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된 과거의 일 같아서, 그 시점마저 제대로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라고들 얘기한다. 그게 언제였던가? 경제 하나는 확실하게 살리겠다는 후보가 등장했다. 당시엔 나름 획기적이라며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겠지만, 이 대목에서 정말 속편하게 논의해 보자. 사실 21세기 국제적인 경제 질서 틀 안에서, 대한민국 혼자서만 평년의 수준을 갑자기 뛰어넘는 7%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도 다들 그 유세언어에 귀가 ‘혹했다’. 그래서 수많은 국민들은 그 7%의 공약을 자신의 내일인 양 ‘희망에 가득 찬 기대치’로 선택했다.
그 한해 전에 뉴타운이라는 개발논리가 난데없이 울려 퍼진 바 있었다. 얼마나 환상적이었던가. 5천만 원이니 1억이니 하던 자신의 집 시세가 갑자기 ‘따블(double)’로 뛰어오를 것 같아, 일제히 목소리 큰 정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던 바 있다. 결과는 무엇이었나? 투표 바로 다음날부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이구동성의 오리발만 모든 언론에 일제히 도배되지 않았던가? 결론은 단순했다. 그 누구도 책임을 진 건 하나도 없었다. 남겨진 건 거짓의 피리소리에 남몰래 흥분했던 서민들이 벼랑 끝에서 느끼게 된 배신감뿐이었다.
뉴타운이 조성되어 그 입주민이 되고, 매년 7% 초고속 경제성장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국민! - 그렇게 환상적인 인생의 주인공이 모두들 자기 자신인 줄 알았다는 허상에 일정기간 취해 있었다는 것, 그건 이 시점에 이르러 분명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됐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감춰져 있던 진짜 본질이 무엇인지를 목숨으로 드러낸 이들이 등장했다. 바로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이 그들이다. 재개발로 재산을 증식하게 될 주인공이 아니라, 그 재개발을 위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야 했던 게 바로 민초들의 현실이었다. 거기에다 가족을 잃으면서도, 국가적인 무관심과 냉대를 1년이란 세월 동안 지난(至難)하게 마주대해야 했던 것이 ‘747’의 본질이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아직도 그런 공약이 유효한가? 물론 ‘경제위기’ 운운하는 가림막을 통해 유야무야 지워버렸다. 아니, 끝을 냈다. 그런 대답을 듣는 걸로 민초들의 선택마저 무마될까? 올해 복지예산이 어떤 내용으로 결론지어졌는지 잠시라도 살펴보면 단번에 답이 나온다. 글쎄, 앞으로는 나아질 바늘구멍이라도 존재할까? 그런 꿈은 빨리 깨는 게 빠를 것 같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묻고 대답할 필요도 없이 암담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냥 서민으로 생존하는 삶의 업보라고 빈 가슴만 내리치는 게 남겨진 전부인가?
지키지 못할 약속의 허물과 공허한 거짓언어에 지친 국민들은 대안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이미 국민적 공영시청권이 상실되어버린 TV 방송의 언어가 아닌, 대안의 언어를 찾아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이번 3월호 ‘만난사람’에서는 국민이 자신의 권리인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받아야 하는지, 국가는 국민한테 어떤 의무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기로 했다. 사회당 최광은 대표를 만나, 앞으로 멀고도 긴 길을 걸어야 할 국민들에게 어떤 대안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함께 듣고자 한다. 이번 만남의 키워드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Basic Income, Grundeinkommen, 基本所得)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임. 물가인상률을 반영하여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매월 지급하며,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노후 등의 기본복지와 함께 함.
기본소득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국제자문위원회 의장인 벨기에 루뱅대학 빠레이스(Philippe Van Parijs) 교수가 내린 기본소득 정의는 다음과 같음.
현물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는 소득 / 일회적 지급이 아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 / 국가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공동체 단위로도 지급할 수 있는 소득 / 세금을 통한 재분배 혹은 자원분배를 재원으로 하는 소득 / 개인을 단위로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 / 자산심사 없이 지급하는 소득 /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를 묻지 않고 지급하는 소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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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은 사회당 대표 ⓒ채지민 객원기자 |
- ‘기본소득’이라는 화두가 그 가치와 의미의 중요성에 비해, 용어 자체를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먼저 해주시면 좋겠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논의되기 시작한 건 2008년 무렵이었고, 작년 한해가 본격적으로 소개가 전개된 시점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한국에는 훨씬 늦게 그 내용과 가치가 전해진 셈이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말씀드린다면,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아무런 심사도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모든 가구 단위나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보장된다.”
