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민 운영위원장님께서 부대 신문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기본소득, 새 세상을 여는 열쇠
금민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뜨거운 감자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그 틈사이로 기본소득이라는 싹을 띄우는 이가 있으니 바로 금민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이다. 수년째 기본소득 제도의 필요성을 피력해 온 금민 운영위원장이 기본소득의 논의 배경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편집자 주 |
기본소득은 일체의 심사 없이 지급된다. 자산 심사도 없고 일자리 여부도 따지지 않는다. 노동 강제를 비롯한 어떠한 반대급부도 부과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대비된다. 선별적 복지제도에서는 어떤 이가 가난하거나 일자리가 없는 경우에만 현금 급여가 제공되지만, 기본소득은 가난하든지 부유하든지, 일자리가 있든지 없든지, 봉급이 많든지 적든지 상관없이 모든 이는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지급된다. 기본소득은 개별적 행위나 특수한 조건과 무관하게 오로지 국민 또는 사회구성원이라는 보편적 자격에만 근거한 소득이고, 보편적 자격과 결부된 무조건적 권리로서 일종의 국민배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국가에서 전면적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그 나라의 모든 국민과 일정 기간 이상 그 나라에 거주하고 경제활동을 해온 사회구성원은 모두 기본소득을 받는다.
기본소득은 이처럼 무조건적 소득이며, 모두에게 부여되는 보편적 소득이고,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별로 지급된다. 기본소득은 정기적이어야 하며, 또한 기본소득과 더불어 모든 이가 인간다운 생활과 사회 참여에 충분한 소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찬반 여부를 떠나서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소득의 원천을 오직 노동으로 보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노동과 관계없는 소득을 모두에게 부여하는 일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본소득과 같은 해결방식이 정말 필요한지, 또는 기본소득은 과연 현실화되고 유지될 수 있는지 등의 질문이 진지하게 토론되어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불안정-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가 사라진다
첫 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기본소득은 이 시대의 위기에 대한 해법인가? 또한 이 시대의 위기란 과연 무엇인가?“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일자리 없이는 소득을 얻을 수 없는 사회에서 해고는 분명 살인이다. 그것은 경제적 의미의 살인일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의 경우처럼 해고자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1998년 이후 한국 경제에서 해고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 해고가 살인이라면, 단 한 번도 정규직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 또는 사회가 이대로 굴러간다면 생애 단 한 번도 정규직이 되기 힘든 청년들,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은 좀비인가? 경제사회의 주체로서 살아있다는 것을 정규직과 등치시킬 때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불안정노동자들은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죽지 않는 존재인 좀비이고, 좀비는 늘어만 간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노동인구의 상당 부분은 이미 안정적인 봉급생활자가 아니라 불안정노동자이며 거의 모든 국가의 성인인구의 1/4은 고용, 직무, 작업조건, 숙련, 임금소득, 교섭대표성의 모든 측면에서 과거의 노동자계급과는 전혀 다른 불안정노동자이다. 50년대와 60년대 서구에서, 그리고 1997년 이전의 한국에서 가능하였던 사회, 비자발적 실업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고용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실업자와 영세자영업자를 더하면 한국에서는 이미 경제활동 인구의 60% 이상이 불안정노동에 시달린다. 정규직도 유연화 압박과 정리해고 등 점증하는 불안정화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점은 불안정화만이 아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취업자 기준으로 2,193시간, 노동자 기준으로 2,111시간으로 회원국 중 가장 길다. 실노동시간으로 볼 때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모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2012년 기준으로 59.7%에 그쳐 70%를 상회하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교할 때 지나치게 작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까지 꾸준히 상승해 오다가 1998년 이후에는 꾸준히 떨어지는 추세이다. 그런데도‘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노랫말이 여전히 타당한가? 생태적 한계, 세계시장의 한계, 협소한 내수 기반 때문에 고용 창출을 위한 생산 확대는 이미 불가능하게 되었다. 일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하려면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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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노동절 대회 현장에서 인천사람연대 활동가들이 기본소득제도의 실현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에‘먹지 않으면 일할 수 없다. 그리고 일자리는 어디 있나?’고 대답한다. |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은 이미 있는 좋은 일자리를 나누고 나쁜 일자리를 없애는 길밖에 없다. 좋은 일자리를 나누려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적게 노동해야 한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시간단축이 소득수준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진다면 노동소득분배율이 하향조정 될 것이고 빈곤인구의 확대만을 초래할 것이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어떻게 될까?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기본소득은 소득이 급격히 저하되지 않도록 하는 보상 기능을 한다. 반면에 비정규직과 불안정노동자에게는 노동 외 소득이 생길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일자리로의 이동 기회도 제공한다. 기본소득은 모두가 더 적게 일하면서, 모두가 좋은 일자리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불안정-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는 사라지게 된다.
