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완|조회 56|추천 0|2009.11.05. 17:19http://cafe.daum.net/basicincome/3ol8/86
한국형 기본소득과 인권운동의 확장
곽노완(서울시립대학교 교수, kwacks79@hanmail.net)
1. 국내외 기본소득 실천과 논의의 부상
올해 들어 민주노총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에서 출간되고 ‘기본소득네트워크(cafe.daum.net/basicincome)’가 출범하면서, 진보적인 사회운동 내부에서 기본소득이 대안사회의 한 축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심사와 노동 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무조건 지급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론의 역사는 멀게는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저작『유토피아』에서부터 시작하여, 1796년 “지구는 모든 사람의 재산이다”라고 주장한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농업적 정의」(『인간의 권리, 상식 및 기타 정치저작』,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 1995)를 거쳐 1836년 유토피아사회주의자 찰스 푸리에의 『잘못된 산업』 및 1875년 ‘필요에 따른’ 코뮌주의 분배원리를 제시한 맑스의 「고타강령비판」에 이른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틴버겐(Tinbergen)과 미드(Meade)에게서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20세기 철학자인 러셀, 에리히 프롬도 기본소득론을 주창한 바 있다. 20세기 종반부 이후 기본소득론은 생태철학자인 앙드레 고르,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판 빠레이스(Van Parijs), 그리고 자율주의자인 안토니오 네그리, 맑스주의 철학자인 캘리니코스, 맑스주의 사회학자인 에릭 올린 라이트 등에 의해 이론적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벨기에의 판 빠레이스는 기본소득론의 가장 체계적인 철학적·경제학적 틀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1986년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를 창설을 주도하였다. 현재 기본소득을 주장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인 연구자 및 활동가들로 국한되지 않는다. 2005년경부터 기본소득을 대중화시키는데 앞장선 독일의 거대 자본가 베르너를 포함해, 최근에는 자유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 중에도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하는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푸리에가 밝힌 바와 같이 민중의 기본부양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 예수도 사실상 기본소득과 동일한 주장을 했다고 할 수 있다(『잘못된 산업』, 491쪽). 동양에서는 아마도 균전제가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입장들을 갖고 있다. 이는 기본소득이 그만큼 폭넓은 잠재적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현재 지구상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는 곳으로는 미국의 알래스카주와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 마을이 있다. 알래스카주는 석유에서 나오는 수익금 중 일부를 ‘알래스카 영구 기금 배당금’이라는 명목의 기본소득으로 매년 말 유아를 포함한 모든 거주민들에게(1년 이상 거주 외국인 포함) 동일하게 지급하고 있다. 2008년 말에는 1인당 3,269달러(원화 약 4백만원)를 지급하였다. 그리고 나미비아 오티베로-오미타라에서는 실험적으로 60세 미만의 모든 거주자들에게 매달 100나미비아 달러(원화로 약 15,000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있다. 60세 이상의 거주자들이 제외된 이유는 그들이 모두 노령연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기본소득이 도입된 이래 오티베로-오미타라에서는 범죄율이 감소하고, 취학아동이 급증했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제외한 1인당 평균소득은 1년 사이에 25% 정도 상승했으며 실업률도 감소했다. 이는 기본소득으로 민간소비 및 이 지역으로의 이주자가 증가하여 자영업 및 기업매출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생산 및 고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2010년 1월 1일부터 전국적으로 기본소득이 실시된다. 아직 매월 지급금액이 얼마가 될 지, 수혜자 범위를 연령대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장할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전체사회성원으로 할 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브라질 내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도 처음부터 브라질 국민과 동일하게 기본소득 수급권을 갖는다. 또 매월 지급액은 정부예산편성과 함께 확정되는데, 현재 진행 중인 ‘볼사 파밀리아 프로그램’보다는 지급액뿐만 아니라 최초 적용범위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브라질의 기본소득 주창자인 수플리시 상원의원에 따르면 지급액의 경우 1인당 최소한 40레알(원화로 약 2만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Suplicy, "Grundeinkommen als Mittel gegen Hunger und Armut", M. Füllsack 편, Globale soziale Sicherheit, Berlin, 2006, 96쪽).
