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2 11:44
[사회] [성은미] 사회적 연대의 새로운 아이디어,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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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EfA|조회 147|추천 0|2009.02.21. 18:38사회적 연대의 새로운 아이디어 : 기본소득(basic income)
성은미 | 진보정치연구소 상임연구위원 | 노동자의 힘 제 118 호 새로운 아이디어, 기본소득(basic income)
국가가 한 달에 약 50만원씩 전 국민에게 용돈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혹시 지금 혼자 산다면, 50만원을 받을 수 있고, 장성한 자녀 2명과 함께 산다면 한 달에 200만원쯤 받게 된다. 이게 바로 기본소득(basic income)제도다. 즉 기본소득제도는 정부가 '전 국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주는 수당'제도다. 기본소득제도의 이념은 이 돈만으로 전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기본소득제도가 가지고 있는 여러 장점 때문에 유럽의 진보적인 사람들 중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본소득제도가 처음 이야기 된 것은 1940년대지만, 다시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유럽의 과거 복지국가가 빈곤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와는 다른 문제들, 즉 일하는 빈곤층의 증대, 비정규노동자의 증대와 같은 문제에 과거 복지국가가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에 따라 OECD뿐만 아니라 영국의 녹색당, 유럽의 진보적인 정당과 학자들은 기본소득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기본소득제도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사회복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거나, 혹은 가입하고 있는 사회보험은 보험료를 내야만 한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것은 절대빈곤층이라는 것이 증명되어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도는 조세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민이기만 하면 지급된다. 그 사람이 일한 적이 있거나 없거나, 혹은 보험료를 낸 적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그냥 그 나라의 국민이기만 하면 된다.
완전한 기본소득제도, 존재하긴 하는가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제도를 실현한 국가는 없다.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제도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연금, 고용보험을 모두 없애고 그 자리를 기본소득제도가 차지하는 것이다. 때문에 쉽게 도입되기 어렵다. 생각해보라. 매달 꼬박꼬박 연금이나 고용보험료를 냈는데, 하루아침에 이를 없애버리고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제도를 적용한다고 한다면, 그 동안 낸 보험료가 눈앞에서 아른거리지 않겠는가. 그러니 연금이나 고용보험을 장기간 낸 노동자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야 아직 연금이 시작된 기간이 짧지만, 유럽 같이 연금을 시작한 지 오래된 경우에는 연금가입자들에게 그 동안 낸 보험료를 돌려줄 수 없다. 그러니 이런 것들을 모두 없애고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주로 기본소득제도는 부분적으로만 도입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에는 노동빈곤층 즉 장기실업자만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만들어냈다. 또한 넓게 보면, 조세로 전 노인층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제한적인 형태의 기본소득제도라 할 수 있다.
기본소득제도, 문제는 없는가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기본소득제도 역시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다. 게다가 그 문제들 중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매달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해도 50만원씩 준다고 하면 먼저 발생할 문제가 무엇일까? 우리들의 예상처럼,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게 바로 기본소득제도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치열한 논박의 핵심이다. 두 번째 문제는 노동시장유연화와 관련된다. 만약, 정부가 50만원씩 매달 준다고 하면 기업주는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려고 할까? 또한 구조조정이나 노동시장유연화를 추진한다고 할 때, 노동자들의 반대가 거셀 것인가? 그래서 기본소득제도 도입은 최저임금제와 함께 논의되기도 한다. 즉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최저임금제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 문제는 기본소득제도의 재원이다. 상식적으로 전 국민 특히, 성인에게 매달 50만원씩 준다고 할 때 필요한 재원은 대략 한 달에 12조, 1년에는 144조다. 이는 어림잡아 우리나라 GNP의 약 30%정도를 차지한다.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 가능한가에 대한 지적이다.
