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한국은 많이 발전했다. 필자는 요즘 젊은 여자들 틈에 파묻혀 사는데 그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어쩌면 서양 아이들보다 더 진보적이다. 단지 까지기만 한 것은 아니고 그 역동성이 분명 미국이나 유럽 여자들보다 강하다. 그야말로 영자의 전성시대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를 위시하여 우리들 부모 세대들은 아직도 구세대 사람들이다. 그래서 자식을 끔찍하게 키워왔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만간 손주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있다. 벌써 태어나지도 - 실은 임신도 하지 않은 - 손주를 데리고 어디를 놀러갈 것이며 무엇을 사먹일 것인지 즐거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이럴 때면 웬수는 징그럽다고 소름끼쳐 하지만 웬수 역시 일단 손주를 안고 나면 금방 생각이 바뀌게 될 것이다.
도대체 우리 손주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아왔던 세계는 아무리 보아도 지옥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손주 손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손주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재산이란 것은 극도의 신경을 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한여름 아스팔트 바닥의 드라이아이스처럼 휙하고 사라져 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평생 돈 문제에 인생의 상당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돈 문제가 없는 세계, 그것이 필자가 우리 손주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는 달팽이산책님, 미선씨, 취~님, 보라소님 그 외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건희 보다도 더욱 평안한 경제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웬만한 벤처황제 경험 있는 사람이면 다들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 최소한의 기본소득이 보장된 사회에 사는 일반인은 지금의 이건희나 그 아들인 이재용보다도 인생 전체적으로 유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점이다.
이 세상은 자기 혼자만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인류나 그 외 다른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다. 내 부모자식만 잘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이웃이 울고 있는데 우리집만 웃음꽃이 만발할 수는 없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 바로 인류,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이다. 할일 없어서 부처나 예수가 중생을 구제하네, 십자가에 못박히네 한 것은 아니었다. 나만 부자이고 행복하고 그 외 모든 다른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그런 사회를 상상해 보라. 그 안에서 자기 혼자, 자기 가족들만 행복감을 느끼고 미소를 지으며 살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고통은 나누고 함께하게 되어 있다. 부처나 예수 역시 고통 속에서 같이 신음했던 사람들이었다. 똑같이 불행했다.
결국 죽기 전까지 할 일이란 이 세상을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일 밖에는 없다. 나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 그 행복은 아무 실효성 없는 일시적인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는 결국 우리 손주 손녀들이 나 죽은 후에 울고 지낼 수 밖에 없게 된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남겨 준다 할지라도 행복까지 보장을 해 주지는 못한다. 빌 게이츠가 돈을 갖다 버리는 것은 제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피해나 고통을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주변이 모두 행복한 사람들로 둘러 쌓인 사람은 아무 가진 것 없이도 이건희, 이재용보다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