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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13 15:59
[언론기사및보도자료] [경향신문/박홍규] '기본소득을 보장하라' 외
 글쓴이 : 사무처
조회 : 512  
최광은|조회 73|추천 0|2009.05.08. 11:16http://cafe.daum.net/basicincome/4tDd/54 

 

기본소득을 보장하라 
 
  

[경향신문] 2007-03-02 
박홍규(영남대, 법학)

 

 

우울한 구정이 지나고, 소위 진보니 보수니 모두, 서로 진짜니 가짜니 하는, 전혀 진보답지도 보수답지도, 특히 논쟁답지도 않은 헛소리만 해대는 우울한 정치판보다 더욱 우울한 소식은, 최근 20년간 자살사망률 증가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삶의 나라가 아니라 죽음의 나라가 된 처지에, 모두가 죽지 못해 사는 것도 아니고 죽기 위해 사는 듯한 처지에, 무슨 진짜 가짜, 진보 보수 논쟁인가? 산업재해니 교통사고니 하는 갖가지 이유로 인한 사망률이 세계 최고라더니 이제는 자살로 인한 것까지 세계 최고가 된 터에, 저 몇 백 년 이상 되풀이한 망국의 당쟁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2월 말 소위 ‘유연한 진보’ 정부가 내놓은 자살대비책은 고작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참여하는 생명존중운동을 벌이자는 것 따위이다. 그래, 운동 좋다. 군사독재 이래 심심하면 하던 각종 정신운동 아니더냐. 그러나 자살충동을 경험한 비율이 가장 높은 40대와 월 100만원 미만의 소득자가 그런 운동으로 과연 자살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들에게 생명존중의식이 없어 자살을 하는가? 무엇보다도 40대 나이에 100만원 수입조차 없어서 자살하는 게 아닌가?

 

빈곤에 자살률 세계최고

 

애들 불장난처럼 다시 고치자고들 야단법석인 헌법에는 모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근로할 권리,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나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어서 자살이 이리도 급격하게 늘고 있는가? 몇년 전, 어느 노인부부가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정부로부터 몇 푼을 받고 아무런 존엄과 가치도 없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여 위헌소송을 냈더니, 헌법재판소는 피일차일 미루다가 결국 노인들이 죽고 난 뒤 재판을 끝냈다. 나는 헌법을 꼭 고쳐야 한다면 정부도 국회도 법원도 모든 국민에게 기본수입만은 꼭 보장하도록 고치자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이미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니 고칠 필요도 없는 것이나, 그렇게 하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최근의 양극화니, 불평등이니 하는 논의 속에서도 빈곤문제는 은폐되고 있다. 사실 불평등은 서술적 개념이나 빈곤은 규범적 개념이다. 불평등은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 개념이나 빈곤은 결코 허용될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을 없애기 위해 법적 조치가 당연히 필요한 규범적 개념이다. 그런데도 빈곤을 당사자 개인의 능력, 정신의 문제로 환원하여 마치 정치 사회문제가 아닌 것처럼 치부하고, 특히 청년실업에 의한 빈곤을 사회적 희생이 아닌 사회적 부담으로 하여, 개인의 자립성 없는 의존성, 근면성이 없는 나태함 등의 정신 윤리적 이분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함은 빈곤을 직시하는 정치가 부재함을, 아니 아예 파탄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청년실업자만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빈곤하다. 그럼에도 최근 취업문제나 장애우문제 등에 대한 사회정책은 기본소득보장이 아니라 소위 자립지원만을 우선시하고 있어서 문제이다. 자립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정부에 의존한다고 보고 규제하는 정책의 관점이 문제이다. 의존이 아니라 빈곤 자체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도 빈곤을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는 이유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복지정책이 근본적으로 빈곤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상당수 국민이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하는 복지대상인데도 복지정책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어서 그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정책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복지문제엔 정치가 없다

 

최근 직장분배정책으로서 주장된 일 나누기 운동과 함께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소득보장을 위한 기본임금, 즉 ‘베이식 인컴’의 확보문제이다. 종래의 취업이나 사회보장제에 의한 기본수입보장이 아니라, 취업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보편적으로 최저한의 소득을 개인에게 지급한다는 기본수입의 보장제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어느 나라에서나, 보수나 진보의 구별 없이,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빈곤을 최우선하는 진보는 물론, 사회의 기본질서를 유지하자는 보수주의로부터도 가장 시급하고 긴요하게 논의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황당무계한 소리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그 재원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되물음이 당연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곤문제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치사회문제인데 그 재원확보만이 안 된다고 돈타령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없다.

