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5-15 14:00
[사회] 2009.4.13일 한겨레 기사(대전환의 시대 2부 1회, 기본소득제도):광고삭제본
 글쓴이 :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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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완|조회 77|추천 0|2009.04.14. 12:24http://cafe.daum.net/basicincome/3ol8/30 
고용없는 시대…‘기본소득’은 실업자 생명줄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
한겨레  최우성 기자

 

위기’의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싹이 자라나는 무대다. 경제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각국에서는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한계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며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는 움직임 또한 거세다. 자본주의 체제를 특징짓는 분배원리에 대한 고민에서 시장과 국가의 새로운 자리매김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겨레>는 ‘대전환의 시대’ 제1부 기획으로 지난 1월초부터 약 한 달 동안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 아래 세계 석학과의 대담을 이어간 데 이어, 이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실험의 현장을 찾아가는 제2부 연재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발전모델의 기본 뼈대를 이뤘던 7개의 열쇳말을 통해 대전환의 싹은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을지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볼 예정이다. 그 첫번째 시도로 고용과 소득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물으며 사회구성원이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릴 권리를 주자는 기본소득 제도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시내의 길거리에 일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지은 채 쭈그리고 앉아있다. 이날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재정수입이 부족해 앞으로 7천명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최근엔 공영방송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로 오르내릴 정도에요.”

독일 쾰른의 지역단체에서 일한다는 요한네스 포나더(38)에게 기본소득이란 더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그는 “일자리를 지키느냐 나누느냐를 둘러싼 공방과는 무관하게, 무언가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싹이 분명 자라고 있다”며 독일 사회를 차츰 달구고 있는 격렬한 논쟁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2월17일 막을 내린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온라인 청원운동’은 최저기준치(5만명)를 훌쩍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독일 의회에서는 곧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관한 공식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웃 프랑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초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는 6월부터 기존의 ‘극빈층 생활지원금’(RMI)을 ‘적극적 연대수당’(RSA)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수 성향의 프랑스 정부가 경제위기에 맞서기 위해 나름의 해법으로 내놓은 다소 파격적인 카드다. 지금까지의 생활지원금은 저소득자의 생계를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근로의욕’을 키우는 데 무게를 둔 편이다. 하지만 이제 ‘지원’에서 ‘연대’ 쪽으로 한걸음 더 옮겨가게 된다.

애초 기본소득은 198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과도한 비용 부담에 허덕이던 복지제도를 수술하는 해법의 하나로 조심스레 논의되기 시작했다. 욜랑 브레송 프랑스 생존소득진흥협회(AIRE) 대표는 “실업인구가 크게 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복지제도가 엄청난 재정부담을 안겨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말로 그 배경을 설명했다. 기존의 복잡한 복지전달체계를 대폭 단순화해 불필요한 관리비용을 없애는 대신 그 혜택을 기본소득 형태로 돌려주자는 판단에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정액의 돈을 손에 쥐어주되, 이제 모든 책임을 정부의 손에서 개인에게로 떠넘기려는 보수·우파의 사회개혁 프로젝트와 한묶음으로 받아들여진 건 이런 배경에서다.

 

