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언제 시행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헌법개정안은 실은 상징적인 선언행위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헌법개정 없이도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기본소득법안을 발의하여 국회 통과가 되기만 하면 기본소득제도는 실시된다. 즉 이미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기본소득헌법개정안은 이미 통과가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그 현실성 그리고 국민적 여론조성이다.
현재 기본소득 진영에서는 국민의 60%만 지지하면 기본소득은 실시될 수 있다고 여론몰이를 해나가고 있지만 그 여론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현실성 있는 구체적 실행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여론은 그 현실성의 정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요즘 국민들이 많이 성숙해서 옳은 이야기와 틀린 이야기를 구분할 줄 안다. 제대로 된 현실성 있는 실행안이 나오면 여론은 급속도로 기본소득의 실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어느날 아침 박근혜의 생각이 불현듯 바뀌면 또한 그것만으로도 기본소득은 실현된다.
따라서 문제는 그 실시방안의 현실성이고 그 핵심에는 안정근로자들의 담세자 여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에서의 기본소득이 그 현실성을 지니려면 안정근로자 계층이 수혜자가 아니라 담세자가 되어야 하는데 - 즉, 구체적으로는 자본이 60~70%를 부담하고 노동이 적어도 30~40%를 부담해야 하는데 - 이렇게 되면 안정근로자들이 반발하게 되어 국민 60%의 여론몰이에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안정근로자를 수혜자의 위치에 놓게 되면 이번에는 실시방안의 현실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과반수의 사람들이 찬성을 하는 듯한 방안임에도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는 힘없는 방안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현실성 결핍 증후군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한국에서의 기본소득제도의 맹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각 나라마다 기본소득의 실천 전략은 다를 수 밖에 없으며 그 장애물의 모습 역시 각 나라마다 다르다. 후진국의 경우는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빈곤층이라는 명확한 수혜자와 담세자의 구분이 존재하는 반면 너무도 많은 수의 빈곤층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는 그 자체가 부담이 된다. 재원 자체의 절대량 부족이 문제인 것이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노동계층 중 상위의 안정계층이 담세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대신 기본소득의 지급 그 자체가 기존의 선별적 복지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의 목적 그 자체의 모호성이 문제가 된다. 우리 딸아이는 지금 프랑스에 있지만 그곳에서는 집만 빼고는 모든 것이 기본소득이다. 빈민구제소에서의 양질의 식사가 보장이 되어 있고 길거리에서는 아무 곳에나 오줌을 갈기고 담배꽁초를 버릴 수 있다. 거지는 프랑스 최고의 권력자이다.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고 피해 다닌다. 단지 집이 없다는 것이 거지의 유일한 아쉬움일 뿐 생존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런던의 젊은 거지들은 교양도 만점이다. 결론적으로 서양 선진국에서는 캡슐호텔처럼 집만 만들어주면 기본소득의 근본적인 목적은 달성된다. 의식주 모두가 청빈 수준에서 완벽히 보장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서양 선진국에서의 기본소득 논의는 - 요즘 난리가 난 그리스나 스페인을 제외하고는 - 선별적 복지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본소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하는 기본소득 제도 그 자체의 정체성 문제가 제도 시행의 주요 걸림돌 중 하나가 된다.
한국은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그 나라가 선진국인지 아닌지는 그 나라 거지의 행색을 보면 알 수 있다. 선진국의 거지는 - 적어도 마약중독자가 아닌 이상 - 몰골이 제법 멀쩡하고 기본교양이 갖추어져 있다. 반면 한국의 거지들은 아직도 성냥팔이 소녀이거나 장발쟌이다. 비참하다. 아직도 구석기시대 사람처럼 구걸의 수렵생활을 하고 다닌다. 세모녀가 자살도 한다. 따라서 한국은 선진국과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방식이 같아서는 안된다. 즉 한국은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절실한 나라이다. 이 제도가 시행됨으로써 프랑스나 독일을 건너 뛰어 곧바로 자유의 나라로 가게 된다.
이 때 같이 뛰어 넘어야 할 과제가 바로 안정근로자층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들만 동의해 준다면 기본소득 방안은 구체적인 현실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곧바로 시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이 문제를 들먹이지 않는다. 이 문제를 거론하는 그 자체가 정치적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처럼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사람만이 이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