기본소득제도는 황당무계의 극치인가
기본소득제도 특히,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은 황당무계할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소득이 담고 있는 정신과 내용의 핵심인 '아무런 조건 없이' 전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기본소득은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뒤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을 생각해보자.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매달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야 노년에 단 얼마라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고용보험도 마찬가지이다. 180일 즉 6개월 간 보험료를 내야만 실업자가 되었을 때 고용보험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이렇다보니 일을 해서 고용보험이나 연금에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청년실업자, 영세자영업자, 비정규노동자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또한 이들은 임금이 낮다. 사회보험은 주로 낸 것만큼 주기 때문에 비정규노동자를 포함한 저소득층은 적게 내고 적게 받게 된다. 그 수준이 너무 적어서 이들이 사회보험금을 받더라고 노후나 실업 때에 기본생활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크게 변화될 가능성이 없다. 물론, 이런 불평등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부적인 방안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부적인 대안들이 장기적이지 못하거나 혹은 그 효과가 적다는 데 있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사회보험을 통해 기본생활을 보장받는 일은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소득제도를 하나의 '제도'로서 접근해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 제도가 가지고 있는 핵심목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다.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상상해보자. 기본소득의 원리를 수용하고, 지금의 제도들을 개편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수밖에 없다. 4대 사회보험을 완전통합하고, 사회보험료를 사회복지 목적세로 전환하는 것이 아마도 1차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정정도 손해 보는 사람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마도 이 손해는 소득이 정확하게 파악되고, 4대 사회보험에 모두 가입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정부분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보험제도 아래에서 받게 되는 보험금과 기본소득으로 받게 되는 돈을 계산해보면, 그리 큰 손해는 아니지만 말이다. 동시에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사회보험금 지급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제도로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진 않지만, 기본소득의 원리인 전 국민의 기본생활보장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문제가 또 있다. 혹시 지금 일 잘하고 있는데, 사회보험 받아본 사람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는 사회보험이라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업자가 되었다거나 병에 걸렸을 경우 말이다. 따라서 저소득층 즉 노동빈곤층의 저임금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1차적인 방법은 당연히 그들이 일하는 직장에서 제대로 된 임금을 보장받는 것일 것이다. 즉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것,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것이 노동빈곤층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영세자영업자나 기업주에게 뭘 따낼 수 없는 비정규노동자들, 장기실업자나 청년실업자들이 그들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원리에 따른 2차 과제는 이들 저소득층에게 매달 일정정도 기본소득형태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저소득층에게 매달 급여를 지급하는 것과 개혁된 사회보험이 통합적으로 작동한다면, 사실상 기본소득제도의 핵심을 실현할 수 있는 출입문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바로 이 2차 과제부터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 즉 기본소득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사실상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은 계급연대뿐이다. 우선, 당연히 많은 재원이 필요해진다. 물론, 이 중 상당부분은 기업주로부터 걷어야 한다. 기업주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혹은 비정규노동자를 사용해서 발생하는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기업주에게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재원이 비록, 기본소득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간소득층에 있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세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세금인상수준이 1∼2%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 열심히 해봤자 높은 세금만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 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사실상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애초 목적했던 기본소득의 핵심은 실현될 수 없고, 그 어떤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도 실현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계급연대이다. 기업주가 높은 부담을 질 수 있도록 싸워내는 과정에서, 그리고 중간소득층이 높은 세금부담증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계급연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실상 기본소득의 원리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러나 높은 부담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비록 높은 세금부담을 지지만, 자신이 저소득층이 되었을 때 혹은 비정규노동자가 되었을 때 일정수준 이상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런 계급연대는 실현가능하다.
계급연대, 무엇이 중요한가 기본소득제도는 사실상 한국에서는 생소한 것이고, 아직 제대로 실현한 국가도 없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고, 우리가 혹은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칼바람에 쓰러지는 이때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은 작업장을 둘러싼 투쟁만큼이나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가끔은 작업장에서의 희생과 기본생활보장을 맞바꾸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작업장에서의 유연성 강화와 약간의 사회복지증대를 맞바꾸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여러 가지 사회적 질타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작업장에서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작업장에서의 고용안정과 임금보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안전판으로서 기본소득의 원리는 실현될 수 없다. 즉 계급연대가 실현된다고 해도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면 일하려는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본소득원리 실현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계급연대를 작업장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작업장과 기본생활보장이라는 것을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07년01월31일 21시59분 http://news.pwc.or.kr/news/view.php?board=news&id=3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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