부모가 원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런 비참함에 좌절하여 아예 취업자체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떤 이유로 비난할 수 있는가? 3D 업종에 외노자가 몰려서 그나마 취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1980년대만해도 3D와 노역현장은 10년을 열심히 일하면 작은 집을 살 수 있었고 힘들지만 아이들을 공부시킬 수 있었다. 지금도 이런것이 가능하다면 피시방에 앉아 있는 젊은 친구들을 몽둥이질이라도 해서 내보내야 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실상은 아니잖는가?
 
중소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 동안 대기업의 횡포에 이윤율은 낮아질 만큼 낮아졌고 이제는 스스로 기술개발이나 혁신할 역량도 모두 상실했다.
과거부터 하던 일이니 천직으로 알고 모든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운영을 포기 못할 뿐이다. 여러분은 이제껏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하여 얼마나 저항했나(불매 혹은 해당회사에 전화항의 같은). 더구나 중소기업을 상대하여 실무를 담당하거나 했던 사람들은 이런 관행을 깨기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반대로 이런 관행에 첨벙 뛰어들어서 촌지를 받고 룸사롱에서 접대를 받았던 것은 아닌가? 이런 상태에서 중소기업의 사주들이 임금인상에 인색하고 더하여 개발의욕도 없으니 희망이 없는 쓰레기 직장이라고  마냥 비난만을 할 수 있을까? 사주들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이윤율이 낮아졌다고 천사표처럼 재산을 헐어서 직원에게 나눠줘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들도 이런 관행에서 피해를 보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져 대기업과 애국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왜곡된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는 사이 우리산업의 근간인 중소기업은 이렇게 황폐화되었다. 그 책임은 바로 여러분 모두에게 있으며 아직도 대기업제품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으로써 이런 황폐는 더 가속화될 것이고 결국은 대기업 독점으로 여러분의 지갑을 강탈해갈 것이다.
 
인터넷이 어쩌면 사람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과거에서 대인관계라는 것은 물리적인 대면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식사라도 한번, 막걸리라도 한 사발 나눠야 진정한 인간관계가 시작되었고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모습을 확인하면 그야말로 유대는 끈끈해졌다. 비록 과거의 인간관계가 비록 기회도 적고 그 형성이 매우 느렸지만 직접적 접촉과 공유의 시간을 가짐으로서 더 단단했다. 우리사회에 학연,지연,혈연의 문제가 끊기지 않는 이유는 아나로그적 인간관계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런 아나로그 인간관계를 대치했다. 아니 파괴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오늘날 짧은 단문으로 주고 받는 SNS는 이제 심도있는 인간관계가 아니고 버스정류장에서 목적지를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 이상은 아니다. 순간에 보고 순간에 호불호를 결정하고 그저 추천이나 리트윗을 해내는 것에서 우리가 인간관계라고 밑줄 칠 중요한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미국을 강타했던 Occupy운동의 실패 중 가장 큰 것은 '조직의 부재'였다. SNS단문에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조직은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정치는 이런면을 파고 들었다.
인터넷이 조각내버린 사회구성집단의 약한 구심력을 이용하여 몇 가지 이슈를 가공하고 왜곡하여 이런 단편적 디지탈 인간관계를 더 철저하게 가속시켰다. 이슈를 중심으로 그 근본적 원인과 가져오게 될 영향은 뒤로 하고 보이는 현상에 매몰시켜 찬반으로 가르고 그렇게 갈린 세력들을 다시 첨예하게 대결케 하였다. 보라, 인류사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무의미한 적대행위가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이렇게 쉬운 대중기만과 지배방법을 동원하면서 효과적으로 정치권력을 유지할 수있기에 정치는 경제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사회의 변화를 외면할 수 있고 그 외면으로 정치와 대중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바로 그렇다. 사회는 발전했는데 정치는 아직도 아득한 고개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점점 지옥이 되어가는 현실을 즐기기라도 하면서...
우리가 지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정치에 대한 증오까지는 아니어도 지금의 정치가 현실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변화에 대응하거나 변화를 극복하려는 정치인이 아니면 도태시켜야 하는 것이다.
보수, 진보는 경제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현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단지 속도의 문제 그 이상은 아니잖는가?

남북이 대치하고 있으니 기득권은 체제유지에 보수를 가장하여 세력화하고 사회적인 갈등을 유발한다. 반대로 진보는 북한에 호의적인가, 체제유지게 반발하여 국가를 부수자고 하나? 어처구니 없게도 진보에게는 '종북','빨갱이'라는 딱지를 자동으로 붙여버린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이 북한을 압도하거나 통일을 염두하거든 우리는 무조건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건전한 사회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비척거리면 북한도 도망가고 통일은 커녕 북한 자체를 중국에 뺃길 수 있고 오히려 김정은이 도발하여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으로 우리경제를 넘어설수 있는 가능성이 불가능한가 생각해보자.
정치의 미숙 혹은 과거지향의 구태가 우리사회를 망치고 있다. 
진보,보수에서 빨리 탈출하자고 마음 속의 '정의'가 우리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지 않느냐?
 
