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적 기획으로서의 기본소득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
번역: 노기연 영문번역팀
기본소득에 대한 대부분의 토론은 두 가지 쟁점 주위를 맴돈다. 첫 번째로는 다양한 정의에 관련된 개념에 대해 기본소득이 어떤 규범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가 이며, 두 번째로는 세율, 동기부여, 노동시장 등등과 같은 문제를 포함하는 경제적 고려사항들의 여건 하에서 기본소득이 유지가능한가라는 실용주의적인 문제이다. 이것들이 중요한 쟁점들이기는 하지만, 나는 다른 종류의 질문들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즉, 어떤 방식으로 보장된 기본소득을 자본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주의적 도전의 일부로 고려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며, 아마도 엉뚱한 질문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사회주의라는 이념이 최근에 지적인 면에서나 정치적인 면에서 매우 호소력을 잃어 왔기 때문이다. 대안적인 경제제도를 위해 작동 가능한 계획이라는 의미에서, 또는 정치적으로 획득 가능한 목표라는 의미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그럴법한 체제 대안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주의적 비판을 공유하는 많이 이들에게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나는 사회주의 제도의 명확하고 잘 정리된 모델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인 도전을 말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시도하고자 하는 바는, 일군의 반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적 원칙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며, 운동[조직]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사회주의적 방향을 향하도록 하는 데 이 원칙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우리의 목적지가 어딘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는 나침판은 가지고 있지
사회주의 제도의 명확하고 잘 정리된 모델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인 도전을 말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 있다. |
만, 출발 지점부터 마지막 목적지점까지 이르는 전체 경로가 제시되어 있는 로드맵road map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물론 위험들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우리가 건널 수 없는 구덩이와 마주칠 지도 모르며,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장애물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세계로부터 떠나기를 원한다면, 미리 알려진 목적지보다는 [떠나는] 방향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는 방식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관점을 거부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들이 (노쇠한 우익들의 표현을 사용해 보자면) 얼마나 “사회주의적”인가에 따라 [같은 자본주의 사회들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르다는 것과, 사회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가치들과 해방의 열망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강한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에 사는 것이 그런 요소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것보다는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얼마나 멀리 이러한 [사회주의적] 원칙들을 밀어붙일 수 있는지, 자본주의 체제가 허용하는 가능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더 멀리 전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점에서 자본주의적 제도와 날카로운 단절이 필요할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열어 놓는다. 나는 자본주의가 허락하는 제도권 내에서 오랜 기간에 걸친 사회주의적 방향으로의 이동[의 효과들]이 누적되어 자본주의 자체의 변형을 만들어낼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 그러한 과정이 비가역적 한계에 이를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른다. 나는 그러한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지 잘 모른다. 나는 실제로 그것들이 대답될 수도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거역할 수 없는 해답이 부재하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명확한 목적지 없이도 진보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산출해 내는 원칙들을 도표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이 자본주의에 대해 사회주의가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동의한다면, 이제 제기되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는 원칙들이 무언지가 될 것이며, 기본소득[확보 운동]이 어떻게 이러한 운동에 기여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도전의 세 가지 원칙들
사회주의적 나침반을 정의하는 많은 가능한 원리들이 있겠지만, 여기서 나는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1. 자본과 관련된 노동의 힘을 강화하기
이것은 사회주의 사상, 특별히 그것의 맑스주의적 유형의 중심 주제 중의 하나다. 즉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이 지배계급인 생산시스템이고, 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이 지배계급인 시스템이다. 그렇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회적 변화는, 이것이 직접적으로 자본 그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을지라도, 사회주의를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서 생각될 수 있다. |
다면,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회적 변화는, 이것이 직접적으로 자본 그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을지라도, 사회주의를 향해 움직이는 것으로서 생각될 수 있다.
2. 노동력을 탈-상품하기
이것 역시 사회주의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친밀한 주제이다. 자본주의 특징 중의 하나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생존수단을 획득하기 위하여 노동시장에서 고용주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때로는 노동의 상품화로 언급된다. (또는 아마도 더 정확히 말해서 노동력의 상품화라고 언급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일할 능력이 마치 상품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어떤 사회적 공급 과정을 통하여 시장 외부에서 자신의 필요품을 가질 수 있는 정도만큼, 그들의 노동력은 탈-상품화된다. 그러므로 상품화는 변수[變數]이며, 사람들이 노동력의 상품화와 탈-상품화 정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가 이윤을 최소화한다기 보다는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을 직접적으로 지향하는 경제라면, 그러한 노동력의 탈상품화는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으로 사고될 수 있을 것이다.