그런데 아직 기본소득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기본소득 논의가 가장 활성화된 지역은 서유럽이다. 서유럽에서는 1986년에 벨기에 루뱅대학의 판 빠레이스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이는 현재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일본), 미국 등 16개국에 지부를 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로 확대 재편되었다. 내년에는 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가 한국지부로 승인될 예정이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와 더불어 이제 기본소득은 세계사회포럼과 더불어 향후 대안지구화운동의 중심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거대자본가 베르너의 활약으로 기본소득이 가장 중요한 대중적 이슈의 하나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좌파나 녹색당 계열의 진보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 중에도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간헐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본격화된 것은 2006년부터 철학·사회복지학·경제학·법학‧사회학 연구자들이 기본소득론을 소개하며 주창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2007년에는 사회당이 부분적인 기본소득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논의 및 운동의 확산과 호응이 급격히 증폭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초 민주노총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를 출간하고, 인터넷 사이트 ‘기본소득네트워크(cafe.daum.net/basicincome)’가 출범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09년 4월 13일 한겨레신문에 기본소득 기획기사가 나가면서, ‘기본소득네트워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여름에 열린 ‘맑스코뮤날레’와 ‘한국사회포럼’을 통해 적어도 진보적인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에게서 가장 주목받는 대안적 아젠다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1월 27-28일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창립자인 판 빠레이스와 브라질 기본소득 실현의 일등공신인 상원의원 수플리시(노동자당) 등이 참가하는 국제심포지엄이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인데, 이를 통해 한국에서의 기본소득논의와 운동은 한 단계 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2. 판 빠레이스의 기본소득론
앞서 지적했듯이 기본소득론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 가장 체계적인 기본소득론을 제시한 사람은 판 빠레이스라 할 수 있다. 판 빠레이스는 신자유주의적인 형식적인 자유 및 시장의 극대화에 반대하여, ‘모두를 위한 실질적 자유’를 주창하였다. 여기서 실질적 자유는, 자유를 누릴 수단으로서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기본소득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최대한 평등한 권리를 담고 있다. 이 기본소득은 유아부터 노령층, 그리고 특정기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외국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신청·심사과정 없이 그리고 기존의 노동소득에 더해져 추가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기본소득은 생태적‧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GDP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최대한 커야 한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현금뿐만 아니라, 교육·의료·보육·깨끗한 길·보행자전용도로·장애인 편의시설 등의 현물공유재의 무상공급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에서도 도입될 수 있지만, “필요에 따른” 분배를 기본 경제원리로 하는 코뮌주의와 상충하지도 않는다. 그는 기본소득은 오히려 코뮌주의의 “필요에 따른” 분배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그래서 실업 및 경제공황 등을 통해 사회의 생산력을 막대하게 탕진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기본소득+지분배당경제(share economy)’ 시스템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지분배당경제란 웨이츠만(Weitzman)이 주창한 것으로, 노동자가 고정임금을 받는 현재의 임금노동시스템과 달리 기업별 순부가가치(순수익)를 일정비율의 이윤과 일정비율의 노동소득으로 분배하는 것을 뜻한다. 곧 자기기업의 순부가가치가 크면 노동자의 노동소득은 커지지만, 순부가가치가 적으면 그만큼 노동소득도 적어지는 시스템이다. 판 빠레이스는 이러한 ‘기본소득+지분배당경제’에서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자본주의보다도 노동유인이 클 뿐만 아니라, 고용주 측에서도 고정임금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일자리제공을 늘리게 되므로 기존의 자본주의보다 경제성과에서도 우월할 것이라고 한다. 곧 이러한 경제시스템은 평등과 정의라는 도덕적 우월성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속가능성에서도 지금까지의 어떤 자본주의보다도 우월한 ‘최적자본주의’라고 한다. 이는 자본주의를 폐기하진 않지만, 지속가능한 최대한의 기본소득을 담고 있는 만큼 자본주의 내에 최대한의 코뮌주의를 담자는 주장이기도 하다.
