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번개탄으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60대 어머니가 병에 걸린 딸을 식당일로 부양하고 있었지만, 빙판길에 미끄러져 다친 뒤에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계를 비관한 무명배우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일하지 않으면 먹기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과 임금 노동에서 배제된 예술인 등은 항상 생사를 넘나드는 위태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달 일정 수준의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이 있다. 공상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진보진영 일부에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제도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현 체제의 강요된 노동, 사회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복지국가 담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여러 반론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그중 한 국가인 스위스에서는 지난해 모든 성인에게 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법이 국민투표까지 올라갔다. 정말로 기본소득은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1. 기본소득이란?
기본소득은 국가가 조건 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현금 소득이다. 즉, 재산과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되는 현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기본소득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기초생활수급자,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세웠던 기초노령연금도 부분적인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기본소득은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지급된다. 4인 가구라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에게 각각 지급되는 것이다. 또한 나이·성별·거주지역 심지어는 국적에 상관없이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에게까지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초등학생, 80살 노인, 외국인 근로자들도 모두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은 지급받는 사람에게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예술가·전업주부·사회운동가들처럼 금전적으로 노동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본소득은 이들 모두에게도 지급된다.
기본소득의 원칙은 ‘지급받는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만큼’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지만 현실적 여건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최근 국내 학계에선 모든 국민에게 매달 30만 원씩 주는 방안이 기본소득을 찬성하는 학자들에 의해 고안되기도 했다.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겠지만 이들은 조세제도 개혁, 금융기관 국유화 등을 통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기본소득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의료지원, 주거지원, 바우처 제도와 같은 ‘현물급여’가 아닌 ‘현금급여’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존 현물급여 중 일부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함으로써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일할 의지가 없는 국민에게도 일정 금액을 준다는 면에서 국가가 국민의 생활 수준을 어느 정도 담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론과 차별된다. 이 같은 복지국가 담론은 노동시장 안에서 소득을 얻어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과 노동시장으로부터 배제된 사람을 구분한 후, 노동시장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회보험을 통해 실업에 대비하게끔 하고 노동시장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공공부조를 통해 생계를 지원해주는 것을 근간으로 했다. 단, 사회보험을 받기 위해서는 재취업하기 위한 노력을 증명해야 했고, 공공부조 대상자 중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일을 해야만 그 자격이 주어졌다. 즉, 복지국가론은 복지제도를 통한 완전고용을 전제한 이론이었다. 북유럽의 국가들이 이런 이론을 채택한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황금시대’의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으로 유지됐던 완전고용은 70년대 이후부터 점차 흔들렸다. 석유파동을 동반한 경제침체 현상이 일어나면서 실업이 증가하고, 저임금 불안정 비정규직이 양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불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에 대한 대안이 모색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노동과 분리된 기본소득이었던 것이다.
2. 기본소득이 걸어온 길
사실 기본소득의 기원은 16세기 프랑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역사를 거듭하며 다양한 방향으로 담론이 전개됐다. 기본소득은 ‘최소소득’ 아이디어를 그 기원으로 한다고 여겨진다. 최소소득은 빈민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해서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한 지원제도였다. 오늘날의 기본소득 개념과는 달리 이 시기의 빈민들은 최소소득을 지급받기 위해서 일할 의지를 증명해야만 했다. 이는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처음 등장하며 요하네스 비베스의 「빈민 원조에 대하여」에서 이론적으로 구체화된다. 이후 19세기 사회주의가 대두하면서 ‘토지에 대한 만인의 원천적 공유’ 사상을 근거로 최소소득과 구별되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주장되기 시작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토지에 대해 일정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에 비례하는 소득을 받아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토머스 페인, 샤를 푸리에와 존 스튜어트 밀이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주의 경제학자 등 다양한 배경의 학자들에 의해 다각도로 진행됐다. 우선 1차대전 이후 영국에서 이런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무정부주의의 자유와 사회주의의 노동을 조화시키기 위해 생필품 구매를 위한 제한된 소득이 모든 국민에게 지급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경제학자 조지 콜은 ‘사회배당’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며 “현재의 생산력은 현재의 노력과 창의력, 교육이라는 사회적 유산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이 공동 유산의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공동유산에 따라서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현금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후 현물급여를 중심으로 하는 윌리엄 베버리지의 복지국가론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되자 영국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사그라졌다.
이와는 다른 관점으로 60년대 이후 미국에서 복지행정 간소화를 원했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주도로 기본소득이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밀턴 프리드먼은 어느 개인의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만큼을 정부가 보조하는 ‘마이너스 소득세’ 도입을 주장하며, 다른 복지제도를 마이너스 소득세에 통합함으로써 복지 비용을 절감할 것을 주장했다. 제임스 토빈과 조셉 페츠만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서 모든 시민에게 조건 없는 ‘시민보조금(demogrant)’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이들이 기본소득을 도입하고자 했던 주된 이유는 기존 공공부조의 수혜자들이 지속적으로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일자리를 피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독일 DM그룹 회장인 괴츠 베르너도 2006년부터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대해 기업의 노동유연화 전략에 따라 양산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계를 국가에 떠넘기기 위함이라는 비판이 있다.
다른 측면에서 80년대 이후 북서유럽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완전고용을 전제한 기존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론이 한계에 봉착한 것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에 주목했다. 이 논의를 주도했던 판 빠레이스, 빌 조단 등의 학자들은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시대에서 노동과 연계된 기존 복지 패러다임은 무의미하며 조건 없는 소득보장만이 인간다운 삶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를 조직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유럽 각지에서 벌어지던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한 데 모으고 현재의 기본소득 이론을 정립했다. 또한 2년마다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의 활동을 했으며 이후 점차 세계적으로 그 외연이 넓어지자 2004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로 명칭을 변경하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한국으로 건너온 기본소득, 그로부터 촉발된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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