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22 04:02
[사회] [2009 한국사회포럼] 2개의 발표글(금민, 양의모)에 대한 곽노완의 논평
 글쓴이 : 사무처
조회 : 5,153  
   곽노완토론문.hwp (33.5K) [15] DATE : 2014-05-22 04:02:48
권문석|조회 63|추천 0|2009.08.31. 11:54http://cafe.daum.net/basicincome/3ol8/70 

2009년 8월 27일 오후 5시, 서강대학교 다산관 301호에서 개최된

2009 한국사회포럼 '한국사회 이중 위기와 기본소득' 자유토론에서

곽노완(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님이 발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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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곽노완토론문.hwp

 

[“이중의 위기, 해법으로서의 기본소득”(금민), “왜 기본소득이어야 하는가?(양의모)”에 대한 논평문]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기본소득인가?

 

곽노완(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1.

 

금민 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은 ‘이중의 위기론’은 글로벌 경제위기 및 MB정부의 부자감세 등 반서민적 재정정책에 따른 국내민간소비의 위축이라는 중첩된 이중의 차원을 드러내주며, 나아가 글로벌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위기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DJ, 노무현 및 민주당 류의 정치권 자유권을 둘러싼 담론에 국한된 ‘민주주의 위기론’ 내지 ‘민주주의 후퇴론’을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이중의 위기를 넘어설 대안으로서 금민 운영위원장은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적인 양극화로 인해 “정치적 국민주권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상실”되었다. 그는 이러한 조건에서 “기본소득은 한 걸음 더 나아간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이후 변화된 세계에서 사회경제적 국민주권의 실현방식일 것”이라고 본다. 나아가 무조건적인 보편적 기본소득은 시혜적이고 선별적인 기존의 복지를 넘어서는 새로운 복지패러다임 및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요소를 이룬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은 민간소비의 지속적 확대를 촉진하므로 세계경제에 연동된 경기침체의 심화를 방지해주는 경제적 효과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이외에 사회적 필요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형식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본다. 그리고 “이윤을 나누는 기본소득 수령자들의 협동조합과 같은 경제공동체가 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충분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자본주의 경제의 틀 안에서 ‘사회적 경제’를 수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글로벌 위기 속에서 한국경제위기의 특수성을 부각시키고, 이러한 위기를 기본소득을 포함한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확장과 연관시킨 점은 이 글의 독창적인 성과로 보인다.

 

하지만, 한 논문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글은 기본소득의 도입을, 보다 근본적인 대안사회경제체제로의 통로 내지 보다 좁게는 급진적인 기본소득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보기보다는 그 자체를 최종목적으로 삼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점은 발표자가 사회적 필요노동으로 인정받는 형식들을 “주로 시장에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보거나, “이윤을 나누는 협동조합”으로 보는 데서 엿보인다. 발표자가 ‘어떤 기본소득인가?’를 묻지 않고 ‘기본소득인가 아닌가?’로 문제를 방만하게 설정된 것도 기본소득 자체를 최종목적으로 보는 것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발표자는 맺음말에서 “충분한 기본소득” 옹호하고 있다. 분명 ‘충분한가’ 여부는 ‘어떤 기본소득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한 요인이다. 충분하지 않은 기본소득은 노동자의 교섭력 강화나 노동력의 탈상품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할 자유와 이에 기초한 진보적인 사회운동이나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을 촉진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자본가의 임금(부대)비용을 절감시켜주고 사람들이 저임금의 비정규직을 수용하도록 정당화해주며 강제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들을 갖는다. 이는 우리가 주로 어떤 대안사회를 지향하는가와 연관되어 있다. 만약 ‘보다 평등하고 풍요로운 소비사회만을 지향하는 기본소득’이라면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시장을 건드리지 않고도 가능하다. 소득을 대폭 재분배하여 충분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만 해도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 전기, 교육, 의료 등 제한적이긴 하지만 기존의 기본복지를 모두 시장화하고 이에 대한 수요만큼을 더 많은 현금 기본소득으로 지급해도, 그러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실제로 독일의 자유민주당 및 베르너 등 (신)자유주의자들 중에도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보다 평등하고 풍요로운 소비사회를 지향하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각자 원하는 노동 내지 활동을 선택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자유와 이에 기초한 평등한 연대를 지향하는 기본소득’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경우 교육·의료·보육·물·생태자원 및 공기·토지 및 주택·장애인복지·노인돌봄을 포함한 기타의 사회서비스 등 모든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와 수요를 충족시키는 차원은 탈상품화하여 전면적인 무상의 공유재로 전환시키는 것과 개인별 수요충족을 위해 현금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결합하게 될 것이다. 물론 금민 발표자는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해 논평자와 공감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 부분이 금민 발표자의 글에서는 분명히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급진적인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안에서 도입되더라도 자본주의에 대한 파열음을 증폭하며 모든 생산수단을 사회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계기들을 확장하여야 한다. 비록 그러한 기본소득이 우선은 자본주의적인 조세를 통해 실현될 경우라도, 이를 위한 재원은 생태세·토지세·자본주의적인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중심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소득이 실현되고 정착되면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연기금·금융자본 등 사회적 축적기금을 전사회적 공유로 전환시키고 이를 통한 자본주의적 주식회사의 전사회적 공유로의 전환 및 이에 기초하여 기업의 부가가치 중 일정비율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전환함으로써 탈자본주의적일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꼬뮨주의적 대안의 계기들을 담아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파열하며 기존 현실사회주의뿐만 아니라 네그리, 고진 등의 무정부주의적·유토피아적 꼬뮨주의를 넘어서서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대안사회경제의 계기가 되어 명실상부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처음부터 기본소득은, 금민 발표자가 생각하는 “이윤을 나누는 협동조합”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며 그 경제적 성과의 일정 비율이 기본소득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대안기업을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소득은 금민 발표자가 생각하듯이 “주로 시장을 통한 필요노동의 인정”만이 아니라, 진보적인 사회운동 및 사회적인 돌봄노동의 거대한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기본소득은 지구전체에 대한 공유의식 확장과 더불어 이러한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및 보상을 위한 새로운 시공간을 열어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인가’의 여부는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차원과 겹쳐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차원은 단계적으로가 아니라 동일한 시공간에서 동시적·공시적인 사회운동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민 발표자의 글에 ‘어떤 기본소득인가’라는 차원이 거의 누락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2.

