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이갑영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기호일보 2009-05-18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브라질에서 실시되고 있는 소득지원프로그램이다. 2003년에 도입될 때는 350만 가구만 혜택을 입었으나 이후에 지속적으로 늘어나 1천130만 가구에 전체인구의 1/4인 4천500만 명을 끌어안고 있다니 놀랍게 확대되고 있다. 처음에는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비와 식료품비를 지원했으나 점점 인종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물론 브라질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포함해 아무런 사회경제적 조건을 묻지 않고 지원하기로 입법예고한 상황이다. 일자리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소득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삶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일하지 않은 사람도 먹고 살 권리가 있다’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유럽에서도 확산되고 있는데, 종래에는 소수의 급진적인 사람들만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공간과 이념을 넘어 진지하게 탐색하고 토론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자본의 폭력과 억압에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들,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을 근본에서 바라보려는 것이다. 당초 기본소득제도는 실업인구가 늘어나고 고령화가 진행하자 당연히 기존의 복지제도가 재정 부담에 허덕이게 되면서 탈출구의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했었다. 복지체계를 단순화해서 관리비용을 줄이는 대신 기본소득으로 돌려주겠다는 의도였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소득을 나누어 주고나면 이제 모든 책임은 정부가 아니라 개인에게 넘어가는 위험이 수반될 수도 있고, 자본주의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수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우파들의 계산이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좌파들은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건드리지 않고 도입할 수 있으며, 일단 도입되고 나면 자본주의 사회를 파열 내는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불로소득이나 투기소득에 대한 과세에서 마련하면 상당한 저항도 있겠지만, 일단 도입되면 설사 우파정권이라도 기본소득제도를 후퇴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노총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모든 국민에게 즉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형기본소득모델은 2009년 기준으로 약 257조 원이 필요하다. 즉 39세 이하는 연간 400만 원, 40~54세는 연간 600만 원, 65세 이상은 연간 900만 원 그리고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은 연간 550만 원씩 기본소득을 나누어 주자는 제안이다. 자녀가 한 명인 40대 부부라면 연간 1천600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에 필요한 약 257조 원은 국가예산과 비슷한 규모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복지예산을 전환하고, 불로소득 세율인상과 세원을 양성화하면 재정마련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기본소득제도는 무엇보다도 완전고용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스스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어서 고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어김없는 자본주의의 인구법칙이다. 따라서 일자리와 연계된 소득이나 복지는 그늘을 만들 수밖에 없고, 기본소득을 제공해서 그들의 삶을 지켜주어야 한다. 물론 기본소득제도가 자본주의 울타리 안에서 사고하는 것이라고 애써 외면하거나 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역사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중들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당장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 그것은 反(반)자본주의 투쟁의 신호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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