오늘날 우리는 첨단의 시대를 거침없이 말한다.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고도의 혁신에서 비롯한 고도의 세분화이다. 18년의 교육과정이 거의 무용지물인 거대한 지식사회에서 정작 우리가 월급을 받기위해 사용하는 진정한 지식은 늘 부족하다. 아니 더 정교한 것들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너무 깊게 들어간 나머지 주변을 보지 못하여 다른 직업을 넘겨볼 수없기에 실직 후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버린다. 반대로 직장에 억매이지 않고 어렵지만 프리렌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인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산다. 수입이 지속적으로 늘지는 않지만 또 특별히 수입이 줄지도 않는다. 단지 조금 모자랄 뿐...

여기에 고도성장의 한계에서 다시 혁신하지 못하는 어려움은 거꾸로 현재의 경제규모를 줄이고 있어 이로인한 소득의 감소는 소비를 위축시켜 소비부진을 불러오고 소비부진은 결국 생산을 줄이게 하는, 이른바 결과적 생산과잉에 놓여있다. 축적된 자본은 어디로 갈 것인가?
1700년대에 비하여 인간의 수명은 두 배가 넘게 늘었으나 효율과 생산성에만 유효판정을 내려저 이윤증가에 불리한 장년층은 일자리에서 더 빨리 퇴출되고 있으며 이들이 떠난 자리마저 기업은 자동화와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어 이른바 아들도 취업하지 못하고 아빠도 대기발령이며 그 아버지도 멀쩡한 육신을 그져 무임지하철로 소일하는 이른바 3백수시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영생이 불가능해도 더 오래살려는 인간의 의지가 성큼 실현되는 세상에서 거꾸로 삶의 의미를 상실하여 죽음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니겠는가? 
  
정리해보자.
성장이 머뭇거리는 시대, 성장으로 이룩한 부가 재투자할 곳을 잃어 투기를 일삼는 부도덕이 횡행하는 사회, 일자리가 스나미 처럼 사라지고 소비할 여력을 상실하여 모두가 희망을 포기당하는 상태가 지금의 사회이며, 더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 정치가 그나마 그간의 사회적 성취의 재분배에도 실패하여 부익부빈익빈이라는 계층간의 위화감만 증폭시킨 상태가 정말로 지금의 우리사회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인류가 이룩한 부의 총량은 어차피 지구가 가진 물리적 가치총량을 초과할 수 없다. 
이것은 진리와 같다. 자연을 정복하고 땅 속의 자원을 파내어 인간의 노동력으로 만들어낸 자본은 엄청나게 쌓여있다. 
상층부에 집중된 자본은 아래로 내려올 생각도 없다. 아래는 이제 곧 허물어질 것이다.
사회의 하부가 무너지면 상부는 존재할 수 없다. 맑스는 어찌도 하부의 반란을 바라봤을까? 그 불가능성을 왜 주장했을까?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 위에 무겁게 쌓여있는 자본이 무너져 거리에 흩어지길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얼마 만큼이라도 일단은 나눠야 하는 것일까?
 
만일 나누어야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면...그리하여 여러분이 동의한다면 우리는 기본소득을 통하여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은 혁명도 아니고 구세주도 아니며 영원할 것도 아니다.
우리는 맑스도 죽고 그의 반란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다. 더하여 사회적 혼란은 오히려 약자인 우리가 더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이런면에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설득하고 합의케하여 기본소득을 실행해야 하는 것이 안전한 처방이고 현실성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지금 바라는 것은...
마주하고 있는 이 거대한 어둠의 통로를 지혜롭게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다.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게 바로 지금의 정의가 아니겠는가?
유럽대륙에 혁명의 불길이 타올라서 절대왕정이 단두대서 목이 잘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기아, 질병 속에서 대중의 안전한 삶을 위해 고민하던 고전경제학자들... 어쩌면 지금 이들이 주목 받는 것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현대판 1700년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음은 이 기본소득을 위해 보다 근원적인 이론에 대하여 주절거려 보기로 한다.
김연아가 얼음 위에서 춤을 춘단다.
쇠주한잔 따르고 조용히 감상해야 겠다.
좋은 밤 보내시기를....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광장

Total 665
번호 제 목 글쓴이 등록일
380 기본소득의 당위성 시리즈 - 01 사회적 배경 달팽이산책 02-20
379 돌아오지 않는 1달러 retelf 02-20
378 김연아... 醉~ 02-21
377 요 판에도 반칙. 반칙..반칙.. 아으~ 이 지긋지긋한 놈들... 醉~ 02-21
376 경기침체의 주범 (1) retelf 02-22
375 엄마와 첩과 파출부 (1) retelf 02-23
374 기본소득제,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나래 펴다... 醉~ 02-24
373 생산양식과 소비양식 (1) retelf 02-25
372 필자가 여기서 하는 일 (1) retelf 02-26
371 한겨레 1000호 표지기사... 기본소득, 이젠 상식. 醉~ 02-26
370 이번 기본소득제 강남훈안에는 반대한다. (3) 醉~ 02-26
369 음란물의 종말 (1) 그린맨 02-27
368 박근혜의 시대... 醉~ 02-27
367 기본소득의 이론적 근거의 모순점 (5) retelf 02-27
366 이 사람들은 왜 복지혜택을 받지 않고 자살했을까? 醉~ 02-27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다음  맨끝
놀이터추천
스포츠토토
토토사이트
카지노주소
네임드사다리
바카라사이트주소
호게임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 / basicincome@copyLeft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