생산-고용-소득 제각각
자본주의 뿌리까지 흔들려
분배구조 새틀 마련 절실

하지만 최근 유럽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새롭게 논쟁의 한가운데로 등장한 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돌파구를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찾아보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부터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각국 기본소득 관련 단체의 연대기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필리페 판 빠레이스 공동대표는 “삶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공급(생산)을 늘리는 게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절대과제였다면, 이제부터는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라며 “소비의 선순환구조를 시스템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선 기본소득 제도가 훨씬 효과가 클 것”이라 말했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무엇보다 생산-고용-소득(분배)을 연결짓는 자본주의의 근본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는 데 주목한다. 파리1대학 산업사회연구소의 카를로 베르첼로네 박사는 “생산기술 발전에 따라 취업유발계수가 갈수록 낮아져, 앞으로는 경기와 무관하게 실업자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식기반 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이제 부가 기업이라는 공간 안팎에서, 즉 좁은 의미에서는 생산과정 안팎에서만 창출되고 있어 법적인 고용관계와는 분리된, 새로운 생산-고용-분배 체제의 싹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본소득이야말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구성원 각자가 누리는 하나의 권리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이나 실업자운동, 청년백수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과 연대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관심은 자연스레 브라질로 쏠리고 있다. 브라질은 월 소득 137헤알(약 8만원) 이하 극빈층에게 교육비와 식료품비 등을 지원하는 생계지원프로그램인 ‘볼사파밀리아’를 내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시민기본소득’ 제도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입법예고한 상태다. 이미 안정적인 복지제도망이 갖춰진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 것이다.

“누구나 삶의 권리 누리도록
공평하게 수당 나눠주자”
서구 기본 소득제 논의 활발

물론 서구사회에도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있다. 특히 기존 노동운동 진영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독일 공공서비스노조의 정책담당 노베르트 로이터 박사는 “기본소득 제도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거둔 성과 자체를 해체하려는 우파의 속임수”일 뿐이라며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사회보장 제도를 확충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기본소득 제도를 찬성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인 괴츠 베르너 데엠 회장도 “설령 모든 사람에세 일정 수당을 나눠준다고 해도 기업으로서는 각종 사회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어져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며, 세금 부담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존의 좌·우 구도에 흔들리지 말고 기본소득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독일 좌파당의 정책보좌관인 로날드 블라쉬케는 “기본소득이야말로 노동력의 부분적인 탈상품화를 가져와 노동자 진영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무기”라며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 안전판을 만들어준다는 점에 비춰볼 때,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자리나누기 실험을 진정한 성공으로 이끄는 강력한 견인차 노릇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칼스루에·베를린(독일)·루벵누브(벨기에)·파리(프랑스)/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복지제도의 해체? 전환이자 강화다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
[인터뷰] 필레페 판 파레이스 기본소득지국네트워크 공동대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자, 독일의 대표적인 민간 경제연구기관인 함부르크세계경제연구소는 지난 2007년 기본소득 모형을 실험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연구소는 분석 결과 기본소득이 여타 복지제도에 견줘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일 뿐더러 재정 운영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매달 벌어들이는 명목소득이 각각 1천~5천유로(약 180만~900만원)에 이르는 5명의 개인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61%의 명목 소득세율을 적용할 경우, 각자가 부담하는 명목 소득세액은 당연히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 이제 이들 모두에게 매달 600유로(108만원)씩의 기본소득을 나눠준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각자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소득세액도 다르고 결과적으로 5명의 실질소득 격차는 1100유로(198만원)~3150유로(567만원)으로 줄어든다. 실질세율의 경우, 1천유로를 벌던 사람은 11%, 5천유로를 벌던 사람의 37%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대전환의 시대’ 2부 “국가가 온국민에 월급을”
‘기본소득제’ 포스트 자본주의를 향한 화두로
한겨레

“전국민에게 나라에서 ‘월급’을 주자!”

지난 2월 말 독일 중서부 소도시 카를스루에에 본부를 둔 ‘기업가정신 연구소’에서는 이런 화두를 놓고 스무명 남짓의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을 이끈 주인공은 올해 나이 예순다섯의 독일 기업가 괴츠 베르너. 지난 회계연도에 47조유로(약 8조원)의 매출을 거둔 생활용 화학제품 전문체인업체 ‘데엠’(dm)의 창업자이자 회장으로, 요즘 독일은 물론 이웃 유럽 나라들에서도 부쩍 이름을 날리는 ‘스타’ 경영자다.

“소득이 모자란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명을 하거나, 이제는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보조금을 줘서는 안 된다. 부자이건 실업자이건 똑같이 소득을 나눠주면 된다.” 냉엄한 최고경영자의 입에선 놀랍게도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명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도발적인 이야기들이 튀어나왔다. 한마디로, ‘일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먹을 권리를 줘야 한다’는 게 그가 한 주장의 뼈대다.