판 빠레이스의 기본소득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재원마련 대책일 것이다. 판 빠레이스는 불평등한 재산 및 능력의 분배로 인한 수혜자들은 대부분 자기의 노력과 무관하게 고소득의 특혜를 누린다고 본다. 따라서 이에 대해 고율의 조세를 부과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비정규직과 실업이 확대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상당수의 정규직조차 일종의 부당한 특혜를 누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선망 받는 고소득의 일자리에 대해 고용지대세를 부과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기존의 조세만으로는 기본소득의 재원이 충분치 못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나아가 최근에 판 빠레이스는 일국적인 기본소득을 넘어서서 지구적 차원의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들은 영어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으므로 이들 국가들로부터 언어세를 거두고, 나아가 생태자원을 많이 소비하는 선진국들로부터 생태세를 거두는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지구인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지구적 차원에서 기아와 빈곤을 극복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3. 한국형 기본소득 정책
이러한 판 빠레이스의 재원조달방식과는 달리, 민주노총에서 출간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에서 제시된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노동소득에 대한 증세는 최소화하고, 이자‧배당‧지대 등 불로소득 및 증권양도차익‧부동산양도차익 등 투기소득 그리고 토지에 대한 고율과세 등으로 가처분GDP(전체GDP에서 감가상각을 뺀 부분)의 30% 수준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하여, 무상교육‧무상의료를 포함한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과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지급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이렇게 될 경우, 2009년 기준으로 39세 이하의 사람들은 개인별로 연 400만원, 그리고 40-54세의 사람들은 연 600만원, 55-64세의 사람들은 연 800만원,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연 9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명목GDP상승률 이상으로 매년 증액된다).
이는 판 빠레이스가 간과한 투기소득에 대한 고율과세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증권양도차익뿐만 아니라 부동산양도차익이 막대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기소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통계자료가 미비하여 추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투기소득은 최소한 가처분GDP의 20-30%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가처분GDP의 60% 수준에 달하는 노동소득의 반 가까이가 투기자본 및 투기꾼들에 의해 수탈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자‧배당‧지대 등 자본주의적 불로소득이 가처분GDP의 40% 수준임을 감안하면,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의 합은 사실상 가처분GDP의 60%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이러한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더욱 극대화된 측면이 있지만,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는 노동소득보다는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의 극대화를 조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노동소득을 극소화하며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을 극대화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막대한 시간을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 획득에 탕진하게 만든다.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이점을 감안하여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에 대한 고율과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사회 전체자본 및 토지를 사회전체성원의 공동소유로 전환함으로써 자본주의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을 전액 환수하여 코뮌주의적인 기본소득(사회연대소득)의 재원으로 전환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가처분GDP는 현재의 ‘사실상의 노동소득 40% + 불로소득 40% + 투기소득 20%’에서 종국적으로는 대략 ‘노동소득 50% + 코뮌주의적인 기본소득(사회연대소득) 50%’를 담는 새로운 21세기형 코뮌주의로 전환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코뮌주의는 현재의 자본주의보다 사실상의 노동소득비율을 증가시킴으로써 보다 높은 노동‧생산 유인을 갖게 될 것이며 따라서 경제적으로도 우월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이 당장에 이러한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사회연대소득)’을 담고 있는 아니다.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의 이행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행모델이 아직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을 완전히 환수하지 못하여 가처분GDP의 30% 정도에 달하는 기본소득을 담고 있다면, 코뮌주의적 모델은 불로소득 및 투기소득을 완전히 환수한 50% 수준의 기본소득을 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2단계론은 현실사회주의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새겨진 레드콤플렉스를 고려한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레드콤플렉스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극복된 상태라면 이행모델과 같은 우회로를 거칠 필요 없이 ‘코뮌주의적 기본소득’으로 직행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사회에 축적되어 있는 250조원 수준의 연기금과 주식회사에 대한 은행대출(사실상 사회전체성원의 예금을 원천으로 하는 것이다)의 주식으로의 전환방안을 활용한다면, 경제적으로는 사회전체자본의 대부분을 당장이라도 전체사회성원의 공유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한국사회에는 이미 코뮌주의 시초축적을 위한 경제적 조건들이 넘쳐날 만큼 축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기본소득모델은 이처럼 최종적으로 탈자본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50% 코뮌주의+50% 자본주의’라 할 수 있는 ‘최적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판 빠레이스의 모델과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노동소득에 대한 대폭적인 증세로 인해 생산유인을 감퇴시킬 가능성이 있는 판 빠레이스의 모델과 달리, 노동소득세 증세를 최소화하고 불로소득‧투기소득에 대한 증세를 극대화함으로써 생산유인을 높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판 빠레이스의 모델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를 기본소득의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판 빠레이스의 고용지대세와 달리 수혜자로 만듦으로써, 그들도 기본소득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담고 있다. 나아가 판 빠레이스는 기본소득의 도입되면 노동시장이 유연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한국의 모델은 최종적인 코뮌주의적 모델에 도달하기 전까진 최저임금제의 강화와 병행하는 기본소득이라는 점도 중요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4. 나가며: 기존의 사회복지 패러다임을 넘어, 인권의 확장을 위하여
얼마 전 MBC에서 나미비아 오미타라 마을의 기본소득 실험을 방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기초소득이라고 번역했으며 심지어 기초생활보장이라고도 번역해서 아쉬운 적이 있었다. 기본소득은 기초생활보장을 포함한 기존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와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기존의 사회복지와 달리 기본소득은 1) 어떤 심사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2) 어린이와 청소녀(년), 여성, 노동자, 자영업자, 노령층,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3) 나이(와 장애 정도)에 따라 균등하게 현금 및 현물(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초생활보장 등 기본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와 다르다. 심지어 대통령과 재벌자본가도 수혜자가 된다.
