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10주년 토론회 논평문
곽노완(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1. 기초생활보장법의 한계
- 사각지대 불가피
- 수급자 기준 자체의 까다로움. 부양자 여부와 무관한 기준으로 변경되거나, 허선 교수께서 지적한 대로 소득 및 재산 기준으로 기초생활급여를 지급하고 사후적으로 부양의무자에게 과세하여 환수하는 방안 필요
- 수급자의 신청부담으로 인한 시간낭비
- 수급자 자격을 제한함으로써 부정수급 등 범죄행위 조장
- 사회복지공무원의 심사·관리업무 확대. 이로 인해 인건비 등 불필요한 관리비로 국가예산 낭비
- 수급자에 대한 낙인효과: 수급자의 자책감, 수급자에 대한 무시 등 사회적 갈등 증폭
- 최소생계비도 낮게 책정되어 있으나 실질적 기초생활보장 급여액은 최소생계비에도 크게 못 미침
2. 기존사회복지체계의 한계
- 우리나라의 경우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체계만 보아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기초노령연금, 실업급여, 기초생활보장급여, 한시생계구호, 희망근로프로젝트 등으로 복잡하게 분화되어 있음
1) 이로 인해, 관리인력 및 비용·신청 및 심사시간 등이 사회적으로 막대하게 낭비되고 있음. 복지제도가 발달한 서유럽의 경우 현금급여액의 10-20% 수준에 달하는 관리비용(인건비·사무실유지비 등)이 사회적으로 낭비되고 있음. 한국의 경우도 복지규모가 절대적·상대적으로 증대할수록 이러한 세수낭비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
2) 한국의 경우, OECD 대비 현금급여형 복지예산이 너무 미미한 수준이며, 교육·보육·의료·장애인편의시설 등 현물복지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임
3) 심사과정에서 제외되는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발생함
4) 연금의 경우, 납입액이 많은 고소득자에게 국가나 연금관리공단에서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역복지 원리에 따라 이루어짐
5) 워크페어(workfare) 원리에 따라, 대부분의 복지가 과거 및 미래의 노동강제와 결부되어 있음. 이는 구조적·경기순환적 실업 및 비정규직·영세자영업이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복지사각지대를 체계적으로 확대하는 맹점이 있음. 특히 워크페어 원리에 따라 직업훈련 등을 강요하는 복지는 정규직 일자리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을 없음
3. 지속가능한 무조건적 보편복지의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전환 필요
- 우선, 한국의 경우 복지예산비중의 대폭적인 확대가 필요함. 그리고 노동유인의 감퇴를 막고 경제적인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소득세 인상은 최소화하고, 이자·배당·지대 등 불로소득(가처분 GDP의 40%)에 대한 중과세 및 증권양도차익·환차익·부동산양도차익 등 투기소득(가처분 GDP의 20% 이상 추정)에 대한 새로운 과세와 환경세 증세 및 토지세 증세 등을 통해 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
- 나아가 노동강제나 심사가 없이 모든 사회성원들에게 무조건적인 보편복지를 추진할 필요가 있음. 이는 심사에 소요되는 복지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그만큼 실질적인 복지수준 향상을 가져올 것임
- 이렇게 확대된 무조건적인 보편복지예산은 ‘현금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 + 현물로 지급되는 사회서비스(무상 교육·의료·보육·노인 및 환자 돌봄서비스·장애인 편의시설·사람을 위한 길·광장·공원 등 공간창출...)’ 등 현금·현물 사회복지의 확충을 위해 사용될 필요가 있음. 특히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회성원에게 개인별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민간수요를 증가시켜 생산증가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자발적 연장근로를 대폭 감소시킴으로써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효과가 있음. 따라서 빈곤과 실업을 모두 감퇴시키고, GDP를 대폭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음. 뿐만 아니라, 생계형 자살 및 범죄가 크게 감소할 것임. 나아가 기존의 조건적 워크페어가 강요하는 사회적 낙인효과를 완전히 근절할 수 있음. 이런 점에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기존의 워크페어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음. 최근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미비아의 오미타라 지역의 경우, 이러한 결과를 확증해주고 있음(기본소득을 제외한 1인당 소득의 승수적인 증가 및 일자리와 노동인구 증가·범죄율의 대폭적인 감소 등, 브라질 룰라정부는 2010년부터 기본소득제도 실시).
