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강좌 준비모임’이 주최한 세 번째 기획강좌가 12일 오후6시30분 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교육장에서 열렸다.
‘기본소득 논의의 흐름과 쟁점’을 주제로 한 이번 강좌는 작년 11월과 12월에 진행된 1, 2강에 이어 마지막 순서로 열린 기획강좌로 최광은 사회당 대표가 강연했다.
현대적 기본소득 논의의 점화
최광은 대표는 자신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이자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평생회원이라고 소개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아울러 올해 6월30일부터 7월2일까지 브라질에서 열릴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13차 총회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도 승인을 받아 17번째 가맹국이 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적 기본소득 논의는 1980년대 중반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 결성을 전후로 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광은 대표는 “자본주의와 빈곤, 실업, 사회적 배제, 경제 위기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기된 것이 기본소득 아이디어”라며, “공화주의, 사회주의, 자율주의 등의 정치철학적 전통들에 의해 꾸준히 모색”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기존 복지국가의 위기 속에서 완전고용이라는 신화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기본소득이 부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소득보장에 있어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와 같은 대표적인 노동연계복지(work-fare)의 좁은 대상범위와 사각지대 문제에 대해 비판적 대각을 이루며 부상한 것이 비노동연계복지(non work-fare)인 기본소득”이라며,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EITC를 근로장려세제로 고쳐 부르고 있는데 노동연계를 의식적으로 강조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형태의 ‘비노동연계복지’인 ‘사회적 지분급여’에 대해서는 “어떠한 심사나 노동요구 없이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매월 지급되는 것이 기본소득인데 반해 사회적 지분급여는 성인이 되면 전체 금액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것”이라며,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은 같지만 가장 크게는 탕진의 우려가 있는 지급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지구적 차원과 한국에서의 흐름
최광은 대표는 기본소득의 제도화와 관련된 최근의 국외 사례 및 시도를 간략히 소개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2009년 초 한 여성이 제기한 기본소득 입법 청원이 5만 명이 넘는 온라인 서명으로 성사돼 독일 연방하원 의회에서 공식 의제로 채택, 논의를 앞두고 있다. 또한 작년 9월 독일 총선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후보가 100명 넘게 출마해 30명 정도가 당선되기도 했다.
올해부터 시민기본소득을 시행하는 브라질과 작년까지 2년간 기본소득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한 나미비아는 그나마 알려진 사례들이다. 세금이 아닌 천연자원을 통한 재원확보 측면에서 예외적일 수도 있지만 석유로부터 생기는 이익으로 영구기금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배당하는 미국의 알래스카 주와 역시 자연자원의 수익으로 2010년부터 기본소득 지급을 시도하고 있는 몽골도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2009년에야 비로서 기본소득 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2009년 초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의 기본소득 프로젝트 보고서가 발간되고, 2월에 기본소득네트워크 카페(http://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됐다. 이후 2009년 내내 각종 토론회와 강연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사회당은 2009년에 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하고, 기본소득 부속 강령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를 위하여]를 채택했다. 올해 1월27~29일에는 서울 서강대학교에서 14명의 국내외 발표자들이 참여하는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최광은 대표는 각종 지표와 자료를 통해 한국의 복지 및 고용 현황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며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심각한 고용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또한 2010년부터 시행되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의 활동능력평가 항목별 기준표를 소개하고 “수급 대상자가 되려면 외모가 혐오감을 주거나, 심한 냄새가 나야하고, 철에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옷이 늘 더러워야 하고, 산만해서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해야 한다”며 “모멸감과 수치심을 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평가 기준은 기네스북에 올라갈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주요 비판 논리와 쟁점
최광은 대표는 기본소득에 대한 주요 비판 논리와 쟁점을 소개하며 반박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제기 되는 것 중 하나인 노동 윤리의 문제에 대해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누가 일을 하겠냐는 것인데 이것은 다양한 실례를 통해 실증적으로 논박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정적-정치적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세제개혁을 통해 충분한 재원확보가 가능하다는 검토를 마친 상태”라며, “정치적 실현의 문제야 어떠한 진보적 정책도 마찬가지인 상황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대안사회로의 이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본소득은 많은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을 뿐 분명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트로이의 목마’ 비유를 들어 “성을 함락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만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이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시행된 것이라는 황당한 오해가 있다고도 말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만이 ‘부의 소득세’를 주장한 것을 두고 생긴 오해 같은데 그것은 기본소득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개념”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본소득 실현을 가능하게 할 주체 형성 전략이 비어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인상비평 수준이어서 구체적인 논쟁으로 발전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최광은 대표는 “기본소득과 기본복지는 결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 발전하는 관계”라며 사회공공성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의 사회임금, 새사연 손석춘 원장과 현재 진보개혁진영에서 추진 중인 전국민고용보험 및 실업부조에 대해 “생산적인 논쟁이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는 정책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외에도 남아 있는 쟁점으로 기존 사회보험의 재편과 연금 수혜자 문제, 충분한 기본소득의 수준 등을 언급했다. 최광은 대표는 “사회적으로 논의가 성숙해져 어떤 기본소득 모델을 도입하느냐에 달린 문제들”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본소득 도입으로 최저임금 인하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콤비임금 논쟁이 있다”며, “우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과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 노예제 폐지, 20세기 보통선거권 확립
21세기는? 기본소득 실현!
최광은 대표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국제위원회 의장이자 현대적 기본소득 논의의 선구자인 벨기에 판 빠레이스 교수의 말을 소개하며 기본소득의 의의에 대해 역설했다. “인류는 19세기에 노예제 폐지로 동등한 인간 선언을 이뤄냈고, 20세기에 보통선거권으로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확립했다”며, “21세기 동등한 사회경제적 권리 획득은 기본소득 실현으로 가능하다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본소득과 기본복지의 관계를 묻는 청중의 질문에 “기본소득으로 통합되는 현금 지급 부분이 있고 의료, 주거, 교육, 보육, 노후 등의 현물 지급 기본복지와 대표적으로 장애인과 같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복지 영역을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 노동운동가는 임금노동형 완전고용에서 사회적 필요노동으로의 전환, 노동 중독 및 노동 강제에서 노동 향유로의 전환, 임금 개념과 체계의 변화 등 기본소득이 가져올 노동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최광은 대표는 “처지에 따라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여성, 실업자 등이 상대적으로 기본소득에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노동자운동과 기본소득의 관계는 더욱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한 과제가 많다”고 밝혔다.
최광은 대표는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 대한 많은 관심과 울산에서도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결성되길 바란다는 당부로 강연을 마쳤다. 세 번에 걸친 기획강좌를 마친 ‘기본소득 강좌 준비모임’은 향후 울산에서의 기본소득운동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