3. 사회적 잉여의 사용과 경제활동 조직의 우선순위들을 정하는 데 있어서 시민사회의 힘을 강화하기
이러한 세 번째 지점은 덜 익숙하며, 아무래도 더 논쟁적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국가주의라는 부르려 하는 것과 사회주의라고 부르려는 것 사이의 대조를 의미한다. 둘 다 비자본주의적인 경제조직의 형태들일 것이다. 국가주의에서 국가권력은 사회적 잉여를 여러 선택 가능한 우선순위 항목들에게 배분하고, 생산과정의 방향을 잡는 데 있어 일차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소비에트 연방과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 명령 경제라는 고도로 집중화된 관료적 시스템일 것이다. 대조적으로 사회주의에서는 막연하나마 “사회적 권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사회적 권력은 국가주의보다 덜 명확한 관념이고,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내가 여기서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회적 권력에 뿌리를 둔 어떤 사회주의라는 관념은 두 가지 중요한 통념을 포함한다. 첫째, 사회적 권력이 사회적 잉여의 사용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거시적 수준에서 투자 우선순위가, 시장에서의 사적인 경제적 권력의 행사나 국가를 통한 권한을 가진 관료의 지시 행위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왕성한 대중적, 참여 민주적 심의를 통하여 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미시적 수준에서, 시민사회의 집단적인 연합[조직들]이 [사회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경제적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 그러한 [이윤지향 생산이 아니라] 필요지향 생산은 시장을 통해서나 관료에 의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집합적인 행위자들의 자기 조직화를 통해 조직되어야 한다.
사회주의가 이윤을 최소화한다기 보다는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을 직접적으로 지향하는 경제라면, 그러한 노동력의 탈상품화는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으로 사고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에 대한 사회적 권력이 증가할 때,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
이는, 어떤 토론들에서 “사회적인 경제”라고 불리는 것에 상응한다. 이것은 육아․노인보살피기․가정의 서비스, 레크리에이션 서비스, 그리고 광범위한 문화, 예술적 활동과 같은 것을 포함할 것이다. 사회적인 경제에서 이러한 서비스의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며, 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강조되어져야 할 것이다. 즉 여기서 쟁점은 육아와 노인 보살피기 서비스를 시장이나 국가 제공에서 가족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경제는 국가나 시장이 아니라 집단적인 연합[조직]이 그러한 서비스들을 공적으로 제공하는 데서 구축된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커다란 범위에서의 투자배분에 대한 민주적 심의와 스스로 조직한 자발적인 연합적 경제활동 조직을 결합시킨다. [위의] 다른 두 원칙들에서처럼, 경제에 대한 사회적 권력의 세기는 변수[變數]이고 그래서 그러한 권력이 증가할 때,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기본소득과 사회주의
만약 우리가 이러한 세 가지 원칙들 - 자본에 비해 노동의 힘을 강화하는 것, 노동력의 탈상품화, 그리고 경제적 활동에 대한 사회적 권력의 강화 - 을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동의 기준으로서 받아들인다면, 뒤따라오는 다음 질문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제도적 개혁들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어떻게 이들 원칙들에 기여할 것인가이다. 윌리엄 그라이더William Greider[미국 네이션지 통신원, 저명한 기자]가 주장한, 노조에게 기업의 권력 행사에 대해 통제를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 연금 개혁은, 어떤 점에서는 세 번째 원칙[즉, 경제적 활동에 대한 사회적 권력의 강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은 어떠한가? 나는 기본소득은 이들 세 가지 기준들 모두에 해당하는 사회주의적 개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적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정도는 두드러지게는 기본소득의 수준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탐구되었던 온갖 익숙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경제적인 기준에서 기본소득이 지속가능하냐에 달려있다. 당장을 위해 나는 두 가지를 가정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우쭐거릴 수준은 아니지만 남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즉, 그 급부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즉, 임노동자 생활을 안하는 것]이 유의미한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두 번째 나는 이런 급부 수준이, 노동자에게나 투자자에게나, 장기에 걸쳐 그 급부를 지속불가능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동기부여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할 것이다. 이러한 가정들에 근거하는 한에서, 기본소득은 사회주의적 기획들의 세 가지 원칙들 각각에게 기여할 것이다.