“현실적인 상황을 본다면, 국가에 뭔가를 신청해서 무언가를 받으려면 까다로운 심사가 필요하지 않은가. 재산이나 소득 수준을 인정받아야 하고, 그 기준 여부에 따라서 일정 수준 이하에게만 한정적이고 선별적인 선택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게 지금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그런 조건심사가 하나도 없다.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지급하는 것이다.”
-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여러 제도와는 확연하게 다른 것 같다. 국가적인 심사가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노동연계복지’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그건 심사를 하지 않고 급여를 주되 조건을 보겠다는 뜻이다. 노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근로나 희망근로 같은 경우에도 급여를 주지만, 그것에 참여할 것을 전제로 하며 주는 게 아닌가. 기본소득은 심사도 없고 조건도 없다. 사회구성원 누구나 개인 단위로 지급한다는 것이, 다른 제도와의 기본적 차이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다.”
- 국민 누구나 혜택을 받는다면 자본가나 부유층들, 쉬운 말로 부자들도 그 혜택을 동등하게 받는다는 의미인가
“당연히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부자와 빈자를 가르는 데 자산심사라는 절차가 또 한편으로 동반되어야 하지 않은가.”
- 솔직히 말해서, 바로 그 대목이 기본소득의 정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가장 ‘애매한’ 부분인 것 같다. 이미 충분한 자산을 보유한 이들한테도 기본소득이 왜 지급돼야 한다는 건가
“일차적으로 모든 국민을 일대일로 본다는 게 기본전제가 된다. 가장 많은 문의를 받는 게 이 부분이기에, 이 자리를 통해 정리하며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 현재의 제도를 그대로 두고 기본소득을 일률적으로 지급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기본소득의 핵심적인 내용은 현재의 소득세나 재산세를 포함해서, 기존의 세제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꾸자는 개혁을 의미한다.”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만들어야 한다. 그걸 전제로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지급을 하는 거지, 기존의 부자들이 벌어들이는 것 모두를 그대로 묵인하면서, 새로운 재원을 별도로 마련하며 똑같은 기본소득을 준다는 건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게 아닌가. 실질적인 국가적 사회적 개혁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누구에게나’ ‘무조건’ ‘똑같이’와 같은 획일적 의미가 아닌 것이다.”
- 정리한다면, 기본소득은 무조건 그 제도를 시행하자는 게 아니라, 사전에 정비해야 할 법적인 세제개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뜻인가
“당연하다. 그 원리는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우리 모두는 1인 1표의 투표권을 동등하게 행사한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이라고 2표를 주거나, 돈이 많다는 이유로 투표권을 주지 않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것처럼 기본소득 또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보통선거권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인간의 기본 권리로 누릴 수 있게 지급한다는 것이 기존 제도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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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객원기자 | - 그렇다면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현재의 최저생계비를 대체하는 건가?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의미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지급수준의 문제로 질문되는 부분인데, 그건 재원을 어느 정도 마련하느냐에 따라 재원규모에 차이가 있게 된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기본소득의 모델에 따라서 그 편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3세계나 절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 같은 경우에,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극히 적은 액수를 줘도 생활에는 충분한 보탬이 된다.”
“세계 인구 60억 가운데 아직도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10억이 넘는다. 그런 사람들한테는 하루에 1달러, 매달 30달러만 줘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건 나라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전부 다 다르다. 임금수준도 다르고 사회적 최저생계비 수준도 전부 다르다. 따라서 각각의 나라에 맞는 적합한 모델을 설계해야 하고,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실제 지급되는 액수가 차이날 수 있는 것이다.”
