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으로 임금노동사회 혁신을
최광은 / 사회당 대표,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2008년 이후 세계적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신자유주의의 수탈적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부자 감세 정책, 탈규제 정책, 시장화 정책 등으로 경제 위기의 고통은 노동자, 서민에게 더욱 가혹하게 전가되고 있다. 또한, 비자발적 실업자,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가사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 등 수많은 종류의 그림자 노동 종사자, 신용불량자, 노숙자, 빈곤 노인 등 수많은 대중이 경제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이들은 임금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을 기회를 아예 얻고 있지 않거나 있다 하더라도 일시적 혹은 부분적으로 얻고 있을 뿐이다.
경제사회로부터 배제된 수많은 대중
자본주의가 임금노동자뿐만 아니라 실업자도 함께 만들어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주의에서 완전고용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다만, 완전고용에 조금이나마 다가섰던 짧은 시기가 예외적으로 있었을 뿐이다.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고 고용률이 높아지던 예외적인 시대도 지나갔다. 기술 혁신과 산업 재편성이 일자리를 없애는 속도가 생산 자본의 확대로 추가 고용이 창출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고용 없는 성장’이 지배적인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노동시장 활성화 정책도 고용 축소를 만회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시장 활성화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정책과 쌍을 이루어 추진되기도 한다. 노동시장 활성화 정책은 기본소득이 보장될 때에만 비로소 경제 구조 전환이나 산업 재편을 앞당기는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경제적 배제 극복의 핵심 대안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자산소유자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국가와 사회의 시혜나 동정을 제외하면, 소득의 원천은 오직 임금노동뿐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 그런데 일자리는 늘 부족하거나 불안정하고, 따라서 소득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모두에게 충분한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비록 임금노동의 기회로부터 배제되었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더라도 소득의 불안정성은 확연히 줄어든다.
실업과 불안정 노동이 대중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초유의 시대에, 기본소득은 대중의 경제적 배제를 극복하는 핵심적인 대안이다. 일자리가 없거나 노동을 통하여 사회구성원으로 생활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노동과 연계되지 않은 소득, 즉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완전고용 상태라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법한 기존의 복지 체계를 혁신하여 임금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도 생계에 필요한 충분한 액수의 소득을 제공하는 것이다.
임금노동사회를 혁신하는 기본소득
고용 불안정이 소득 불안정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은 기본소득의 의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기본소득은 생산 영역으로부터의 배제를 인정한 채 소비 영역에 의한 재통합만을 꾀하는 소극적 대안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사회 자체도 혁신할 수 있도록 한다.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 사회적 의미 혹은 자아 만족을 찾기 어려운 노동에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벗어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임금노동사회의 혁신을 불러오는 동력이 된다.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자의 처지를 개선하는 대안이자 일자리를 만드는 대안이기도 하다.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를 보장하는 충분한 액수의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산업재해 위험 속에서 굳이 무리하게 잔업, 철야, 특근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비자발적 노동이나 과잉 노동도 줄어들어 노동시간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일자리 나누기 혹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진다. 기본소득은 또한 노동조합운동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생계를 보장하는 충분한 액수의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노동시장에서 개별 노동자의 교섭력은 높아진다. 이는 다시 노동조합 자체의 교섭력을 높인다.
임금노동 외부를 창출하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또한 임금노동의 형태를 벗어난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이 등장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임금노동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여러 활동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기본소득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노동을 보다 활성화하는 토대가 된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노동의 사회적 형태와 성격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의 질적 변화도 촉진한다.
노동의 사회적 형태가 임금노동으로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전개된다면, 임금노동으로부터의 배제는 임금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은 노동 개념을 전환하고, 임금노동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동력이다. 우리가 임금노동 형태에 기초한 완전고용 사회가 아니라 보다 해방적인 새로운 사회를 꿈꾼다면, 기본소득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강력한 지렛대다.
임금노동의 지배를 넘어 새로운 사회로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모든 사람을 임금노동자로 만드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가능한가. 원하지 않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임금노동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임금노동과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를 우리는 언제 어떻게 꿈꿀 수 있는가.
아직도 완전고용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어야만 하는가. 아니면 배제 없는 사회, 노동의 창조적 전환, 임금노동사회의 혁신을 앞당겨야 하는가. 완전고용은 실현 불가능한 가상이고, 기본소득은 임금노동사회를 혁신하고 모두의 삶을 보장하는 현실적 대안이다. 전자는 임금노동에 기초한 낡은 사회의 최대 이상이었다. 후자는 임금노동의 지배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거대한 전환이다.
기로에 선 노동자운동,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노동자운동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국가와 자본의 탄압만이 노동자운동을 위기로 내모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은 스스로 임금노동사회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임금노동사회 혁신에 나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임금노동사회 혁신을 선택한다면, 기본소득을 비켜갈 수 없다.
‘연대’만 내세워 지금의 위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연대’는 분명히 ‘시혜’나 ‘동정’보다 우월해 보이는 가치이지만, 좀 있는 노동자가 좀 없는 노동자와 무엇을 나누고 그냥 함께 한다고 사회가 본질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가치는 필요조건일 수 있으나 구조 전환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노동자운동이 모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보편적인 투쟁에 관심이 있다면, 구조 전환의 고리를 찾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있다. 기본소득!
“여기가 로도스 섬이다, 지금 뛰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