1. 기본소득과 계급의 힘의 균형
기본소득은 이들 세 가지 기준들 모두에 해당하는 사회주의적 개혁으로 볼 수 있다. 후한 기본소득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힘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후한 기본소득은 무엇보다도 세 가지 이유로 자본에 대한 노동의 힘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기본소득이 있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시장이 더 타이트해지는 정도에 따라, 개별노동자들의 교섭에 있어서의 지위가 증가할 것이다. 두 번째로 일반적으로 말해서 노동시장이 타이트할 때, 노동자는 집단적으로 더 좋은 교섭 지위에 있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로 기본소득은 일종의 무조건적이고 고갈될 수 없는 파업기금인데 이 역시 노동운동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노조 조직 과정을 규율하는 더 유리한 법률과 함께 도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즉 이런 유리한 법이 도입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기본소득은 이런 방식으로[즉 기본소득이 무제한적인 파업기금으로 기능하면서] 노조 결성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역량을 제고시킬 것이다. 노동조합 지지자들이, 어떤 시기와 몇몇 곳에서, 다양한 이유로 기본소득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때로는 노조원들은 노동조합이 복지에 적대적인데 대해 이와 동일한 이유로 기본소득에 대해 반대한다. 즉, 이 기본소득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게으른 사람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장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의 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반대] 주장도 있다. 즉, 그것은 기본소득으로 인해 노동자가 더 이상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만약 노조의 유일한 기능이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현실적인 우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노동과정의 조직화, 노동조건, 노동쟁의에서의 정당한 대우 등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한, 기본소득은 노동조합의 기능을 전혀 위협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보증된 임금이 제공하는 증가된 투쟁 역량은 집단적 조직화 기능에서 있을 수 있는 미미한 역량감소에 비해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2. 노동의 탈-상품화
기본소득의 가장 분명한 효과는 부분적인 노동의 탈-상품화에 있다. 이것이 기본소득에서 가장 관심을 끈 측면이다. 그것은 필리페 판 빠리 Pillippe van Parijs[기본소득을 주창한 루뱅 가톨릭 대학 교수 - 역주]의 날카로운 호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자유”에 구체화되어 있다. 만약 지속 가능한 기본소득이 문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생존의 수준을 제공한다면, 이것은 노동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제 없이도 민중들의 기본적인 요구가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사회적 경제를 위한 잠재력 키우기
처음 보면, 기본소득이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적 권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기본소득의 가장 분명한 효과는 부분적인 노동의 탈-상품화에 있다. 만약 지속 가능한 기본소득이 문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생존의 수준을 제공한다면, 이것은 노동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제 없이도 민중들의 기본적인 요구가 충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사회주의 원칙과 무관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기본소득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득이전이고, 개인이 이것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것은 순수하게 개별적인 개혁처럼 보인다.
나는 이것이 기본소득의 함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제한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그것이 노동과 자본 사이의 역관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방식들을 통해 기본소득이 집단적인 결과물을 낳을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을 보았다. 나는 기본소득이 또한 확장되고, 심화되는 사회적 경제를 위한 조건들을 창조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적 시장의 공급이나 국가의 공급과는 구별되는 경제적 활동을 조직하는 대안적인 방식이다. 그것의 특징은 이윤극대화나 국가의 기술 관료적인 합리성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집단들이 조직되는 생산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활동들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 제공이나 아주 노동 집약적인 많은 것들이 포함된다. 집단적 행위자들이 사회적 경제에서 마주치게 되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이러한 서비스 제공자들을 위한 괜찮은 수준의 생활수준을 확보해 내는 것이다. 이런 괜찮은 생활수준 확보는 물론 예술에서의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그것은 다양한 종류의 보살핌 활동들을 위한 효과적인 사회적 경제 서비스를 조직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본소득은 실질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 기본소득은 잠재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부문에서 사회적인 경제로의, 자본주의 축적에서 사회적 축적으로 불릴 수 있는 것 - 필요 지향 경제 활동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사회의 역량 축적 - 으로의 사회적 잉여의 대량의 이전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서는, 강화된 사회적 경제가 부딪히는 문제들 중 하나 - 기본적인 생활수준 확보와 자본주의적 노동시장에 대한 참여 사이의 필연성을 깨뜨리기 - 를 푸는데 기여한다. 그 기본소득 [제도]에서는 사회적 설비에 대한 자본의 투여나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노동 이외의 요소의 투입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 자체로서, 기본소득에 의한 사회적 경제[부문] 생산의 풍부화는 노동집약적인 서비스에 제한될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기본소득은 정치적 활동, 지역사회 조직화, 사회운동을 위한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이런 활동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결국 사회주의 방향으로 운동의 공간을 확장하는 광범위한 개혁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이 모든 것이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희망사항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하든 사회주의는 오늘날의 미국의 정치 상황에서의 의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물론, 넉넉한 기본소득이 부분적으로 노동을 탈-상품화시키고, 노동의
기본소득은 정치적 활동, 지역사회 조직화, 사회운동을 위한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결국 사회주의 방향으로 운동의 공간을 확장하는 광범위한 개혁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
힘을 강화하며, 비시장적인 사회적 경제를 확장시킴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도전을 재-활성화시키는 데에 의미 있게 기여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옳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본소득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의제에서 더욱 더 멀리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우울한 우익 자본주의의 승리주의 하에서 영원히 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안에서조차도 진보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정치의 사례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날 때는 기본소득은 그것이 사회정의의 근본적인 쟁점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들 때문에라도, 자본주의 그 자체의 더 폭넓은 변혁에 기여할 수도 있는 방식들 때문에라도, 본격적인 의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