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만이 해법이다 [기본소득③] 기본소득과 기존복지제도(워크페어) 비교
복지는 보편적이어야
복지(福祉)는 행복한 삶이다. 삶의 질 향상이라고도 한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회구성원을 심사해 복지를 제공한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복지 방식이다.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이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했던 말 역시 “있는 집 아이들에게까지 왜 급식을 무상으로 주어야 하느냐?”였다. 하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적 무료급식은 ‘아이는 물론이고 그 부모들에게까지도 상처를 주는 방식’이다.
선별적 복지는 심사라는 방식으로 대상자에게도 책임을 요구한다. 개인은 수급을 받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격 심사를 위해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또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선별적 복지는 대상자의 특정한 권리들을 박탈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빈곤의 덫
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양극화는 한국사회의 근간을 흔들어버렸다. 1999년에 제정되어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기초법)는 생활이 어려운 자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하여 이들의 최저생활 보장과 자활을 위한다는 이유로 제정되었다. 초기에는 대상자를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칭했으나, 이후 사회보장이 시혜가 아닌 수급자의 권리라는 측면이 두드러지면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명명되었다. 기초법은 현금 지급과 현물 지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현금 지급은 생계비지원 총액에서 개인의 소득을 빼는 보충급여 방식이다. 따라서 엄격한 자산ㆍ소득 심사가 존재하며, 재산과 소득으로 간주하는 범위 또한 매우 넓다. 이웃이나 친지로부터 받는 지원금을 소득으로 분류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생활 실태로 보아 소득이 없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자’에 대하여 적용하는 ‘추정소득’도 명문화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은 수급자의 생활을 통제하는 효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재산 축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수급자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저지한다.
기초법 10년을 맞아,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관련 토론회를 다양하게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결같이 지적된 것이 통계 추정조차 힘든 광범위한 사각지대다. 200만 명에서 4~500만 명에 이르는 기초법 사각지대는 심사 요건을 완화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초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너무 많다.
서울수도권 지하철 1호선 의정부~인천 구간에서 실시된 사회당 기본소득 정치광고ⓒ 권문석 근로장려세제:미봉책의 전형
기초법 시행에 따른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근로장려세제(EITC)다. 근로장려세제는 노동빈곤층(Working Poor)을 지원하기 위해 2006년에 도입된 것으로,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시행된 EITC(Earned Income Tax Credit)의 모방이다. 이 제도 역시 까다로운 자격 기준이 있다. 근로장려세제는 부부합산 연소득 1,700만 원 이하, 자녀 1인 이상인 무주택 가구 단위로 지급된다. 이 기준은 기혼 여성의 노동 의욕을 확연히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좁은 기준만큼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만든다. 독신자, 한 부모 가정, 자녀가 없는 부부 등은 의심할 여지없이 대상이 될 수 없다. 여기에 이중지원 방지 원칙에 따라 기초수급자들도 추가로 배제되는데, 이 점은 빈곤층이 차상위 계층으로 편입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근로장려세제는 노동연계복지(Workfare)에 속하는데, 자본주의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고용과 소득보장 문제를 부분적으로만 해결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완전고용은 불가능하고, 고용 없는 성장만이 계속되는 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조건이다.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노동, 실업, 불충분한 소득의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연계복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양심을 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임금을 약간 보충해주는 역할밖에 못 한다. ‘절망근로’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희망근로사업이 그렇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의지마저 꺾는 것이 노동연계복지다. 이명박 정부와 같은 정권이 계속될 경우, 노동연계복지는 더 강화될 것이다.
원래 근로장려세제는 노동 의욕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수입 기준을 장벽으로 만듦으로써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진다. 노동 의욕의 저하 역시 일종의 자유권에 대한 통제 중 하나라고 볼 때, 기존의 복지제도는 노동을 강요하고 포기하게 하는 통제를 동시에 행하는 셈이다. 이런 문제점은 복지에 조건을 붙이지 않는 보편주의적 전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기본소득은 노동에 대한 국가 및 제도적 통제를 일부분 없애며, 노동연계복지의 대척점에 있다.
선별적 복지의 근본적 모순
선별적 복지에 있어 심사와 선별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명분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가 정당화될 수 있는 요건은 ‘결과적 보편성’이며,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선별적 복지는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완을 거듭하며 또한 양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 증식이 끝날 즈음엔, 인구와 복지제도의 종류 사이에 별다른 수적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또 엄격하게 강화된 심사와 관리는 개인에 대한 통제로 작용하며, 복지 재정의 상당 부분이 그 제도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쓰일 것이다. 선별적 복지가 ‘정말로’ 결과적 보편성을 위한 것이라면 말이다.
보편주의에서 벗어난 복지관은 복지를 사회구성원에 대한 통제의 수단이 될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기본소득의 ‘심사도 요구도 없다.’라는 점은 선별적 복지의 이런 점과 비교할 때 도덕적 우위까지 가진다.
사회보험제도 개선:조세형 기본복지로
고 용ㆍ산재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의 사회보험제도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정노동 계층의 사회안전망 확보가 불가능하다. 최저임금 현실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남성ㆍ정규직ㆍ대공장 중심으로 짜인 소득비례방식 사회보험 내에서의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식의 확대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수탈 경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더라도 저출산 고령화, 기술 진보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노동시장 유연화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미 현실은 그렇게 바뀌고 있다. 또한,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모든 사회보험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교육ㆍ의료ㆍ주거ㆍ보육ㆍ노후 등의 기본복지로 재편돼야 한다. 기본소득 도입은 기본복지와 함께 이뤄져야 온전한 의미가 있다. 사회보험제도를 조세형 기본복지로 전환하는 것은 사각지대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보편적 복지는 소득 재분배를 넘어서는 효과 가져와
기본소득 도입은 상당수 현금 지급형 복지의 통ㆍ폐합을 의미한다. 보편적 복지는 모든 선별적 복지의 총합을 포함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된 사회에서 기초법과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것은 불필요하다. 그 대상자들 자체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본소득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은 기본소득 도입과 함께 기본복지라는 사회서비스 보편화 과정과 함께 확대돼야 한다. 교육ㆍ의료ㆍ주거ㆍ보육ㆍ노후 등이 이에 속한다.
기존의 선별적 복지제도가 소득 재분배와 사회양극화 해소라는 목표 달성은커녕 스스로 존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기에 빠져 있다.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으로 이뤄진 현재의 복지제도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 현재의 복지제도를 보완하면서 더 많은 선별적 복지제도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 복지의 길인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실시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