- 사회복지주체의 새로운 형성: 기존의 워크페어는 시혜적이고 잔여적인 복지패러다임이었음. 따라서 정치권과 사회복지전문가집단이 주체였고, 수혜자들은 단지 복지의 대상으로만 간주되어 사회복지제도 형성과 변경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주체로 참여하지 못하고 배제되어 왔음. 그리고 사회복지제도 형성과 변경에 영향을 미친 언론 및 사회운동단체의 경우도, 정치권에서 주도하는 사회복지논의에 사안별로 수동적이고 파편적으로만 개입해 왔음. 이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여러 가지로 파편화되어 있어 사회전체성원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 데도 이유가 있음. ‘기본소득과 무상 현물서비스의 확충’을 축으로 단순화되고 일원화된 무조건적 보편복지패러다임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사회복지를 모든 사회성원의 이해가 걸린 권리로 그리고 실질적인 인권의 확장으로 전환시킬 것임. 따라서 사회복지논의에 사회전체성원의 대대적인 참여와 지지를 촉진하게 될 것이며, 그만큼 파편적인 개별 사회복지 사안보다 실현가능성이 급속히 커질 수 있음. 그만큼 ‘기본소득+무상의료·무상교육’ 등 탈워크페어의 보편복지는 사회운동단체가 즉각 능동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할 주제라고 생각됨.
4. 발표자에 대한 논평
-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동수당 및 무상보육을 도입하자는 정당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차차상위에 대해 취업조건부 실업부조를 주장하는 이태수교수의 제안은 기존의 워크페어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임. 그리고 기본소득논의가 무상의 사회적 현물서비스의 확대와 연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태수교수는 이를 “현금급여로만 대체”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음. 그리고 한국의 특수성을 들어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임. 그리하여 기본소득을 중장기적인 고려사항으로 보면서, 시혜적 워크페어와 기본소득을 절충하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음. 이태수교수가 생각하는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우월하며 지속가능한가 그리고 다수의 사회성원들이 절실히 바라며 그리하여 그들이 복지의 주체로 나서서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정부와 정치지형 및 자본·노동관계에서 지배층을 이루는 보수적인 정치가들이 얼마나 수용적인가의 문제로 치환되어 있음. 이는 논평자가 보기에는 수동적인 복지논의의 함몰되는 것으로 생각됨.
- 허선교수는 차상위 비수급 빈곤 가구의 소득이 수급 가구 소득보다 오히려 적다는 점을 적실하게 지적함으로써 차상위 빈곤 가구를 수급 가구로 확충할 필요성을 적실하고 제기하며, 복지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해 부양의무자 규정을 폐기하거나 축소할 필요성이 있음을 부각하고 있음. 나아가 재산기준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음. 이는 기존 기초생활보장법을 보완하는 심도 있는 연구성과로 보여짐. 그러나 기초생활보장법이 담고 있는 시혜적·잔여적인 성격과 부정적인 낙인효과 등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간과하고 있으며, 빈곤층에게 재활급여·일자리 제공 등을 주장하면서 기존 워크페어 사회복지가 초래하는 노동강제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음. 그리하여 예를 들어 현재 실행 중인 희망근로프로젝트의 비실효성(불필요거나 낭비적인 노동수행 및 교육강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함. 이는 현재의 노동유인과 워크페어를 절대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됨. 하지만 현재의 노동소득세에 치우친 복지재원은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위한 비생산적 활동을 사회적으로 조장함으로써, 사실상 노동유인을 극소화시키고 투기유인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로소득·투기소득에 대한 과세로 사회복지재원을 대대적으로 확충할 필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음. 그런데, 허선교수는 근로유인을 위한 근로소득공제제도를 주장하면서도(이는 정당하다고 생각됨) 이로 인해 축소될 사회복지재원의 충당 및 새로운 확충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음. 이는 GDP의 0.5% 수준에 불과한 기초생활보장이 근로유인을 감퇴시키다는 주장은 암묵적으로 수용하면서도, GDP의 사실상 60%에 달하는 불로소득·투기소득이 노동유인을 감퇴시킨다는 것은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사료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