 

 

 

정규직.비정규직 함께 살길은   

 

[경향신문] 2007-12-14

박홍규(영남대, 법학)

 


앞뒷 집 담도 없이 8년을 함께 살던 동료교수가 별안간 대학을 그만두고 부동산 중개사로 전업해 이사한 일만큼 가슴 아픈 일이 또 있을까. 쉰까지 공부만 하던 그가 최저생활도 안되는 불안한 비정규직 생활 때문에 학문을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다행이랄까. 예술이나 사회운동에 뜻을 두었다가 그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폐인이 되다시피 한 선후배가 너무 많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밥벌이가 되지 않는 학문, 예술, 사회운동을 하다가 패가망신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꼭 그런 경우가 아니어도 생활이 불안한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능가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다고 하는데도 아무런 걱정 없이 살기란 더욱 더 어려워졌고 대부분 사는 것이 불안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엄청난 차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란 정규직의 노동시간과 수입을 대폭 줄여 비정규직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길밖에 없다. 이처럼 모두 적게 일하고 모두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결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네 대부분 사람들의 염원일 텐데도, 이를 공약하는 대선후보는 물론 이를 요구하는 유권자도 없어 이상하다.

 

노동시간 대폭 단축이 첫단추

 

종래의 가족과 노동의 형태가 급격히 변해 이혼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반면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보다 많은데도 단란한 스위트홈과 경제부강에 대한 꿈만을 노래하는 시대착오 후보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득세하고 있다. 일을 오래도록 많이 하는 것을 우리 민족성이니 국민성이니 하는 자들도 많아,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기록과 적자생존법칙을 이렇게도 오랫동안 유지하는지 모르지만, 이는 원시시대 노예의 사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1주 35시간 노동시간제와 최저임금제 및 연금제도가 완비되어 있는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도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보장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 반대여서 더욱 놀랍다. 두달 전, 84세에 부인과 동반 자살한 프랑스 철학자 고르도 평생 그 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실존주의를 주장한 사르트르의 후계자로서 생태주의를 창시했다는 그가 그랬다는 이야기에 놀랄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실존주의는 물론 생태주의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실존, 생존, 생태 자체와 직결된 노동문제나 사회보장문제로 이해되지 못하고, 도리어 그 반대로 무슨 프랑스제 명품 광고처럼 기이한 프랑스어로 장식하는 우리의 독특한 지적 환상 탓이다.

 

고르의 실존주의나 생태주의도 물론 그 사상의 핵심인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보장 역시 전혀 소개되지 않다가, 죽기 직전 부인과의 60년 사랑을 회고하며 그녀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쓴 작은 순애보가 겨우 우리말로 번역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그야말로 앞뒤가 바뀐, 본질은 무시되고 말초만 소개되는, 역시 여전히 정신의 식민지인 한국다운 외국문화 소개여서 서글프기 짝이 없지만, 그나마 고르가 죽은 뒤에라도 그의 책이 번역된 사실에 나는 감격한다. 물론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고르의 기본소득 구상이 최저임금제 따위로 잘못 소개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본소득 보장 통해 차별 해소

 

지금 프랑스가 우경화되었다고 해서 고르가 주장한 기본을 벗어나기는커녕 도리어 그것에 따르고 있는데도 우경화라는 말만을 강조하는 우리 언론과 학문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대처나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라는 것도 우리로서는 경험은커녕 상상조차 못한 복지정책 뒤에 나왔고, 그 복지정책의 기본이 절대로 포기되지 않은 기반 위에서 자유가 주장된 것이다. 반면 우리의 신자유주의란 그런 복지는 아예 없이 그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더욱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보장을 주장하기란 꿈같은 것이다. 도리어 최저임금제나 연금제도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 더욱 더 근본적으로 부자로부터 증여세나 상속세라도 제대로 걷는 게 급선무일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즉 당장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기본소득을 보장하여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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