일자리인가 수급권인가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1999년에 제정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숫자는 2012년 약 143만 명, 전체 인구의 2.8% 정도이다. 현행 제도는 1인 가구에 468,453원, 2인 가구에 797,636원을 지급한다. 가구구성원 수가 늘어날수록 액수는 커진다. 물론 지급액은 노동하지 않는 것을 가정한 금액이다. 2인 가구의 경우 한 사람이 노동으로 월 40만 원을 번다면 지급액은 797,636원-400,000원인 397,636원이다. 이때 총소득은 797,636원+400,000원인 1,197,636원이 아니라 노동하지 않을 때의 총소득인 797,636원에서 단 한 푼도 달라지지 않는다. 부분적인 노동소득이 있기 때문에 정해진 수급액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되는 조건부수급권자는 일을 해도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일자리가 생겨 월 100만원을 벌 수 있게 되었다고 치자. 202,364원을 더 벌려고 장시간 저임금노동에 시달릴 것인가 일하지 않고 797,636원만 받을 것인가 사이에서 망설일 것이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제도에는 노동 강제가 따라 붙는다. 노동능력이 있는가를 심사하여 공공근로에 참여시킨다.
하지만 공공근로는 저임금 일자리이며 참가자의 빈곤탈피는 불가능하다. 어차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빈곤층을 없애자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시장탈락자에 대한 최소안전망으로서 빈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에 사라진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자산 심사나 노동 강제없이 무조건 지급된다. 부양의무자 심사도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세 모녀자살 같은 비극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1인 가구 수급액인 468,453원을 기본소득 지급액이라고 가정해 보자. 실업자부터 재벌총수까지 누구나 매월 468,453원을 기본소득으로 받는다. 월 90만 원 노동소득을 얻는 사람의 경우에 총소득은 기본소득을 합한 1,368,453원이다. 즉 기본소득을 통해 총 소득이 늘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복지함정, 즉 복지제도가 빈곤을 재생산하는 일은 없어진다. 기본소득은 일자리냐 수급권인가의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 나누기가 이루어지면 빈곤층의 총소득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충분한 재원, 안정적인 지속가능성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은 19.3%와 26.0%이다. 조세부담률을 영국 수준인 30%를 상회하는 정도로 올린다면 아동을 포함하여 모든 국민에게 대략 30만 원을 매달 지급할 수 있다. 증세항목은 배당 및 이자에 대한 과세, 토지세, 생태세 등이 될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기본소득이라면 1,0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의 노동시간단축과 노동시간상한제 도입과 연계함으로써 일자리 나누기 효과를 만들 수있다. 향후 국민적 동의가 확산되면 조세부담률을 35%까지 올리고 지급액을 인상하며, 아울러 노동시간단축을 대기업 노동자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 수준에서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도 있다.
결국 재원에서도 지속가능성에서도 문제는 없다. 문제는 오직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이다. 멀쩡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사회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좀비가 다시 인간이 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오늘날의 사회적 생태적 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보여주지 않는가? 모두가 더 적게 노동하며, 더 많이 자유로운 활동시간을 가지고, 일자리를 나누며, 인간다운 삶과 사회 참여에 충분한 소득을 얻는 사회, 고용을 위해 생산을 확대할 필요가 없는 생태적인 사회를 원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