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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13 16:09
[언론기사및보도자료] 복지시설이 많아지면 복지국가가 될까.[윤평호]
 글쓴이 :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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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조회 64|추천 0|2010.04.27. 11:59http://cafe.daum.net/basicincome/4tDd/78 

복지시설이 많아지면 복지국가가 될까.

『소유냐 삶이냐』로 본 2010년 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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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07시04분 윤평호(sisa-yph@hanmail.net)

 

1.
늦게 당도한 봄에 예년보다 개화가 늦었던 봄꽃들이 하나둘 지기 시작한다. 봄꽃들은 줄어들지만 거리의 또 다른 봄꽃들은 한창 개화중이다. 사람과 자동차의 통행이 잦은 도심의 주요 건물마다 게시된 형형색색의 지방선거 후보자 현수막. 정당과 나이, 성별은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현수막 속 후보자들 표정은 한결같이 봄꽃임을 증거하듯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공통점은 또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공약이 발표 되지는 않았지만 지방선거 출마 후보들의 선거 슬로건에는 예년과 다르게 ‘복지’가 홍수이다. 다음달 쯤 유권자들에게 전해질 후보들의 선거 공보에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무슨 무슨 시설을 동네마다 짓겠다는 복지공약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후보들의 슬로건과 공약만 봐서는 복지국가 실현은 무난할 것 같다. 그러나 동네마다 복지시설이 많아지면 정말 복지국가가 될까.

2.
올해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이 핵심의제로 내 놓는 것 가운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기본소득 보장을!’이라는 이슈가 있다. 기본소득이란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처럼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조건 없는 소득을 가리킨다.
최근에 출현한 의제는 아니다. 1970년대 후반에 출판된 에릭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홍신문화사)에도 기본소득의 시행을 제안하는 대목이 나온다.


대규모적인 복지관료체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현재의 비용, 그리고 신체의 질병, 범죄, 마약중독(이 모든 것은 강제와 권태에 대한 여러 형태의 저항이다)을 다루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누구든 원하는 사람에게 일정액의 연간 수입을 보장해 주는 데 드는 비용이 이러한 사회보장체제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아마 적을 것이다. 
─'소유냐 삶이냐’ 중에서

동네마다 경쟁적으로 판박이 경로당을 늘린다고 노인복지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듯 정치인들이 손쉽게 유권자들을 현혹하느라 지역마다 비슷비슷한 복지시설을 신축한다고 해서 복지국가가 자연스레 실현되지는 않는다.
물론 필요한 복지시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자칫하면 복지시설만 많아지고 그 많은 복지시설을 유지하기 위해 또 많은 인력과 운영비가 복지예산이라는 이름으로 소요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이미 그런 조짐과 우려는 몇몇 지역에서는 현실화되고 있다. 복지시설의 복지는 나날이 좋아지지만 정작 그것이 지역민의, 국민의 보편적 복지로 체감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복지시설의 관료화만 부추긴다.
에릭 프롬은 그 많은 복지시설의 건립비와 운영비를 차라리 기본소득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돌려준다면 복지 국가 실현이 더 용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 사회의 대부분의 불행은 연간 수입을 보장해 줌으로써 없어질 것이다. 이 생각의 요지는 모든 인간이 그가 일을 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살 곳을 소유할 절대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존을 유지해 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많이 받을 필요도 없지만 그것보다 적게 받아서도 안 된다... 
연간 소득이 보장되면, 소박한 방 한 칸과 최소한의 음식물을 얻기 위하여 요구되는 ‘증거서류’를 갖출 필요는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낭비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관료체제가 복지계획을 관리할 필요는 없어지게 돈다. 연간 수입이 보장됨으로써 진정한 자유와 독립이 보장된다. 
─'소유냐 삶이냐’ 중에서 

3.
『소유냐 삶이냐』는 단순히 소유의 삶을 꾸짖으며 무소유의 삶을 역설하지는 않는다. 개개인이 충만한 존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과제와 방법도 적절히 제안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회기본소득 보장과 지방자치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앙집중화된 국가는 평범한 지식과 능력의 소유자라도 일단 권좌에 앉기만 하면 쉽게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이런 사회는 ‘거대한 기계’처럼 되기 쉽고 결국 파시즘이 불가피해진다.
대안은 지방자치이다. 지방자치라고 국가의 통치기능을 국가 못지 않게 거대한 집합체인 각 주(우리나라 도나 광역시쯤이 해당)에 위임해서는 안된다. 권한의 위임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고 서로를 판단할 수 있으며, 따라서 공동체의 행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지역 자치단체에 위임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빠짐없이 한 표를 행사하면 우리가 할 일은 다 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투표를 ‘하지 말자’는 말로 오해는 마시기를).

선거는 정치적인 논점이 아닌 후보자의 소망과 포부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주간 연속극이 되어 버렸다. 유권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자에게 투표를 함으로써 이 드라마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겉으로 드러내려고는 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투사가 아닌 정치가들이 투기장에서 싸우고 있는 현대적인 로마식 구경거리에 열광한다.
─'소유냐 삶이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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