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The Republican Case for Basic Income: A Plea for Difficulty / Stuart White, <Basic Income Studies> Dec 2007 Vol 2 Issue 2
[발제문]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공화주의의 논거: 어려움에 대한 답변
1. 서론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다른 사람의 자비로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 의한 자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의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기본소득은 이러한 의존성을 감소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단은 고용주와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관료들과의 관계 등 사회적 관계의 전체 성격을 바꿀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공화주의의 논거는 기본소득이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자유를 지키는 유일무이하게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공화주의의 논거에 대한 두 개의 반대 논리를 살펴보는데, 하나는 자치적 측면에서의 반대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적 덕성 측면에서의 반대이다.
2. 자치적 측면에서의 반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사람들은 자치적 삶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생각해보자. 시민들이 생애에 걸쳐 기본소득을 받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성인이 될 때 기본 밑천을 받는 것이 좋은가? 후자의 경우, 미래에 받을 기본소득을 담보로 앞당겨 목돈 대출을 받는 것(일종의 모기지 대출)이 가능하다면 마찬가지다.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모기지 대출이 불가능한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목돈 탕진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치적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기본 밑천 혹은 모기지 대출이 가능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목돈이 있으면 사업, 교육, 여행 등의 다양한 계획에 투자할 수 있다. 액커만과 앨스톳이 기본소득과 대립하는 기본 밑천을 논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자유, 자치로서의 자유 둘 모두 중요하게 고려해야만 자유에 관한 보편타당한 이론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자유에 관한 복수의 이론 모두 기본소득을 직접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명확치 않다. 물론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자유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3. 시민적 덕성 측면에서의 반대
공화국은 보통 능동 시민과 시민적 덕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물론 공화주의 정치 이론에는 “덕성 있는 능동 시민”의 중요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 방식들이 있다. 하나의 견해는 덕성 있는 능동 시민이 지배 탈피의 조건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인 한에 있어서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덕성 있는 능동 시민이 실제 유일하게 수단적 가치를 갖는다는 견해다. 마지막 견해는 로마 공화주의와 대립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소위 그리스 공화주의에 귀속하는 것으로 덕성 있는 능동 시민이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주의가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덕성 있는 능동 시민에 대한 책임까지 지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공화주의의 논거를 복잡하게 만든다. 루소 등의 몇몇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외면한다. 루소는 국가가 생계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면서도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것은 상당한 소득은 아니고,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만 상당한 소득을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현대의 공화주의 사상가인 리차드 대거도 “신공화주의와 시민경제”(주: <시민과 세계> 10호, 2007년 상반기호에 이 논문이 번역 게재되었다. 그리고 이 논문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시장경제를 시민경제로 바꾸자’(한겨레신문 2007-02-02)에서 볼 수 있다.)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전개하고 있다. 대거는 이 논문에서 빠레이스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을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다음으로 기본소득이 시민적 특성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지점을 살펴보자. 하나는 마이클 샌들이 언급한 “노동의 형성적 효과”이다. 이는 사람들이 노동 혹은 일터 속에서만 공화주의적 시민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언급한 대거뿐만 아니라 제퍼슨주의 공화주의 사상가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본소득 탓에 일부 시민들이 노동(혹은 일터)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그들의 시민적 특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므로 문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노동 그 자체가 훌륭한 시민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즉, 노동 그 자체가 덕성 있는 능동 시민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 보면, 기본소득이 노동을 회피하는 삶의 방식을 뒷받침할 수 있고, 따라서 덕성 있는 능동 시민이란 개념에도 무관심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물론 기본소득의 도입이 덕성 있는 능동 시민의 형성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아무튼 기본소득이 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면,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서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기본소득의 직접적인 효과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공화주의의 논거가 완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덕성 있는 시민의 형성에 대한 잠재적인 효과를 고려하고, 이러한 효과를 경험적으로 측정하며, 그런 다음 이것의 다양한 효과들에 대해 알려진 견해에 기초하여 기본소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4. 결론: 어려움에 대한 답변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공화주의의 논거는 강력하다. 이것을 반박하려 한 것이 아니라, 누스바움의 표현을 빌자면 “어려움에 대한 답변”을 이 글에서 하려고 했다. 자유에는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공화주의에는 자유에 대한 관심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한다면,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공화주의의 논거는 처음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