베르너 회장이 이날 던진 주제는 바로 ‘기본소득’(Basic Income)이다. 소득이 많거나 적거나, 일을 하거나 않거나 상관없이 국민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소득을 누릴 수 있는 권리(소득권)를 주자는 얘기다. 이를 위해 기존 복지예산을 전부 이쪽으로 돌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세금을 늘리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1980년대 이래 극소수 이론가들이나 급진적 활동가들 사이에서만 논의되던 이 주제는 최근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나라를 비롯해 남미 대륙에 이르기까지 좌우를 넘나드는 ‘공론의 무대’로 성큼 올라섰다. 시장과 자본의 무자비한 탐욕과 폭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한 시대가 이제 길거리에 넘쳐나는 기나긴 실업자 행렬만을 남긴 채 서서히 그 끝을 알리는 지금, 한 사회의 생산물을 나눠갖는 새로운 분배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카를스루에·베를린(독일)/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평등한 사회 꿈꾸는 ‘기본소득제’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
[특별기고] 에듀아르도 마타라쪼 수플리시 브라질 상원의원

 

 

브라질은 내년부터 시민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한다. 이 제도 도입에 앞장섰던 에듀아르도 마타라쪼 수풀르시 브라질 상원의원이 기본소득 제도의 장점을 설명하는 글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현재 브라질은 ‘볼사파밀리아’(Bolsa Familia)라 불리는 소득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는 가구는 모두 1130만가구에 이른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 2003년 당시의 350만가구에 견주면 놀랄만한 성과다. 볼사파밀리아프로그램이 대략 브라질 인구 1억9030만명의 4분의1에 해당하는 4500만명을 끌어안아, 불평등지수(지니계수)는 2002년 0.58에서 2007년 0.55로 개선됐다.

지난 2004년에는 볼사파밀리아프로그램의 혜택 폭을 더욱 확대하는 법률안이 브라질 의회를 통과하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이에 서명했다. 이제 이른바 ‘시민기본소득’이라 불리는 제도가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것이다. 시민기본소득은 처음에는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혜택을 받지만, 차츰 성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 대상이 확대된다. 브라질에 5년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까지 포함돼 아무런 사회경제적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왜 모든 사람에게 소득을 나눠줘야 할까? 심지어 혜택을 받을 필요도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 제도의 장점은 무엇일까?

첫째, 각자가 공식 및 비공식 시장에서 얼마를 버는지를 알기 위해 필요한 복잡한 관료제의 폐해가 없어진다. 둘째, 정부 보조금을 받고자 자신의 낮은 소득을 증명해야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고 그들을 ‘저소득자’라고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행위를 없앨 수 있다. 셋째, 누구나 일정 수준의 시민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부를 나눠갖는 과정에 참여하는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

넷째, 개인의 소득수준에 근거해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의 특징인 ‘의존 현상’을 없앨 수 있다. 즉 기존의 여러 지원 프로그램은 수급자의 근로활동이 늘어나고 그들의 소득이 늘어나면 지원금이 없어지므로, 오히려 자발적으로 근로활동을 늘리려는 유인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반해 시민기본소득은 근로활동을 적극적으로 늘리더라도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본소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오히려 북돋울 수 있다.

다섯째, 노동시장에서의 지위와 무관하게, 즉 일자리를 갖고 있느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각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보장할 수 있다.

여섯째, 경제성장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구매력을 높여줌으로써 고용 창출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일곱째, 육아와 노인 부양 등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의미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다. 예술단체나 공동체, 종교단체 활동의 참여 등이 대표적 예이다.

여덟째, 모든 사람들에게 소득에 대한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를 확장시킬 수 있다. 오늘날 수많은 지주와 기업가들은 별다른 경제활동 없이도 지대와 이윤, 이자의 형태로 소득을 누릴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시민권을 보장해줌으로써 누구나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라는 권리를 왜 부여하지 못하겠는가?

