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5 14:00
[사회]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4월호 기사(기본소득관련)
 글쓴이 :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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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완|조회 85|추천 0|2009.04.19. 16:50http://cafe.daum.net/basicincome/3ol8/3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4월호 32면에도 기본소득 기사가 실렸습니다. 아래에 나옵니다.

 

 


[Issue] 일하지 않는 자도 먹을 권리가 있다
'일자리' 대신 '소득'을 나누는 새로운 패러다임
[ $articleView->getFieldValue("serial_number") 호] 2009 년 04 월 04 일 토21:22:56 최우성

 

‘일하지 않으면 굶을 수밖에.’ 
자본주의 역사를 올곧게 지탱해온 절대 불변의 진리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한목소리를 낸다. 자본주의 분석가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양대 계급”을 한데 이어주는 ‘공통의 언어’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지난 100여 년 세월 내내 지구 곳곳의 노동자들은 ‘일하는 자’의 굳건한 자부심을 우렁찬 <인터내셔널> 노래 가락에 실어보냈다. 분노가 넘실대는 파업의 현장. 공장을 멈추게 하고 일터를 떠난 ‘일하지 않는 자’를 향해, 자본가들은 으레 똑같은 무기를 들이밀었다. “무노동? 무임금!” 
이제 세상은 2009년. 지난 세기의 영원한 트라우마 대공황과 맞먹는다는 격랑의 경제위기 한복판에서, ‘노동=소득’이라는 낯익은 절대 명제가 곳곳에서 도전받고 있다. 복지국가의 전통을 이은 서유럽에서 좌파 정권의 실험장이 된 남미대륙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패러다임’을 둘러싼 논의는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특징짓는 단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는 이렇다. ‘일하지 않아도 밥 먹을 권리가 있다!’라고.

서유럽에서 남미까지 달아올라

도전자들이 치켜든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기본소득’(Basic Income).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일자리를 갖고 있든 아니든 간에,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그 뼈대다. 마치 시민운동가에게, 예술가들에게, 어린이에게, 백수에게, 가정주부에게 나라에서 다달이 꼬박꼬박 지급하는 ‘월급’이라고나 할까. 100여 년 전 서유럽의 노동자들이 ‘일할 권리’(노동권)를 쟁취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면, 실업자와 불완전 취업자들로 넘쳐나는 21세기 자본주의 세상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권’(생존권)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기본소득 제도의 주창자들에게 법적인 의미의 고용관계 속에 포섭돼 있느냐 아니냐는 소득을 누릴 권리 유무를 가르는 절대 구분선이 아니다. 일자리 있는 자는 먹고 일자리 없는 자는 굶어야 하는 냉혹한 경계짓기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노동이란 이제 소득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없다고 믿는 탓이다. 일하지 않는 자,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자, 다시 말해 사회의 부(Wealth)를 불려나가는 생산 영역에서 ‘튕겨나온’ 모든 사람들에게도 일정 수준의 소득에 이를 통로를 열어주는 꼴이다.  
당장 국내만 봐도 변화의 싹은 조금씩 움트고 있다. 지난 2월 초,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한 권의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모든 국민에게 즉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한국의 기본소득 도입 전략을 다룬 연구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산물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에 따르면, 기존의 연금 및 실업급여 등 다양한 현금 지급형 사회복지제도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되, 자본주의적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과 세제 신설로 재원을 더욱 늘려 실질적인 복지제도망을 확충하는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전체 국민 중 10% 정도의 고소득자 소득이 나머지 90%의 기본소득으로 이전돼 실업자와 노령층,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곽노완 교수(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는 “기본소득이야말로 사각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복지 전략이자, 불로소득을 조장하는 현재의 불평등한 조세 체계! 를 뜯어�嚼〈� 조세 변혁 프로그램일 뿐 아니라, 더 광범위한 사회계층을 급진화·진보화하는 진보세력 집권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2월 말에는 온라인상에 기본소득 제도에 관심을 둔 국내 연구자와 사회활동가, 노조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카페(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됐다. 이들은 조만간 각국의 기본소득 관련 단체의 연대기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한국지부 결성 작업을 마무리짓고, 내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BIEN 정례행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현재 벨기에에 본부를 둔 BIEN 가맹지부로 이름을 올린 나라는 모두 16곳에 이른다.

불로소득 세율인상 등 조세변혁

과연 ‘왜’ 그리고 ‘지금’ 기본소득이라는 유령이 전세계를 배회하는 것일까? 기본소득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할 마법의 카드일까? 사회 구성원 누구나 자유로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의미의 기본소득이라는 발상이 하루아침에 세상에 등장한 건 아니다. ‘노동에서 분리된’ 소득이라는 개념의 싹은 이미 근대적 형태의 자본주의 태동기부터 움트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자본주의 역사와 함께 자라온 셈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란 이전의 전근대 사회를 특징짓던 빈곤과 노동이 마침내 둘로 갈라서서 제각각의 길을 걷게 된 출발점이다. 굶주림에 지쳐 농촌 곳곳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빈민층’(the poor)은 이제 ‘공장’이라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공간 안에서 ‘제 밥벌이’를 하는 자랑스런 ‘노동자’로 차례차례 탈바꿈했다. 분명한 건 그 대가 또한 숨길 수 없었다는 사실. 이제 노동이란 인간의 자유로운 자아실현 과정과는 한데 포개질 수 없는 운명으로 변해버렸다. 오로지 부의 증식에 보탬을 주는 노동, 곧 ‘임금노동’만이 미약하나마 ‘근로소득’이라는 이름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인간의 노동력마저 무자비하게 상품화해버리는 이 냉혹한 새 물결 앞에서 19세기의 이른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에서 분리된 소득에 대한 꿈을 차곡차곡 키워나간 건 충분히 이해됨직한 일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정작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사회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본격적으로 끌어낸 당사자들은 되레 ‘보수·우파’ 진영이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부터 몰아친 보수주의의 광풍을 타고, 이들은 기본소득을 구체적인 ‘사회개혁 프로젝트’로 현실화하려는 행보를 재촉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제도 유지 비용을 줄여 복지국가를 ‘대수술’하는 해법으로 기본소득을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80년대 이후 미국을 필두로 대부분의 서유럽 나라들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부쩍 활기를 띤 비밀도 여기에 있다. 모든 복지제도망을 해체해버리는 대신 그 재원을 전 국민에게 일정액씩 나눠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는 게 그들의 메시지였다. 이처럼 노동력의 상품화를 거부한다는 애초의 급진적·사회비판적 발상은, 이제 공평하게 일정액의! 돈을 손 에 쥐어주는 대신 모든 것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에 넘기자는 개인주의적·신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한때나마 방향을 잃기도 했다. 다시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기본소득 논의에 대해 각국의 좌파·진보 진영 일각에서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유다.  