- 다른 나라나 제3세계의 예를 든다면 여러 가지 변수가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당장 우리 자신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며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도입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진행될지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대략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가 공존한다. 하나는 기본소득만으로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할 만큼, 현재의 최저생계비 수준보다는 조금 높게 책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또 하나는 최저생계비 수준보다 조금 못하더라도, 일단 그런 낮은 수준이라도 지급을 하면서 시작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고 보는 입장도 있다. 기본소득은 무조건 단일한 모델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모델의 차이가 약간씩 있다. 내 생각은 기본소득만으로는 충분한 생활을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의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 최저생계비 이상이라면 당연히 찬성할 일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이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가 있는지를 묻고 싶다
“현재의 최저생계비 수준도 사실은 충분한 게 아니지 않은가. 한국의 현실에서는 최저생계비 계측의 문제점이라는 게 있다. 그렇기에 한국에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적어도 개인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 갖출 수 있는 수준은 돼야, 기본소득이 갖는 여러 가지 다양한 가능성과 사회적 변화를 꾀할 토대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내가 기본소득을 설명할 때 굉장히 다양한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들을 언급하곤 한다.”
“예를 들어 기존의 잔업·철야·특근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기본소득을 적절히 받고 그 시간을 줄여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그런 변화의 가능성들이 있는데, 그 액수가 너무 적게 되면 그런 변화들을 꾀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급이 되고, 거기에 따른 사회적 변화들을 많이 만들기에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개인적으로는 작년에야 처음으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됐다. 개인 판단으로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한편으로는 많은 분들이 우려를 하시는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이게 과연 현실화될까 하며 회의를 갖는 흐름이 적지 않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는지, 또한 외국의 예는 어떤지를 듣고 싶다
“기본소득이 유럽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는데, 지금은 전 지구적으로 많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기본소득은 어느 한두 나라의 운동이 아니다.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서, 지금은 제3세계까지 범위가 넓어졌을 만큼 다양한 나라들에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단순주장에 머무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걸 현실화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라는 중심조직이 있고, 그 안에 16개 나라의 가맹국이 있다. 한국은 작년 6월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올해 여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13번째 총회가 열리는데, 한국은 그 총회에서 17번 째 가맹국으로 승인을 받게 될 예정으로 있다. 이렇듯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체적인 운동인 것이다.”
- 현재 실제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브라질 같은 경우에는 지난 2002년에 시민기본소득 입법안이 브라질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았다. 이어 2004년 1월에는 전국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는 법안에 룰라 대통령이 서명까지 했다. 재원마련 부분만 확충이 되면, 이제 곧 시행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지고 있다. 국가 차원뿐 아니라 부분적인 실험들도 많이 있었다.”
“작년에 MBC 다큐멘터리에서도 처음 소개됐던 바 있는데, 나미비아라는 남아프리카의 조그만 나라가 있다. 그 나라의 오미타라라는, 인구 1천 명 정도 되는 조그만 마을을 선정해서 1년 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그 결과 실업률 감소, 범죄율 감소, 노동소득 증가 등 수많은 분야에서 굉장히 유의미한 결과들이 나왔다. 그래서 그걸 토대로 해서 이 제도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자는 운동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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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객원기자 | - 브라질 이외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어떤 진행상황을 보이고 있는가
“알래스카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알래스카는 석유자원이 풍부해서 가능하게 된 케이스이다. 일반적으로 석유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그 수익을 국가나 소수의 자본가들이 가져가고, 국민이나 주민들에게는 나누지 않는 게 보통 아닌가. 그런데 알래스카주 같은 경우는 70년대 석유개발로 인해 얻어진 수익 일부를 정립해서 기금을 만들었고, 알래스카에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 이익 배당을 균등하게 나누고 있는 중이다.”
