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좌파> 11월호에 실은 글 [스위스의 '기본소득을 위한 국민발의'] 피디에프 파일 전문입니다. 지난 10월 4일 발의요건을 충족시킨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에 관하여 경과, 현황, 쟁점, 전망에 대해 간략하게 쓴 글입니다.
글에서 자세히 밝히지 못한 점을 보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노령 및 무연고자 연금'(AHV)의 최소수령액은 2500스위스프랑에 근접하는 액수이고 최고수령액은 최소수령액의 2배를 초과할 수 없기 때문에 5000스위스프랑에 근접하는 액수입니다. 연금을 폐지하고 기본소득으로 통폐합하면서 2500스위스프랑을 기본소득 지급액으로 할 경우에 노령층의 기본소득은 연금최소수령액으로 하행평준화 되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이 점은 스위스총연맹이 기본소득스위스네트워크와의 토론회에서 지적한 것으로 노조의 유보적인 태도의 원인입니다.
2. 기본소득스위스네트워크의 홈페이지와 간행물에 등장하는 대략적인 재정모델의 두 번째 문제는 청산제도(Verrechnungsystem)입니다. 즉 노동소득에 별도로 과세하지 않고 현행의 임금에서 2500스위스프랑을 공제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월급이 5000스위스프랑인 경우 고용주는 그 중 2500스위스프랑을 국가계좌에 이체하고 2500스위스프랑만 임금으로 지급합니다. 월급이 7500스위스프랑인 경우는 2500을 빼고 5000만 받게 됩니다. 두 경우 모두 원천 공제된 2500은 기본소득의 형태로 국가로부터 지급됩니다.
- 이러한 청산제도는 근로소득세라 할 수 있는데, 문제점은 근로소득 과세라는 점으로만 볼 때 근로소득불평등을 시정하는 누진세의 정반대이며, 정률과세도 아닌 정액과세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즉 월급이 2500스위스프랑인 경우 월급은 모두 국가계좌로 이체되고 대신에 기본소득을 받게 되겠는데 월급에 대한 근로소득과세율은 100%입니다. 월급이 5000스위스프랑이면 과세율은 50%고, 월급이 10000스위스프랑이면 25%가 됩니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부담이 모두에게 2500스위스프랑이기 때문에 월급이 많으면 많을수록 과세율은 줄어드는 결과가 나옵니다. 이는 분명 소득과 과세의 연동이라는 원칙에 어긋납니다.
- 다만 이러한 제도가 실시될 경우에 또 다른 효과가 생길 수도 있는데, 월급이 5000스위스프랑 이하면 임노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월급이 2500스위스프랑인데 일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월급 2500스위스프랑은 원천징수되기 때문에 그가 일하든 하지 않든 소득은 2500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정규직 노동의 실질적 최저임금을 현재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수준인 월 4000스위스프랑으로 올리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규직 임금노동자의 숫자가 유지되면서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현상이 아니라 정규직 임금노동자 숫자는 줄지만 그들의 최저임금은 인상되는 현상이 함께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 기본소득 제도의 장점은 양자선택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사회부조냐 저임금노동이냐의 양자선택을 없애고 기본소득을 받으면서도 일을 할 수 있고 탈빈곤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스위스네트워크가 생각하는 청산제도는 현실적으로 이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많은 사람이 4000스위스프랑 이하의 정규직 노동으로부터 철수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정규직 월급이 4000스위스프랑이라 해도 그 중에서 노동의 댓가로 실제로 받는 것은 1500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마지 2500은 노동과 무관한 기본소득입니다. 이 결과는 불안정노동으로 1500을 벌고 기본소득으로 2500을 받는 것과 동일합니다. 동일 소득이라면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후자(불안정노동 1500+기본소득 2500)가 오히려 유리합니다. 즉 기본소득은 양자선택적인 복지제도가 아니라는 틀은 청산제도가 있든 없든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청산제도에 따른 원천공제액인 2500스위스프랑 이하의 일을 하는 프레카리아트 층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최대의 문제점일 것입니다.
3. 연금제도 통폐합과 청산제도로 메워지지 않는 재정부족분을 해소하기 위하여 헤니(Daniel Haeni)부가가치세를 현행 8%에서 20%로 올리자는 주장을 합니다. 좌파인 직(Sigg)은 여기에 반대하며 부자증세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부족부분은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연금통합이 하향평준화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기본소득 지급액을 올리든지 연금을 통합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연금과 통합하지 않을 경우에도 부족분은 늘어납니다. 부족분을 해소하려면, 청산제도에 대한 재검토와 부자증세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청산시스템이나 연금통폐합 등은 기본소득스위스네트워크에서 논의되었던 시안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이 개선된 재정안이 등장할 수도 있고 반대의 결과로 귀착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스위스의 기본소득운동은 재정모델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 못합니다. 2011년에는 생테세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발의운동이 주어진 기간 안에 필요한 서명인 숫자를 채우지 못하여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국민발안 운동은 재정 모델은 차후에 의회에서 논의하도록 일임하고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헌법개정을 요구하는 형태를 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