원래는 보수진영의 복지 수술 해법

그럼에도 좌우의 경계를 가로질러, 새로운 패러다임에 담긴 ‘합리적 핵심’을 적극적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분명히 높다. 무엇보다 현대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는 우리의 발상을 바꾸는 출발점이다. 현대적 의미의 기본소득 모델을 창안한 벨기에 루벵대의 필레페 판 파레이스 교수는 “현대자본주의에서는 점점 더 적은 양의 노동력이 생산과정에 투입되면서도 점점 더 많은 양의 사회적 부가 생산되고 있다”며, “‘고용’에 뿌리를 둔 지금까지의 분배 패러다임은 이제 사회의 건강한 유지를 위해선 수명을 다했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과정 자체의 변화에 좀더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력의 양적 투입에 뿌리를 둔 ‘물질노동’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녔던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가 지식기반 사회에 들어서면서 연구개발((R&D)이나 창의성과 같은 생산요소가 부의 생산과정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는, 이른바 ‘비물질노동’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프랑스 파리10대학 산업사회연구소의 카를로스 베르첼로네 박사도 그중 하나다. 그는 “지식기반 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면 부는 기업이라는 공간 안팎에서, 그리고 좁은 의미의 생산과정 앞뒤를 가리지 않고 생산되고 있다”며 “더 이상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가 행하는 노동 가운데 상당 부분은 임금 형태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면서 “삶 전체가 넓은 의미의 노동과정 안으로 포섭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소득분배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현대자본주의의 생산함수란 게 단순히 노동과 자본만으로는 온전하게 설명될 수 없는 일종의 ‘미로’인 까닭에, 사실상 사회 구성원의 공동 참여에 따른 결과물인 ‘사회적 생산물’을 나눠갖는 새로운 생산(고용)·소득(분배)의 틀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조금 과장하자면, 현대사회에선 영화(혹은 TV 프로그램)의 시청자도 작품 창작에 엄연히 기여했으니, 그들에게서 시청료(관람료)를 거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익의 일부를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 천재적 영화감독 고다르의 시야가 머무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지식사회 비물질 노동시대의 도래

잔잔한 불씨로만 남아 있던 기본소득 논의는 지난해부터 몰아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바람을 타고 이제 현실 무대로 한 걸음씩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올해 초 독일에서 진행된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온라인 청원운동은 기준치(5만 명)를 단숨에 넘기는 성과를 거둬, 독일의회의 공식 청문회 개최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사르코지 정부는 오는 6월부터 기존의 극빈층 생활지원금(RMI)을 ‘적극적 연대수당’(RSA)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고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뜻으로, 기본소득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시도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의 ‘생존소득진흥협회’(AIRE)를 이끌고 있는 욜랑 브레송 대표는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생산을 늘리는 데만 경쟁을 벌였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해진, 전혀 다른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며, “기본소득이야말로 생산·소비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해법”이라고 말했다.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더 넓은 사회계층과의 연대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 좌파당의 정책보좌관인 로날드 불라시케는 “기본소득은 ‘노동중심주의’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기존 노동운동을 여성운동·문화운동·실업자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 영역과 맺어주는 연결 고리 노릇을 한다”며, “경제위기 속에 진행되는 각국의 일자리 나누기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노동력의 부분적인 탈상품화의 길을 열어주는 기본소득이라는 안전판에 대한 고민이 절실할 때”라고 강조했다. ‘코뮤니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 현대판 기본소득 모델의 핵심 이론가로 꼽히는 파레이스 교수는 일찍이 기본소득을 일러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다. 여기에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로 단칼에 정의되던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자유로이 생산과정에 참여하되, 그 사회적 결과물인 생산물을 나눠갖는 새로운 분배 원리에 대한 상상력만이 활짝 열려 있을 뿐이다. 시장과 자본의 무자비한 폭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실험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일하지 않아도 먹을 권리를 움켜쥐자는 기본소득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과연 21세기판 공상주의자들의 헛된 요설로 끝맺음할 것인! 가? 아니 면 뿌리 깊은 노동중심주의의 탯줄을 과감하게 끊어내고 ‘대안사회’를 열어가는 ‘트로이의 목마’ 노릇을 할 것인가? 그 ‘열린’ 가능성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 

글•최우성 morgen@hani.co.kr
독일 브레멘 대학 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경제주간지 <이코노미21> 편집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겨레신문 경제부문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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