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경제를 단순화하면 두개의 경제주체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가계와 기업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단순한 두가지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는 지난 100년간 이렇다 할 발전이 없었다. 경제학은 그야말로 발전이 더딘 학문이다. 달팽이산책님은 앞전 <기본소득의 당위성 시리즈 - 01 사회적 배경>이라는 글의 중반 부분에서 '사회는 발전했는데 정치는 아직도 아득한 고개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지만 그 아득한 고개 뒤의 한참 더 아득한 고개에서 뒤따라오고 있는 것이 실은 경제이론이다.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는 발전된 생산력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경제이론의 부재에 있는 것이지 정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탓을 돌리는 것은 재료도 갖다 주지 않고 왜 음식을 내어 놓지 않느냐고 요리사를 타박하는 것과 같다.
가계는 유출 집단이다. 즉 경제시스템 내에서 회전하는 화폐를 땅밑, 즉 자산시장으로 빼돌리는 근본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가계가 투자를 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 반면 기업은 유출을 일으키기도 하고 유입을 일으키기도 하는 집단이다.
경기가 상승할 때에는 너도나도 돈을 벌기 위하여 투자를 한다. 이것은 유입이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실패를 한다. 경기가 아무리 좋아도 사업에 성공하는 사업가는 열명 중 한명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로또에 당첨된 사업가가 언론에 보도되게 되면 그를 뒤따르는 투자가들이 줄을 서게 된다. 그리하여 투자는 증가하게 된다. 나는 이들을 파산투자자들이라 부른다.
여기서 로또에 당첨된 투자자를 한번 살펴보자. 그는 돈을 벌었다. 돈을 잃을 때는 본전만 잃지만 돈을 벌 때에는 본전의 수십배 수백배를 번다. 그리하여 100명의 파산투자자들이 유입시킨 통화량이 1명의 성공투자자의 수중에 모이게 된다. 문제는 돈을 벌고 난 후의 이들의 행태이다.
대개의 신참 로또 당첨자들은 이 돈을 뒤로, 즉 자산시장으로 빼돌린다. 부동산이다 증권이다 아니면 해외별장이다 등으로 쌓아놓고 그동안 돈없던 서러움과 맻힌 한을 푼다. 흔히 사회에서 이들을 졸부라 부른다. 그들은 평생의 소원이 자신의 명의로 된 10층 빌딩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이들을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먹튀 투자자라 부른다. 소득시장으로 돈 몇 푼 들고 들어와 그 수십, 수백배를 들도 자산시장으로 튀어버린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이나 그 외 일반적인 정상적인 투자자들이 있다. 뻘쭘한 이야기지만 실은 필자도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들 정상 투자자들 역시 돈 몇푼 들고 들어와 대박을 터뜨린다. 하지만 거지 출신들처럼 돈에 한 맻힌 설움을 풀기 위하여 번 돈을 자산시장으로 빼돌리거나 하지 않고 그 돈을 가지고 각종 다른 사업에 투자한다.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본다. 입맛대로 다해본다. 그리하여 그들이 번 돈은 소득시장 내에서 빠져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돌고 돈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는 정상투자, 먹튀투자, 파산투자 이 세가지의 투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계는 근본적으로 먹튀다. 그들은 임금을 받아 그 중 일부를 저축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어떤 한 국면에서 파산투자의 양이 먹튀투자의 양보다 크고 나아가 그것이 가계먹튀마저도 보전하고 남을 정도가 되면, 즉
파산투자자의 투자 > 먹튀투자자의 유출 + 가계먹튀
이렇게 되면 경기부양이 일어난다. 정부의 개입이 없이도 자연적으로 경기부양이 발생한다. 끝도 한도 없이 경제는 팽창한다. 반면 그 부호가 반대가 되면 경기는 침체하게 된다. 이 역시 끝도 한도 없기에 이런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하는 수 없이 정부가 개입해서 자산시장에 가서 국가부채를 팔아다가 먹튀들이 빼돌린 통화량을 회수해서 소득시장에 갖다 뿌릴 수 밖에 없게 된다. 만약 그대로 놔 두게 되면 결국 나중에는 먹고 튈 마지막 한방울까지 없어진 상태에서 - 이론적으로는 - 다음과 같이 된다.
0 = 0 + 0
이것이 공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 다다르기 한참 전에 대통령의 모가지부터 날아가게 되므로 정부는 그의 유일한 재산인 화폐와 국가부채발행권을 남발하여 다음과 같은 상태에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파산투자자의 투자 + 재정적자 = 먹튀투자자의 유출 + 가계먹튀
이 상황에서도 먹튀투자자들과 가계먹튀들은 정부가 뿌려준 돈을 끝도 한도 없이 자산시장으로 실어다 나르게 된다. 결국 경제는 재정절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현재의 세계적 상황은 위 세가지 변수들, 즉 파산투자와 먹튀투자, 그리고 가계먹튀의 세 변수의 양이 극소화된 상태에서 재정적자로 그 갭을 메우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파산투자가 극히 위축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처럼 로또를 사러 달려드는 놈들의 숫자가 극히 적다 보니 로또에 당첨되는 놈들도 별로 없게 된다. 다들 움추리게 된다. 흔히 이를 시장의 동결상태라 부른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이어지는 무지몽매한 가계먹튀들의 자위행동이다. 그들은 탄탄한 철밥통을 바탕으로 하여 예금, 주식, 보험, 부동산 등 각종 형태로 재태크를 한다. 현재로서는 - 적어도 한국이나 일본에 관한 한 - 이것이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는 주된 원인, 즉 국가부채와 재정절벽의 주된 원인이다.
가계먹튀가 아닌 먹튀투자자들이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는 경우는 경기가 한창 달아올라 있을 시점에서 그들이 번 돈을 자산시장으로 먹고 튈 때 뿐이다. 그리하여 이론경제학에서 등장하는 경기변동의 주된 원인은 바로 이들 먹튀투자다. 반면 아직까지 그 이론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경제에서 나타나는 지속적인 경기침체의 주된 원인은 가계먹튀들이다. 그리고 이들 두가지 현상의 뿌리에서 그 상부구조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 필자의 앞전 글에서 언급하였던 바로 그 '돌아오지 않는 1달러'이다. 경기의 활황 시점에서 경기를 급락시키는 근본요인, 그리고 경기를 끝도 한도 없이 침체시키는 근본원인이 바로 자산시장으로 빼돌려져서 돌아오지 않는 그 1달러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필자는 현재의 경기침체의 주된 책임이 부패한 정치가나 돈을 쌓아놓고 있는 자본가 보다는 미개한 경제학 이론과 민중 먹튀들에게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해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