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 비극 방지 기본소득법'도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도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일체의 심사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 도입하라.
커다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세 모녀 자살 사건에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반응하고 있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인 김진표 의원은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는, 대략 238만 명에 달하는 비수급빈곤층에게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고 2018년에는 30만원까지 수급액을 늘리는 ‘세 모녀 비극 방지 기본소득법’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은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 조항의 완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법률개정안을 신당의 법률개정안 1호로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신자유주의의 한국 사회가 도달한 극한지점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고 정치권이 여기에 반응하는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무조건적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는 여러 단체와 개인들로 결성된 기본소득공동행동(준)은 정치권의 이와 같은 대응이 미봉책에 불가하며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먼저 김진표 예비후보가 말하는 기본소득은 이름만 기본소득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하겠다.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일체의 자산 심사나 일자리 여부와 관계없이, 또한 노동 강제나 그 밖의 반대급부가 부과되지 않아야 한다. 무조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특징은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제1지표이다. 실상 김진표 예비후보의 발상은 비수급빈곤층까지 수급권을 확대하는 방안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수급권을 확대한다고 해서 자산, 일자리, 소득 등 빈곤 여부에 대한 심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김진표 예비후보의 ‘세 모녀 비극 방지 기본소득법’에는 개별적 지급이라는 기본소득 개념에 접근하는 발상이 포함되어 있다. 기본소득은 가구별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지급되며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자 조항은 이와 같은 개별성 원칙에 정면 배치된다. 또한 세 모녀 자살 사건이 부양의무자 조항과 연관되는 만큼 이 조항의 폐지와 개별적 지급으로의 전환은 지당한 해결책이다. 그런데 김진표 예비후보는 비수급빈곤층에 대한 지원책에서는 개별적 지급을 약속하면서 정작 기초생활수급권의 부양의무 조항의 폐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부양의무조항은 존치하면서 비수급빈곤층에게 대한 현금지급은 개별성의 원칙에 따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신당이 법률개정안 1호로 발의하겠다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부양의무 기준의 완화이다. 부양의무자 범위를 현행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에서 ‘1촌 직계혈족’으로 축소하고 부양의무자가 부양능력이 없는 경우와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받을 수 없는 경우를 법률에 명시하자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범위의 축소와 완화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혜 범위를 넓히는 조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세 모녀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단은 어설픈 것이다. 저임금 장시간 불안정 노동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빈곤층은 확대되어 갈 것이고, 그럼에도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일체의 심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에서는 수급권자는 일정 규모 이하로 통제될 것이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부양의무자 문제만을 두고서도 축소와 완화가 아니라 폐지가 답이며 개별적 지급이라는 기본소득의 원칙을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 기본소득공동행동(준)은 현행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선별적 복지가 아닌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1998년 이후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등의 도입으로 비정규직과 불안정노동의 확대가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으로서 함께 도입된 제도이다. 그런데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여기에 사각 지대가 있다는 점과 수급권자의 숫자를 제한하기 위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빈곤층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린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이후 13년차인 2012년 현재, 수급자 숫자는 약 143만 명, 전체 인구의 2.8% 정도이다. 하지만 정부가 책정한 수준을 따르더라도 대략 600만 명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얻을 뿐이다. 600만 중에서 143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부양의무자가 있거나 재산 기준을 초과하여 심사에서 탈락된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수급권자 숫자를 더욱 축소하려고 부정수급척결 범정부TF를 가동 중이다. 수급권 심사를 통해 경제적인 인종청소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만약 복지재정을 확대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재산 기준도 완화하여 600만 명 모두에게 수급권을 준다면, 빈곤 문제는 해결될까? 사태는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되풀이 된다. 현행 제도는 1인 가구에 468,453원, 2인 가구에 797,636원을 지급한다. 가구구성원 수가 늘어날수록 액수는 커진다. 물론 지급액은 노동하지 않는 것을 가정한 금액이다. 2인 가구의 경우 한 사람이 노동을 통해 월 40만원을 번다면 지급액은 797,636원-400,000원인 397,636원이다. 총소득은 797,636원+400,000원인 1,197,636원이 아니라 노동하지 않을 때의 총소득인 수급액 797,636원과 단 한 푼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제도는 노동소득이 있기 때문에 정해진 수급액보다 적은 금액을 받는 조건부수급권자가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징검다리가 되어 주지 못한다. 결국 797,636원 이하의 액수를 위해서라면 어느 누구도 노동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일자리가 생겨 월 90만원을 벌 수 있어도 장시간 저임금노동에 시달릴 것인가 그대로 수급액인 797,636원만을 받을 것인가의 선택만이 남을 것이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제도에는 노동 강제가 따라 붙는다. 노동능력이 있는가를 심사하여 수급권을 부여하는 대신에 공공근로에 참여시킨다. 하지만 공공근로 참가자도 수급권자도 빈곤탈피가 불가능하다. 현행 제도는 다만 빈곤을 유지하며 관리할 뿐이다.
어차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층을 없애자는 제도가 아니라 시장탈락자에 대한 최소안전망으로서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에 사라진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자산 심사나 노동 강제 없이 무조건 지급된다. 부양의무자 심사도 없고 개별적으로 지급된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1인 가구 수급액인 468,453원을 기본소득 지급액이라고 가정해 보자. 실업자부터 재벌총수까지 누구나 매월 468,453원을 기본소득으로 받는다. 어떤 사람이 월 90만원 노동소득을 얻는다면, 기본소득은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지급되기 때문에 총소득은 기본소득 468,453원을 합한 1,368,453원이다. 기본소득은 일자리냐 수급권인가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양자택일적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기본소득에는 복지함정이 없다. 복지제도가 빈곤을 재생산하는 일도 없어진다. 나아가서 기본소득은 기초생활보장과 같은 선별적 복지에 나타나는 시혜적인 성격을 없앤다. 기본소득은 재산도 일자리도 없고 노동 능력도 부양의무자도 없는 불쌍한 사람을 사회가 돌보자는 제도가 아니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일자리, 노동능력, 부모형제의 존재와 무관하게 모두가 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점 때문에 모두가 얻게 되는 권리이고, 그렇기에 수급권자에 대한 낙인적 효과는 기본소득과 더불어 사라진다.
결국 재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만 남는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격차는 OECD 국가 중에서 헝가리에 이어 두 번째이며 가계소득성장률은 경제성장률보다도 낮다. 조세부담률도 OECD 국가의 평균수준을 훨씬 밑돈다. 그러니만큼 당연히 금융과세, 토지세, 생태세, 대자본과세를 통해서도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2년 안에 스위스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그런데 정작 기본소득은 스위스가 아니라 빈곤층과 불안정노동자가 넘쳐나는 한국에 더 필요한 제도이다.
기본소득공동행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