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일체의 자산 심사나 노동 강요 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동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과 소득의 연계는 부분적으로 완화되며 사회구성원에게 시장임금의 형태 이외의 소득이 주어진다. 지급액은 경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의 유지가 가능할 만큼 충분한 액수여야 하며 물가상승률과 연동된다. 기본소득은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고용이 줄어드는 시대에 실업자, 비정규직, 돌봄 노동자, 가사 노동자, 노인층의 경제적 배제를 완화한다.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는 서민 중심의 내수를 촉진하여 수출ㆍ내수 동반성장으로 경제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며, 개별 노동자의 교섭력을 제고하여 과잉노동을 줄이고 일자리 나누기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형태 이외의 사회적 활동의 여러 대안적 형태들에 사회적 기초를 부여한다. 또한 기본소득은 노동의 성격과 질도 변화시킨다. 즉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지식기반노동으로의 전환을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여기까지, 기본소득의 지지자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글은 기본소득에 대하여 다른 차원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란 사회국가와 사회공공성의 파괴의 시대이고, 공공적 복지체계가 시장화되고 잔여화되는 시대이다.ⓒ 민중의소리
즉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전제 조건이며, 2008년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를 해소하는 대안이며,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기본소득 그 자체가 새로운 민주주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뜻한다. 기본소득은 민주주의다. 이런 주장에 마주치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단지 복지체계의 한 형태를 의미하지 않고 포괄적인 경제대안임을 확신하는 사람들도 '기본소득은 민주주의다'와 같은 주장을 들으면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본소득 개념을 구성하는 원리들을 분석적으로 뜯어보고 또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공화국의 이념에 전제된 원리들과 비교해 본다면, '기본소득은 민주주의다'라는 다소 생경한 주장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오늘날의 현실에 기본소득을 끼워 맞추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다는 부당한 혐의를 벗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과 민주주의는 같은 원리로부터 나온다. 17세기 초 영국의 구빈법(救貧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존의 복지체계는 선별주의로 요약된다. 복지에서의 선별주의는 복지 요건을 선별하고 제한하여 당사자의 특수한 처지에 따라서만 복지를 제공한다. 우파는 복지를 시혜로 보며, 복지가 시혜로 간주될 때 수혜자에게는 하루빨리 그와 같은 수치스런 처지에서 벗어날 것이 의무가 된다. 좌파는 복지를 처지가 어려운 사회 구성원에 대한 사회연대로 파악한다. 하지만 시혜이건 연대이건 선별주의는 복지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동등한 권리로 파악할 수 없다는 공통적인 한계를 가진다. 기본소득은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다.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이유는 수령자의 '특수한 처지' 때문이 아니라 그도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복지의 요건은 가난, 실업, 노동능력 상실 등과 같은 특수한 처지로부터 사람, 경제사회의 구성원, 국민과 같은 보편적 자격으로 바뀌게 된다. 기본소득은 개별 사회 구성원의 특수한 처지를 요건으로 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원리처럼 오직 국민 또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보편적인 자격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자비나 연대성의 원칙에 근거를 둔 선별주의 복지와 기본소득의 보편주의는 원리부터 다르다. 기본소득은 약자에 대한 시혜나 연대를 넘어 평등한 권리에 근거한 만인의 진정한 통합으로 나아가는 지렛대이다.
정치적 국민주권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평등한 선거권을 가진다. 기본소득도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기본소득은 재산 정도나 노동 여부 등 어떤 특수한 경제적 조건과 상관없이 오직 사회 구성원이라는 평등한 자격에만 근거를 두고 동일한 액수로 지급된다.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주의 복지에서 복지 원리와 민주주의ㆍ국민주권 원리의 상동성(相同性)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본소득은 국민 모두의 나라, 곧 '공화국'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면 이제 '기본소득은 민주주의다'라는 언명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는 점이 좀 더 분명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를 좀 더 전개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와 원리적 상동성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의 평등은 소득 일반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본소득 도입에도 불구하고 시장임금이나 자산 소득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은 경제적으로 여전히 불평등하다. 물론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완화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소득불평등이 존재하는 한에서, '기본소득은 민주주의다'라는 말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기본소득은 무조건적 평등 원리에 기초하지만 소득 일반은 조건적인 불평등을 허용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본소득이 소득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점은 기본소득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 중에 아주 작은 지점만을 비추어 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좀 더 다른 각도, 곧 평등 원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통성의 원리, '공화국'의 이념에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 모두의 나라로서 '공화국'은 국민의 일정한 수준에서의 공통성을 전제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바로 이 공통성이란 사회경제적 차원의 공통성을 뜻한다. 즉 자유 의지의 주체라든지, 자유권의 주체라든지 등으로 표현되는 자유주의 근대의 인간공통성 이상의 공통성, 곧 사회적 조건에 있어서 사회구성원 모두의 최소공통성을 전제한다. 달리 말하자면, 국민 모두의 나라로서 '공화국'은 국민 모두에 대한 적극적 복지를 전제한다. 즉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에 충분한 정도의 기본소득을 공통적으로 획득하며 의료ㆍ교육ㆍ주거ㆍ보육ㆍ노후에서의 기본복지가 예외 없이 보장될 때, 국가는 비로소 '공화국'일 수 있다. 기본소득은 경제사회 구성원들의 공통성, 국민의 사회적 공통성을 형성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국가는 비로소 '공화국'이 된다.
우리는 같은 논리를 국민주권의 개념에 대하여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국민주권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부여만으로 실현할 수 없다.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를 통해서 국민의 사회적 공통성이 확보될 경우에만 모든 국민이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획득하며, 국민은 비로소 나라의 실질적인 주권자가 된다.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해법이다.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를 민주주의 후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만 퇴진하고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민주주의가 과연 실현되는가? 민주주의 후퇴와 같은 상황 규정, 민주회복과 같은 과제 설정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말할 때 정작 위기의 성격이 무엇이며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의 문제를 은폐한다.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도 역시 봉쇄되어 버린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회복 담론은 이명박을 악마화하며 이명박 정부를 단순하게 반민주주의로 과잉 규정해 버린다. 1987년 민주주의가 성취한 모든 성과들이 일정하게 후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를 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지시키고 평등 선거권을 박탈하는 반민주주의라고 규정할 수 없듯이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의 해법도 이명박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해서 위기의 세계적 수준, 위기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현재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1987년 이전으로의 퇴행의 문제가 아니며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일반적인 증상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시대란 사회국가와 사회공공성의 파괴의 시대이고, 공공적 복지체계가 시장화되고 잔여화되는 시대이며, 그 결과 그 이전에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접근 가능했던 공공서비스가 시장에서 구입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뀐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는 서유럽에서도 진행된 일이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는 극단적 신자유주의 정부이다. 이명박 정부를 통해 1997년 이후 진행되어 온 민주주의 위기는 심화된다. 하지만 이미 민주주의 위기는 1997년 체제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 민주공화국과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관철이며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경제의 필연적인 정치적 귀결이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와는 달리 민주화 운동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명박 정부가 노골적인 사영화, 부자 감세, 복지 삭감을 행함으로써 과거와 같은 착시현상이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착시현상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수정권의 등장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방향은 1987년 민주주의의 회복이 아니라 1997년 이래로의 신자유주의 극복의 문제와 불가분의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극복의 대안은 무엇일까? 당연히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더 많은 민주주의, 서민중심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이고, 곧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다. 그리고 기본소득이야말로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