왜 부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는 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모든 사람이 수혜자가 된다면 기초생활보장 등 기존의 사회복지와 달리, 수급자에 대한 낙인효과가 사라진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심사자와 타인의 의심 및 따가운 시선과 같은 낙인을 감내해야 하며 심지어 스스로를 사회의 낙오자로 낙인찍기도 한다. 이는 자신감상실과 우울증 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수혜자라면 이러한 비인권적인 낙인효과는 완전히 사라진다. 둘째로 모두가 수혜자이고 따라서 자격조건이 사라진다면, 심사과정에 소요되는 인건비 및 부대비용 및 사회적 시간낭비가 거의 완전히 일소된다. 따라서 그만큼 더 많은 사회복지 재원을 확보하게 되며, 사회적으로 막대한 시간이 절약되거나 자유시간이 늘어난다. 셋째로 기존의 사회복지와 달리, 사각지대를 명실상부 제로로 만들 수 있다. 넷째로 기본소득의 절대액이 기존의 사회복지보다 크다면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상의 이유로, 그리고 기본소득의 재원이 어차피 압도적으로 자본가와 부자에 대한 조세로부터 나오는 한, 부자도 기본소득 수혜자가 된다고 해서 꺼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소득은 기존의 노동과 연계된 사회복지 패러다임과 달리, 무조건적으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임노동과 강제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계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연금이나 실업급여, 희망근로프로젝트 등 기존의 대부분의 현금지급형 사회복지는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의 노동과 연계되어 있다. 이는 사실상 노동을 강제하는 사회복지인 셈이다. 기본소득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임노동강제로부터의 해방을 담고 있으며, 각자가 보다 원하는 노동이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 따라서 예를 들면 인권운동사랑방이나 격월간 사람을 위한 활동 등 사회적으로 소중하고 필요한 활동을 크게 활성화시킬 것이다.
현재 노동연계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사회복지는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 등이 있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은 앞서 보았던 낙인효과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에 비해 노동유인을 크게 감퇴시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도 열등한 제도라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노동소득이 있더라도 추가적으로 감액 없이 전액을 받는 제도이며 따라서 노동유인을 크게 감퇴시키지 않는다. 이에 반해 기존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노동소득이 있을 경우 수급액이 감액되거나 수급권을 상실한다. 따라서 노동을 하지 않고 온전한 수급자로 남아있을 것이 유리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노동능력이 있더라도 수급자들의 노동유인은 완전히 사라진다. 이는 실업급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기존의 사회복지는 기본소득에 비해 실업을 조장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노동력을 크게 낭비하는 제도이며, 각 노동자의 사회복지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사회전체적인 사회복지재원 축소를 낳을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생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속가능한 유토피아’ 내지 ‘가능한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그러한 사회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조건의 일부 그것도 가장 중요한 일부일 수 있다. 그것은 빈곤과 실업에 대한 유력한 대안이며, 소년소녀가장‧장애인‧외국인 모두가 떳떳하게 품위 있는 생존권을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소득만큼 더 많은 것은 누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령층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본소득의 최대수혜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령층도 기본소득운동에 나서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노령층 다수가 보수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보수적인 노령층이 있다면, 이는 그들이 급진화 될 계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령층이 노동자‧영세자영업자‧여성‧장애인‧청소녀‧사회활동가‧대학생‧외국인 모두와 더불어 급진화된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유토피아’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기본소득은 이를 위한 수단이고, 그런 점에서 실질적인 인권, 시민권을 넘어서 인권의 확장을 위한 수단이다. 인권운동이 기본소득운동으로 확장될 필요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