“보통의 국가들에 있어서는 세제를 개혁해서 재원을 형성하고 나누는 건데, 알래스카는 석유로부터 얻어진 수익금을 나눈다는 점만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모든 개인에게,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똑같은 배당을 균등하게 실시하고 있다. 시스템은 약간 다르지만, 그 개념에 있어서는 기본소득와 상당히 유사한 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면 아시아권에서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있는지, 또한 실질적인 시행을 준비하는 지역이 있는지 알고 싶다
“그런 유사한 시도를 몽골에서도 곧 시행할 걸로 예상되고 있다. 액수는 아직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는데, 작년에 있었던 대선에서 각각의 후보들이 모두 다 기본소득 같은 개념의 제도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기에 시행이 멀지 않았다고 본다. 몽골은 소득수준이 굉장히 낮은 나라가 아닌가. 국민소득은 낮지만 지하자원 등을 가지고 거둬들인 수익 일부를 적립하고 기금을 만들어서, 모든 국민에게 알래스카처럼 균등하게 나누겠다는 계획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 그럼 그런 시도들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북유럽국가들처럼, 사회주의국가 또는 사회주의적 복지정책을 펼치는 나라들의 시스템과는 유형이 서로 다른 것인가
“북유럽 같은 경우에도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물론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그 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굳이 기본소득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한 복지가 확충되어 있는 사회가 맞다. 그런데도 그들 나라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왜 불거지게 됐는지, 여기엔 중요한 화두가 담겨져 있다.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고도 성장기는 그 나라들에겐 황금기라 불릴 만한 기간이었다. 그러나 황금시대가 지나간 이후, 유럽에서는 기본적인 틀을 유지한 상태에서 그 내용이 조금씩 바뀌는 변화가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같은 경우는 대학생들의 등록금이 모두 무료였지만, 일부 주들을 중심으로 등록금의 유료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액수는 한국의 대학에 비해서는 극히 적은 금액이지만, 기존의 사회적 복지가 변화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기존의 복지국가가 해체되거나 위기에 처해 있다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건, 실제 사회구조가 이미 변화의 틀 안에 들어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그런데 기본소득의 개념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던 게 있지 않은가
“물론 비슷비슷한 제도는 여럿 시행되고 있지만, 그 내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한국에서도 작년에 근로장려세제 즉, EITC(Earned Income Tax Credit)가 처음 도입이 됐다. 일정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에게 최대 연 12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준다는 제도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부부합산 연소득이 1천7백만 원 이하가 돼야 하고, 자녀가 반드시 1명 이상인 무주택 가구 단위여야 하며, 소득인정액이 얼마 이하만 해당된다는 식으로 복잡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물론 그 해당 계층 입장에서 보면 없는 것보다는 훨씬 혜택이 주어지는 거고, 그래서 없는 것보다는 낫다, 이렇게 접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제도만 가지고 차상위계층의 빈곤의 사각지대 문제를 전부 다 해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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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지민 객원기자 | - 그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은데, 대표님의 관점에선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는가
“이 세제의 여러 조건과 기준들은 기혼여성의 노동의욕을 확연히 떨어뜨린다. 독신자, 한부모가정, 자녀가 없는 부부들은 이 제도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 여기에 이중지원방지 원칙에 따라 기초생활수급권자들도 추가로 배제가 되는데, 이는 빈곤층이 차상위계층으로 편입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을 눈에 보이지 않게 수행하는 것이다.”
- ‘빈곤층이 차상위계층으로 편입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는 표현이 상당한 여운을 남긴다.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식의 굴욕적인 표현마저 가능하게 된 지금의 현실에 적지 않은 분노를 느끼게 될 게 분명한 일이다. 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인가
“복지정책이라는 건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라는 두 가지로 나눠진다. 요약한다면, 보편적 복지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권리적 성격으로 부여된 복지라서, 현금으로 지급돼야 한다는 그 책임이 사회에 있다. 반면에 선별적 복지는 일정한 조건에 맞을 때에만 지급되는 혜택이기에, ‘심사’라는 방식으로 대상자에게 증명책임을 요구한다. 개인은 수급을 받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자격심사를 위해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여 그 내용을 증명해야 한다.”
“현금급여는 시혜가 아니라 대상자의 분명한 권리가 아닌가. 그런데도 심사과정이 정작 대상자들에게는 징벌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정보공개와 증명 같은 과정은 대상자의 다른 기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복지’라는 말의 뜻이 삶의 질 향상을 의미한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이 부분은 정말로 큰 결점일 수밖에 없다.”
