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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22 20:56
[사회] [노동] [읽을거리] 기본소득 - 두 가지 무조건성에 대하여
 글쓴이 : 사무처
조회 : 724  
최광은|조회 87|추천 0|2009.05.05. 18:45http://cafe.daum.net/basicincome/3ol8/166 

 

기본소득 - 두 가지 무조건성에 대하여

 

 

금민 /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 사회당 당보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은 미성년자를 포함하여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단지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에만 근거하여 지급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은 어떠한 조건과도 상관없이, 즉 자산이나 소득의 크기와 상관없이 지급될 뿐만 아니라 노동 여부나 노동할 의사와도 상관없이 지급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많은 반론들 중에서 특히 널리 유포된 반론은 바로 이와 같은 두 종류의 무조건성을 문제 삼는다. 한편으로는 왜 혜택을 받을 필요도 없는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대다수가 노동의욕을 상실하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기본소득과 국민주권

 

첫째 종류의 무조건성, 곧 자산이나 소득 여부와 관련된 무조건성은 자산이나 소득을 심사하는 복잡한 관료적 절차가 없어지고 행정비용이 절감된다는 점, 무엇보다도 자신이 저소득자라고 증명하는 굴욕적 낙인과정이 필요 없다는 점, 부유한 사람들은 기본소득 재원의 마련을 위해 세금을 더 많이 낼 것이기 때문에 결국 혜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돌아갈 것이라는 점 등을 통하여 납득될 수 있다. 답변을 이와 같이 전개하다가 보면 기본소득과 관련된 명백한 갈등 구조가 드러난다. 그것은 많은 조세, 작은 정부의 프로젝트이고, 아무튼 증세는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증세로 좁혀지고 기본소득은 결국 부유한 사람들에게 증세하겠다는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은가라는 항변이 등장한다. 그런데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오직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과만 관련되는 기본소득 구상과 더불어 논의는 이제 증세의 경제효과와 같은 좁은 차원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차원으로 발전한다. 곧 기본소득의 국민주권적 차원이 열린다. 기본소득은 구빈(救貧)을 위해 지급되는 사회적 자선(慈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등한 사회구성원 또는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에 근거한 연대(連帶)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우리는 시혜적인 복지로부터 보편적인 복지로, 복지와 국민주권의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증세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증세를! 기본소득처럼 증세의 경제효과가 확실하다면, 더욱이!

 

사회적 필요노동, 임금노동, 기본소득 

 

두 번째 종류의 무조건성, 곧 노동 여부와 관련된 무조건성을 옹호하는 일은 좀 더 까다롭다.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과 자유시간 확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나 노동사회 벗어나기는 분명 인류사의 긴 과정이 될 것이다. 맑스는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Briefe uber Das Kapital, 184)에서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일 년은 고사하고 단 이주 동안만이라도 노동을 중단한다면 그 어떤 국가라도 쓰러져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모든 어린애들도 알고 있다." 생산력이 보다 발전한 현재 시점에서 '이주일'은 과장처럼 느껴지겠지만 그 기간을 '이년'으로 바꾼다면 지금도 피부에 다가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맑스가 다룬 내용에서 이주일인가 이년인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작 핵심은 "일정 비율로 사회적 노동이 분배될 필요성은 사회적 생산의 특정 형식에 의해서 지양되지 않고, 그 현상 방식만이 변화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자연 법칙들은 지양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강조한 핵심은 사회적 총노동 분배의 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는 시장이 담당하며 20세기 소비에트국가에서는 계획과 명령체계가 담당했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소득을 분배할 뿐이지 노동을 분배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분명 노동시간 단축과 자유시간 확대의 역사적 과정을 반영하며 탈노동사회를 지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사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물질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과 더불어 사회적 필요노동의 분배는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 혹시 그것은 사회적 필요노동의 총량보다 적은 노동량으로 귀결되며 가을이 다가온 줄 모르고 여름을 노래하는 베짱이들만 지원하는 일 아닐까?

 

경제적 강제의 작동 없이는 노동유인도 없다고 생각하는 우파라면 물론 그런 질문을 던질 법하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사회적 필요노동을 어느새 임금노동으로 동일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전통적인 노동조합 활동가들로부터도 비슷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산업체제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알게 모르게 우리는 사회적 필요노동을 임금노동으로 간주한다.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에서 완전고용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조건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완전고용의 노스탤지어를 벗어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제도를 잔여화하고 오직 극빈층에 대한 시혜적이고 노동연계적인 복지만을 남겨두었을 때 사회에 메아리치는 것은 어차피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일자리에 대한 아우성일 뿐이다. 노동운동은 어느새 '일할 권리'를 '임금노동을 할 권리'로 축소한다. 노동조합의 전통적 활동가들이 일자리 지키기 이외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동안, 우파는 성장과 일자리를 약속하면서 권력을 차지했다. 세계 경제공황이 진행되는 시점에서도 논쟁은 일자리 지키기와 임금삭감형 일자리 나누기의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어떠한 방향으로의 전환일까? 그것은 분명 완전고용사회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전망, 그래서 고용에 연계된 기본보장은 사각지대를 남긴다는 경고를 제공한다. 일자리 없는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전개할 수 있고 기본소득을 통해 그들의 활동은 인정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경제적 의미에서 그들의 노동이 사회적 필요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형식들이 발전할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적 필요노동의 인정과 분배는 주로 시장에서 이루어질 것이기에 그와 같은 노동이 얼마만큼 경제적으로 인정받을 것인가는 별도의 문제일 것이지만, 예컨대 무임금으로 일하고 이윤을 나누는 협동조합과 같은 경제공동체가 등장할 수 있다. 분명 기본소득은 사회적 필요노동의 사회라는 의미에서의 노동사회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의 사회로서 노동사회를 이미 넘어서 있다.

 

기본소득, 경제위기, 고용문제

 

기본소득은 분명 사회적 필요노동을 임금노동과 동일화할 수 없음을 표현한다. 그런데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는 정말 한가한 공상이 아닐까?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기에 대한 대안 중에 기본소득만한 대안도 없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임금과 임금부대비용을 끊임없이 삭감하는 공급중심 경제학으로부터 수요중심 경제학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사회로부터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그럼에도 고용창출 측면에서도 기본소득만한 대안도 없다. 세계경제가 위기라면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높이고 내수를 창출해야 한다. 수요는 공급을 만들고 고용도 창출한다. 일자리 나누기? 글쎄,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일자리는 저절로 나누어질 것이고 노동시간은 저절로 단축될 것이다. 기본소득과 의료, 교육, 주거 등의 기본보장이 있다면 누가 근골격계 질환을 무릅쓰고 잔업 더 하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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