 

양의모님의 글은 신자유주의로 인한 실업 및 저임금 비정규직의 양산, 그리고 이로 인한 전사회적 소득과 수요의 감소를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의 복지체제가 개별기업이 주로 담당하는 식으로 되어 있으며, 이런 연유로 노동자가 기업에 종속되기 쉽고 신자유주의의 침투가 용이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의 증가,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압박 및 구조조정 등의 과정을 통해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는 바로 현재 한국노동운동의 고립화를 초래한 주요인이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축으로 하는 보편복지사회의 건설을 주장한다. 특히 현재 한국의 뒤떨어진 복지수준으로 인해, 기본소득은 너무 앞서가는 대안이라는 반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반박하고 있다: “구시대적인 복지를 다 경험해야 기본소득이라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 생각일까. 최신의 기계가 나왔는데 낡은 방식의 기계를 사용해야 새 기계를 쓸 자격이 생긴다는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양의모님의 글은 금민님의 글보다 보다 명확히 자본주의 안에서의 기본소득 및 보편복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특히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기업은 생활비 보장적 임금체계에서 오는 임금부담을 줄일 수 있고 인력수급에 보다 유연성을 가질 수 있으며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됨으로써 자본의 실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점은 이러한 경향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소득이 양의모님의 말대로,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양의모님의 글에 사회의 혁명적 변화상에 대한 단서가 나와 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할 동기가 약해진 이상 자신들에게 맞는 노동조건을 선택하여 노동력을 판매하고 아니면 노동판매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 큰 힘을 얻게 될 것이며, “기업 의존적 복지와 임금향상에 의존한 노동운동의 한계를 타파할 힘을” 갖게 이고, “돈이 되지 않지만 사회를 위해 큰 의미를 갖는 꿈에 과감히 도전해도 될 것이며 삶은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할까? 기본소득이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창의력과 의욕을 고취하여 노동생산성과 사회전체의 생산력을 제고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기본소득도입으로 인한 1인당 노동시간의 단축과 전사회적인 일자리 확대, 노동자의 노동조건 및 임금 선택권리 확장, 새로운 창의적인 기업의 증가, 소비증가에 따른 기업수익 증가 등등을 감안하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어떤 기본소득인가’에 따라, 기본소득은 제로섬게임은 아니더라도 자본의 실질적 이익을 확장할 수도 있고, 아니면 노동자 및 대다수 사회성원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양의모님은 자본과 노동자·사회적 약자 모두 이익이 확대되는 경우를 상정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자본 및 자본주의는 사회의 생산력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극대화하는 체제이다. 한국의 가처분 GDP에서 이자·배당·지대 등 불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노동소득은 약 60%)에 불과하지만 GDP 통계에 불로소득 상당 부분이 누락되어 있는 점과 증권양도차익·부동산양도차익·외환양도차익 등 투기소득이 완전히 무시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처분소득에서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의 비중은 최소 60%를 상회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을 전사회적 공유로 전환한다면,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을 얻기 위해 전사회적으로 거대하게 낭비되는 시간이 절감되어 생산력과 자유시간 모두가 증가하며 노동소득과 기본소득은 극대화될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사회적 공유로의 전환을 계기를 담는 기본소득은 자본의 실익을 증가시키는 기본소득보다 경제적으로도 우월할 수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기본소득은 바로 그러한 계기를 담아야 하지 않을까? 앞에서 지적했듯이, 현재 축적되어 있는 250조원 이상의 연기금, 은행 등 금융자본의 축적 등을 전사회성원이 공유하는 사회적 축적기금으로 전환시키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를 유상으로 몰수한다면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아마도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에 대한 중과세를 통한 기본소득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의모님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하지만, 이러한 가능성과 조건을 간과함으로써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까지 넘어설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트로이의 목마’의 범위는 양의모님의 글에서 크게 축소되어 그려졌고, 이 부분이 아쉬운 점이다. 어쩌면 이를 알고 있더라도 한국사회의 보수성 때문에 용기를 못 내고 계신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축소된 기본소득이 보다 급진적이고 확대된 기본소득보다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은 지지자를 얻을 수 있는 이유를 밝혀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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