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현실제도로서의 가능성은 두가지 논점으로 나뉜다. 하나는 재정 마련의 방법, 또 하나는 지속가능성의 문제다. 이 두가지 논점은 경제라는 주제로 귀속된다. 기본소득의 경제적 측면은 그간 한국사회의 기본소득 논의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주제이기도 하고, 반대자들이 가장 많이 공격한 지점이기도 하다.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역시 기본소득의 경제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빠질 수 없었다. 발표자들은 대체로 기본소득의 도입가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경제적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보였으며, 오히려 현대사회의 “불가능한 지속성”을 돌파할 방법이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본소득이 아니라도 재정은 확대되어야 한다
최광은 사회당 대표는 재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전에 이미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 수준이 너무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을 OECD 평균인 21.2%에 맞추기 위해서는 약 133조 원 이상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는 이러한 논리에 따라 사회복지 지출 수준을 OECD 평균에 근접시키더라도, “특별히 진보적인 요구는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 방식은 신자유주의적 수탈에 대한 역수탈(逆收奪)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며, 조세 개혁에 있어서도 수탈 경제 제어, 강력한 소득재분배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최광은 대표가 역수탈의 한 방편으로 제기한 것이 토지 불로소득의 환수. 그는 지난 10년간 발생한 누계 토지 불로소득 규모가 총 2,002조 원 가량인데 반해, 같은 기간의 각종 세금 및 개발부담금을 통한 환수 규모는 5.8% 수준인 약 116조 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의 발표에 따르면 연평균 약 200조 원 규모의 토지 불로소득 중 절반만 매년 환수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100조 원 가량의 재원을 새롭게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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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
곽노완 시립대 교수 역시 투기불로소득을 중요한 재원으로 내세웠다. 그는 투기불로소득 중과세에 기초한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한국을 포함해 적립식 연금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연기금으로 폭락한 주식을 대거 매입, 자본을 사회적 공유로 전환할 길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곽노완 교수가 대안사회의 이행전략으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제기해온 것인데, 그는 연기금 사회주의와 기본소득을 결합한 사회연대소득을 주로 주장해왔다.
투기불로소득의 환수 방안은 기본소득네트워크의 대표이기도 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의 발표에서 좀 더 구체화되었다. 그는 증권양도소득세와 토지세 신설, 이자, 배당, 증권양도소득의 30% 과세를 중심으로 최대 연 600만원(55세 이상 기준. 강남훈 교수는 연령별 차등지급을 주장하고 있다.)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는 불로소득에 대한 30% 정도의 과세는 선진국 수준이므로 “특별하게 문제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며, 단 기본소득의 재정안정성을 위해 토지세와 환경세를 재원의 한 부분으로 책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 자체가 재정안정장치”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의 양의모 객원연구원은 일본의 호황기에 드러났던 노동소득과 기업복지, 신자유주의 이후 경제위기를 대비시키면서 개인의 소득을 성장의 기반으로 자리매겼다. 그는 최근 미국의 경제위기가 한마디로 “성장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며 그것은 “분배구조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사회에서 고도성장기가 지나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이후 오히려 경제위기가 가속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 점은 고도성장기에 노동자 분배구조를 통해 가전제품의 수요가 발달하고 그것이 노동자의 소득으로 이어졌던 점과 확연하게 대비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본적 물자의 독립성 부재를 비롯한 내수 기반의 취약성은 한국경제의 민감한 약점으로 계속 지적되어 왔고, 우익 정치인들조차도 내수성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왔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으니 물건을 못사고, 생산이 안되니 고용이 감소되고, 이런 식의 악순환의 끝은 파멸이라고 봅니다. 이런 기본적인 구조문제를 외면하고 ‘성장을 먼저해야’한다는 꼴통같은 소리가 집권당에서 계속되고 있죠. 경제발전에 있어서는 물건을 만드는 것보다도 오히려 구매력이 중요합니다. 정보기술이 확실히 발달한 나라에서는 저 같은 사람도 사업을 할 수 있지만, 구매해줄 사람이 없으면 누구도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그 기반을 계속 무너뜨리는 상태에서 경제가 살아난다는 건 “오히려 그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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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효 대구대 일반사회교육학과 교수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 |
안현효 대구대 교수는 기본소득을 통한 선순환 가능성(기본소득->생산 증대->기본소득 증대)을 산업전반의 측면에서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 신자유주의의 특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임금-고생산성의 “포섭형 고진로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자 전체를 포섭한 고임금-고생산성 구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저임금을 일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고임금을 강제하며, 강제된 고임금은 산업구조를 고생산성 노동과 산업으로 재편할 수 있다. 또 안정된 임금노동 외부에서도, 실업자와 불안정노동자를 생계유지형 노동으로 쫓아 내는 현 구조와 달리 기본소득은 이들이 재교육과 숙련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안현효 교수는 이러한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 ‘대학’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 점은 대학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에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현효 교수의 이 주장은 “충분한 기본소득” 하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 자신도 발표문을 통해 콤비임금 효과가 가져올 저임금 구조를 배제하고 있다.
강남훈 교수 역시 기본소득이 “생필품을 중심으로 하는 내수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기본소득이 고소득층의 소비감소보다 저소득층의 소비증가를 크게 일으키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이 승수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가 발표한 기본소득 승수 모형에 따르면, 조세 징수분을 170조원으로 볼 때(그의 모델에서 기본소득에 필요한 총 재원은 250조원이지만, 중복되는 복지지출이 상쇄되므로 실제 필요 증세는 170조원으로 줄어든다.) GDP 증가분은 연 3.5% 비율인 약 32조원. 이 증가는 1.75% 정도의 조세수입 증가를 불러올 수 있다. 강남훈 교수를 이를 근거로 오히려 기본소득 제도 자체가 기본소득 조세 수입을 증가시키는 일종의 “재정안정장치”이며,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