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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화관람 늘고 기부는 줄고 |
글쓴이 |
달팽이산책 |
등록일 |
14-03-29 06:51 |
영화관람은 늘고 기부는 줄고....
오늘 자 한겨레신문 기사내요. 제목이 쪼금 거시기 합니다. 하필이면 영화하고 기부를 대비했을까나? 좀 아리까리해서리..잠시 살펴보니... 제목대로 영화수입은 늘고 있으나 기부같은 사회보호성 수입은 줄었다는 이야기네요.
근데 영화는 아주 개인적인 것이라 기부와 같은 '공공선'을 대비시켜서 얻은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누구든 재미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영화관을 찾는 일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고요. 더구나 모든 현대적 기술과 자본이 집중되는 영화를 소비한다는 것은 생산과 소비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의 건강성을 보이는 것이겠죠.
기부는 어떤가요? 사실 기부는 시스템에서 반란 같은 것입니다. 돈이란 정확하게 생산과 소비의 사이클에서만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 사이클을 벗어나 '옛다 이거로 밥도 사먹어라'고 던져주는 것은 자본가에게는 생산성을 위한 투자금을 빼돌리는 것이고, 소비자에게는 구매할 돈을 허투로 써버리는 것이니 분명하게 사회적 범죄에 해당되는 것이죠. 더구나 기부는 사회적 의무입니다. 이는 사회를 구성한 개인에게 권해지거나 의무되는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정부나 국가 같은 권위기관이 시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사는 '누가'라는 주체는 거론하지 않고 기부가 줄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관람이 늘었다는 면에서 일반 개인들의 행태를 분석한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는 '법에 의한 지배'만이 가능한 '공화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좀 더 효과적인 시스템인 공화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개인은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공공선'의 달성을 제도적을 하겠다는 것이죠. 공화제를 '대의제' 혹은 '투표'로 이해할 수 있으나 이는 표면적인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를 거론하면 될 것 같아요. 아렌트는 '거대하고 적극적인 인민의 정치참여'를 주장하죠. 이것이 바로 공화주의가 목표하는 것입니다. 많은 인구로 인하여 직접민주제가 어려우니 간접으로라도(대의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공화제입니다. 만일 개인이 스스로의 자유에만 몰두하여 정치참여에서 멀어지면 공화제는 비틀거립니다. 그래서 1978년 6월 민주화 이후에 한국의 민주주의를 분석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한 진보적 지식인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란 책도 나왔던 것이고요.
영화관람은 개인적인 자유를 향유하는 것입니다. 정치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죠. 기부는 공화제에서 개인의 역할이 아닙니다. 이는 분명하게 정부의 역할인 것이고... 더 문제는 성공한 공화제에서는 기부같은 수혜는 처음부터 필요가 없는 것이죠. 역설적으로 기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회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두들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조삼모사식 땜빵이나 사건사고를 쫒아다니며 스트레스를 풀고있죠. 기본소득도 단순하게 '돈을 나눠준다'는 측면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기본과 철학은 아무도 말을 안합니다.
내가 취에게 '공화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라했더니...
한 마디...
"형님 그것 투표잖아요?"...
더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분명하게 공화주의 시스템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하려는 정치체인데도 말입니다.
자본가에게 '너희는 비도덕적이고 나쁘다'고 지적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있는줄 압니까?
바로 '공화주의'에 있습니다.
영화관람이 늘고 기부가 줄었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단순하게 인민들의 스트레스만 더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무늬만 공화제인 이 왜곡된 사회를 다시 공화제로 돌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은 그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요....
김경희님의 아주 얇은 책 '공화주의'라는 책도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은 미국을 대표하는 공화주의자 이고 최장집 교수도 공화주의자 이고...요즘 정치권에서도 조금씩 공화주의에 대한 이야기기 가끔 들리고 있죠.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문제의 근원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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