- 제도를 시행할수록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선별적 복지가 가진 또 하나의 문제가 바로 사각지대를 반드시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낭비적인 비용과 심각할 정도의 인권침해 없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사정에 맞는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점은 명분에 대한 모순으로 작용한다. 즉, 복지의 제공에 있어서 심사와 선별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명분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복지를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선별적 복지가 정당화될 수 있는 요건은 ‘결과적 보편성’인데, 이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사각지대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선별적 복지의 시행을 위해 엄격하게 강화된 심사와 관리는 개인에 대한 통제로 작용하며, 복지재정의 상당 부분이 통제 및 관리제도의 유지에 쓰일 수밖에 없다. 선별적 복지가 결과적 보편성을 실현하게 된다는 건, 철저한 통제체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이렇듯 보편주의에서 벗어난 복지관(觀)은 복지를 사회구성원에 대한 통제의 수단으로 적용하게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 이런 부작용과 역작용이 단지 우리나라에 한정되는 건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거나 똑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이후로 유럽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거기에 대한 대안적 논의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미국 중심의 논리인데, 복지국가 기존의 위기를 워크페어(Workfare)라는 노동연계복지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게 대안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하나는 노동과 연계하지 않은 기본소득구상과 같은 논의의 흐름이 있다.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기존 복지제도의 문제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노동 고용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유럽이나 미국 모두 실업률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뉴스에서도 올해 초 실업급여신청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나. 실업 증가의 심각성은 이게 일시적인 추세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경기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고용과 관련된 장기적인 지표들을 살펴보면 대표적인 지수들이 일제히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지수인 고용유발계수와 취업유발계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에서 마련하는 일자리 대책은 무엇인가. 시행기간이 금방 끝나는 사회적 일자리나 희망근로 인턴제 같은 단기적 대책이 전부 아닌가.”
- 기본소득의 논의가 국가와 사회 전반의 모든 문제와 연관되며 광범위해진다는 게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는 것 같다. 결국은 안정된 노동이 필요하고, 실질적인 내용을 담은 대안적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장기적으로 보면 고용문제가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분명하다. 노동과 연계시키거나 노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걸 가정한다면, 노동 기회로부터 박탈되거나 노동을 하더라도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문제는 도대체 어떤 제도로 해결해야 하는 건가.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자동화생산의 진전은 필연적으로 노동에서 소외되고, 노동을 해도 빈곤할 수밖에 없는 다수를 양산하게 된다. 그런 다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결국 기본소득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끊고, 정치적 국민주권의 1인 1표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기본소득의 의미와 중요성은 이 대목에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회당의 대표로서, 이 제도를 바라보는 주위의 반응과 앞날은 어떨 것이라 전망하시는가
“국민주권과 같은 기본권의 권리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추세에 발맞춰서 이 제도를 공론화하는 데 작년부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사회단체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공론화에 노력한 결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작년의 큰 성과인 기본소득국제학술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한 것도 언론을 통해 널리 소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기대 이상으로 의외의 분들이 관심과 호응을 많이 보내주셨다는 점이다. 바로 일반시민들의 호응이다. 이는 기본소득의 공론화와 도입을 위한 커다란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 실상 가장 중요하고도 무엇보다 현실적인 질문이 될 텐데, 이런 대담 내용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재원마련’이라는 부분이다. 기본소득 시행에 필요한 비용 규모가 상당할 거라 예상되는데, 그 대안은 어떻게 마련하고 계신가
“한국의 기본소득 운동은 ‘새로운 재원’에 대한 논의를 반드시 포함한다. 이 땅의 복지현실을 고려할 때 기존의 현금지급형 복지를 전부 통폐합하여 기본소득으로 전환한다 해도, 최저생계비에 크게 못 미치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본소득 운동은 새로운 재원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합의를 하고 있다. 바로 투기불로소득 중과세와 부자 증세이다. 부자 증세는 현 정권의 부자 감세와 명확히 대비된다. 그런데 현실적인 판단으로 부자 증세는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규모의 확보를 위해 불로소득 중과세를 중요 재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과세를 통해 투기불로소득을 근절하고 금융시장 자본주의를 통제하며, 신자유주의 극복에 이바지하면서 소득 재분배의 효과까지 모두 얻을 수 있다.”
“기본소득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기 위한 모든 재원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투기불로소득을 근절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 모두가 안정적인 기본소득의 수혜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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