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
“기본소득, 불안정노동시대 위기 극복할 최선의 대안” |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참가기
노동중심 복지제도는 한계 봉착
인도 8개 마을 실험사례 큰 반향
지난 6월27~29일(현지시각) 3일 동안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학에서 ‘경제 (재)민주화’라는 주제로 제15회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세계대회가 열렸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연령, 성별, 빈부, 직업 유무에 상관없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현금소득을 국민 모두에게 보장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에서 출발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50여개국에 회원단체가 있으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도 그중 하나이다. 회원단체들은 지금까지 2년에 한번씩 모여 각국의 복지, 노동, 이주, 성불평등, 재정, 생태, 금융자본주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와 사안을 함께 토론해왔다.
이번 캐나다 대회에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창립자이자 <무상 점심이 뭐가 문제인가?>의 저자인 벨기에의 필리프 판파레이스 교수, 칼 폴라니의 딸이자 경제학자인 카리 폴라니 레빗 박사, 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정치학자 캐럴 페이트먼 교수 등 약 150여명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도 강남훈 한신대 교수, 곽노완 서울시립대 교수 등 회원들과 필자도 함께 발표자로 나섰다.
참가자들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부의 양극화가 전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사적 소비가 증가한 반면, 정부의 공적 소비는 줄어들고 있는 위험한 추세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를 나눴다. 특히 올해는 불안정노동자(프레카리아트)의 급증, 민주주의의 악화, 시민적 자율성의 악화, 노동중심 복지제도의 한계 등에 대한 논의가 관심을 끌었다.
기조연설 중 하나로서 2010~2013년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도의 기본소득 실험 사례에 대한 발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도의 ‘자기고용여성협회’(SEWA) 회장인 레나나 자발라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명예 공동의장이자 영국 런던대학교 개발학과 교수인 가이 스탠딩 교수가 함께 한 발표였다. 이를 보면, 유니세프(UNICEF), 뉴델리시, 유엔디피(UNDP)의 기금을 받아 총 8개의 마을에서 어른 200루피(1인달 생계비 30%에 해당), 아동 100루피를 1년 동안 매달 현금으로 지급한 결과 가정경제와 지역경제가 활성화된 것은 물론 교육참여도가 높아지고 빈곤계층과 여성의 자율성이 강화되는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본소득이 한낱 몽상이 아니라 현실적 기획임을 증명해주는 성과다. 자발라 회장은 “기본소득을 작은 마을 몇 개를 대상으로 낮은 수준으로 실시한 결과가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제대로 실시되었을 때는 얼마나 더 엄청나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쉽게 그려볼 수 있다”며 기본소득의 사회변혁적 효과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이 결과는 올해 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불안정한 삶에 놓인 사람들을 일컫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의 급증을 분석해온 가이 스탠딩 명예 공동의장은 불안정노동자의 급증에 대해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체제적 문제로 인한 결과”라며 “충분한 복지 체제가 마련되어 있는 사회건 아니건 프레카리아트화의 흐름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서 복지국가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 것도 그것만으로는 불안정노동의 급증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이번 대회가 열린 캐나다는 빈곤층 등 소외계층 지원 복지뿐만 아니라 65살 이상 모든 시민에게 최소한 캐나다화 1000달러(우리돈 약 100만원)를 매달 생활비로 지급하고 있다. 무주택 노인에게는 월 30만원 정도에 임대아파트를 주고, 무상 방문 약배달 등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사회다. 그러나 캐나다 의료협회 전 회장인 애나 리드 박사는 “질병의 70%가 빈곤과 연관이 있는데 캐나다에서는 전 국민의 6분의 1, 전체 아동의 7분의 1이 빈곤상태에 놓여 있으며 75살 이상의 여성 노령인구 또한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며, 국민들이 질병에 시달릴수록 사회적 비용 또한 커진다는 것을 모든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캐나다에서 1970년대에 실시했고 현재 하나의 기본소득 모델로 제시되고 있기도 한 “‘연소득보장정책’(Guaranted Annual Income)을 실시하는 동안 입원·사고율이 감소했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경제 체제로서 자리를 잡은 이래 모든 사람들은 임금노동자나 자본가로서 살아가는 삶만을 상상해왔고, 국가는 이것과 다른 예외적 상황에 놓인 개인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복지제도를 운용해왔다. 스웨덴, 핀란드 등 수준 높은 복지제도부터 미국 등 낮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의 사회안전망은 ‘정규직종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소위 노동복지(workfare)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1997년 이래 한국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한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형식이 급격히 퍼지고 있고, 노동빈곤층(워킹푸어)과 비고용 혹은 무소득 상태의 노동(인턴, 영화 스태프 등) 또한 급증하고 있다. 지구 전체가 이런 상황에 놓인 가운데, 기본소득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강력하면서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는 추세다.
몬트리올/글·사진 박이은실
한신대 연구교수·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