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강좌 준비모임’이 주최한 두 번째 기획강좌가 15일 오후 6시30분 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교육장에서 열렸다.
이날 강좌는 ‘기본소득의 효과와 재원마련’이라는 주제로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는 강남훈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강의로 진행됐다.
기본소득 재원은 불로소득 과세로
강남훈 교수는 자신이 설계한 기본소득 모델을 소개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연령대별로 차등을 두어 1인당 연간 0~19세 300만원, 20~39세 400만원, 40~54세 500만원, 55세 이상 600만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215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기본소득 자체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25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필요예산 25조원은 기존 교육비 예산 및 국민건강보험에 각각 15조원과 10조원으로 추가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필요한 예산은 약 240조원 정도라는 것.
그렇다면 이 막대한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 강남훈 교수는 “이자, 배당, 증권양도소득 등 불로소득에 대해 30%의 세율로 과세하고 토지세, 환경세 등을 통해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조세 변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근로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에 대해서는 현재 세율 유지를 통해 합리적 명분을 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남훈 교수는 “조세 변혁은 어차피 진보세력이 불로소득계급과 치러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며, “어떤 명분과 정당성으로 국민적 동의를 얻어 이길 것인가의 문제에서 기본소득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례와 실험, 그리고 좋은 효과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과 관련한 다양한 외국의 사례와 실험을 소개하며, 경제는 물론 모든 측면에서 좋은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미 1976년부터 천연자원의 채취로 발생하는 수입을 영구기금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는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지니계수가 낮은 평등한 주라고 말했다. 또한 1970년 미국에서 기본소득 형태의 제도가 실제 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상원 위원회에서 부결되는 일도 존재했으며, 이후 그 제도와 관련한 대규모의 실험을 진행한 결과가 아직도 토론되고 있다고 밝혔다.
나미비아에서는 오미타라 주민을 대상으로 현재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 중이라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제출된 중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율, 실업률, 범죄율이 모두 감소하고 실제 기본소득 이상으로 소득이 증가하고 고용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기본소득 논의가 가장 활성화돼 있는데, 전체 국민의 60%가 기본소득을 찬성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우파 정당에서 좌파 정당까지 매우 다양한 기본소득 모델이 제출되고 있어 그에 대한 지지도 나누어져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만약 독일이 기본소득을 시행한다면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도 분명히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브라질은 2010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제도를 실시한다. 다만 인기는 많지만 더 이상 재임할 수 없는 룰라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앞으로의 지속 여부도 관심사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일회적 선심성 급부를 쿠폰 형태로 제공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기본소득과 별 관련이 없고, 오히려 현재 일본민주당의 교육공약에 출산수당과 어린이수당 등의 정책이 있는데 이것이 시행된다면 기본소득 논의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이 내수 중심 경제, 산업구조 고도화, 친환경 경제, 중소기업 중심 경제, 지역 균형 발전 등 경제 구조를 바꾸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정규직, 자영업자, 저출산, 자살, 노인, 여성, 농업, 이주노동자 등의 문제에 대해 “별도의 해법이 필요한 문제들이지만 기본소득의 도입은 보다 쉬운 해결을 가능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진보정치세력의 집권 전략 돼야
기본고용인가, 기본소득인가. 고용보장인가, 소득보장인가.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면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소득의 핵심 논리 중 하나이다. 강남훈 교수는 좌파 케인즈주의자인 제임스 미드를 인용, “현재 수준에서 가능한 완전고용은 최저계층이 매우 비참해지는 상태”라며 역설적으로 “기본소득은 비참하지 않은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본소득을 노동과 연계된 전통적 복지와 비교 설명하며 “분배효과는 기본소득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유인 감소 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소득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고, 노동공급 감소는 확실하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훈 교수는 “보수세력, 자유주의 개혁세력이 할 수 없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며 “기본소득은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할 때만 가능한 제도”이므로 불로소득계급과 제대로 한 판 싸우기 위해 기본소득은 충분한 집권전략이자 무기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극렬한 조세저항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부세 도입으로 조세부담률 1%를 올리고도 결국 무효화되고 죽임을 당했다”며, “수십년간 1%씩 올리는 것이 쉬운가, 한꺼번에 올리는 것이 쉬운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재원 마련 방안에서 자본의 생산수단 사적 소유 문제를 제기하며 법인세를 인상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옳은 방향 아닌가라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 “기본소득 도입 시 예상되는 자본과 기업의 악선전, 자본파업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은 지구적 기본소득운동,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 사회주의 이행기 전략으로서의 가능성을 모두 담고 있다”며 “기본소득네트워크 카페(http://cafe.daum.net/basicincome)에 가입”해 줄 것을 당부했다.
기본소득 기획강좌 마지막 3강은 2010년 1월12일(화)에 ‘기본소득 논의의 흐름과 쟁점들’을 주제로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인 사회당 최광은 대표가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