아홉째, 각 개인이 누려야할 존엄성과 자유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시민기본소득은 자신의 건강이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는 비참한 일자리에 대해 누구나 거부할 기회를 넓혀줌으로써 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준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에 더해 기본소득마저 누릴 수 있다면 그들의 생산성 자체가 올라갈 수 있다. 이는 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나는 한국에도 진지하게 이 제도의 도입을 권하고 싶다. 이미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지난 26년 동안 시행하면서 성공적인 경험을 했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80년대 초반부터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들은 해마다 동일한 ‘배당금’을 주고 있다. 초창기 300달러였던 그 액수는 지난해 2609달러까지 인상됐다. 그들은 지난 1976년 자연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의 일부를 떼내 모든 주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알래스카영구기금’을 만들었다. 그 돈으로 미국 정부의 채권이나 다른 나라의 기업 지분 또는 부동산 등에 투자한다. 80년대 초반 10억달러였던 기금 규모는 오늘날 400억달러로 불어났다. 알래스카주에서만 존재하는 시민기본소득은 미국의 전체 주 가운데 알래스카를 가장 평등한 주로 만드는데 큰 구실을 했다. 아마도 한국이 이런 문제의식에 빨리 눈 뜬다면 기본소득과 관련해 분명 아시아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해 257조원 들이면 ‘사각지대 없는 복지’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
‘기본소득 모델’ 한국 적용해보니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의 불씨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지난 2월‘모든 국민에게 즉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 한 권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기본소득 도입 전략을 다룬 연구 프로젝트의 첫번째 산물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2009년 기준)은 △39살 이하 연 400만원 △40~54살 연 600만원 △65살 이상 연 900만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 연 550만원씩의 수당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녀 두 명을 둔 30대 부부는 해마다 160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 기본소득 수령액은 해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늘어나게 된다.

불로·투기소득 세율높여 부족재원 메우고
현금지급형 복지예산, 기본소득으로 대체
“국민 90%가 이익…비정규직 해법 열릴것”

이 제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재원은 2009년 기준으로 대략 257조원. 2009년 예산 규모와 거의 맞먹는다. 보고서는 기존의 연금 및 실업급여 등 다양한 현금지급형 사회복지 예산을 모두 기본소득 지급으로 돌리고, 세원 양성화나 불로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으로 300조원이 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식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나 이자소득세 등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적어도 기본소득 제도를 유지하는 데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사각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복지전략이자, 불로소득을 조장하는 현재의 불평등한 조세체계를 뜯어고치는 조세 변혁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모델에 따를 경우, 우리나라 전체 국민 가운데 10% 정도의 고소득자 소득이 나머지 90%의 기본소득으로 이전돼 실업자와 노령층,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됐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이 제도가 새로운 실마리를 열어줄 것이라고 내세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은 “그간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나눌 경우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 때문이었다”라며, “기본소득이야말로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려는 압력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회계층과 연대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승협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기본소득은 공동체를 위한 활동 등 그간 가치 있는 노동으로 대접을 못받던 다양한 활동을 자연스레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특히 여성운동, 백수운동, 실업자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사이버공간으로도 옮겨붙었다. 지난 2월말 기본소득 제도에 관심을 둔 국내 연구자와 사회활동가, 노조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카페(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됐다. 이들은 조만간 각국의 기본소득 관련 단체의 연대기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한국지부를 결성하고, 내년에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정례행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들은 또 기본소득이 노동시간 단축과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별도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노동과는 분리된’ 기본소득을 공론의 무대로 올려 놓으려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결국 기본소득이야말로 일종의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국민 90% 이상이 이익을 보는 모델”이라고 강조한 뒤, “진보세력은 세금을 더 내더라도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은 새로운 분배 패러다임이자, 동시에 보다 광범위한 사회계층을 급진화·진보화시키는 진보세력 집권전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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