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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소득 서울선언 기자회견 모습 지난 1월 27일 오전 10시 서강대 다산관에서 개최된 기본소득 서울선언 기자회견에서 브라질 노동자당의 수플리시 상원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 사회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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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수플리시(Eduardo Suplicy) 브라질 노동자당 상원의원. 그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명예 공동의장이기도 하다. 그에게 어떤 수식어가 어울릴까. '기본소득 홍보대사', '기본소득의 사도 바울'. 무엇이 적당한 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지난 1월 27일과 28일 서강대에서 열린 서울 기본소득 국제대회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작년에 그의 기본소득 관련 각종 발표문과 책을 읽고, 그가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기본소득의 세계적인 확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번 대회가 더 빛나기 위해서는 그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용감하게 연락을 취했다. 너무 바쁜 분이라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한참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수플리시 의원, 판 빠레이스 교수를 '미끼'로 낚다
기본소득이란? |
"기본소득은 정부가 어떤 수급자격이나 요구조건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지급한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지급되며, 최저생계비 이상 수준으로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출처: <한겨레21>(2010.2.8) | 그러던 어느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국제위원회 의장인 판 빠레이스 벨기에 루뱅대 교수가 힌트를 줬다. 수플리시 의원이 이용하는 다른 이메일 주소 두 개를 알려주면서 자신도 이번 대회에 발표자로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보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정중한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낚시'는 성공했다. 드디어 답장이 왔다. 그 뒤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와도 몇 번 이메일을 주고받았지만, 그의 보좌관 네이시와 이메일을 수십 차례나 주고받으며 대회를 준비했다.
1월 29일 저녁 7시 사람연대, 사회당, 대학생사람연대, 사회대안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한 수플리시 의원 초청강연회에서 사회를 보던 나는 그에게 고백을 했다. 판 빠레이스 교수가 그를 초청하기 위한 '미끼'로 이용되었던 것이라고. 그는 실제로 그랬다며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 두 사람은 이른바 '절친'이다. 수플리시 의원의 발언 가운데 판 빠레이스 교수가 언급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1월 28일 저녁 이틀간의 공식 국제대회 행사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판 빠레이스 교수는 수플리시 의원을 응시한 채로 마무리 인사말을 하면서 "다 내 탓이다"라는 말을 수차례나 연발했다. 수플리시 의원을 이토록 기본소득에 푹 빠지도록 만든 게 자기 탓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몇 해 전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겪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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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플리시 상원의원 초청강연회 지난 1월 29일 사회당 등 네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수플리시 상원의원의 초청강연회에서 최광은 사회당 대표가 질문을 하고 있다. |
ⓒ 사회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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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홍보를 위해 항상 준비된 수플리시 의원
당시 판 빠레이스 교수는 수플리시 의원과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추자 한 아이가 달려와 손을 삐죽 내밀었단다. 수플리시 의원은 늘 그랬듯이 지갑을 열어 주섬주섬 돈을 챙겨 아이에게 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인사를 꾸벅 하고는 금방 달아나려 하자 그는 아이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라, 애야. 이것도 가지고 가렴!"
그 짧은 순간 그는 손을 차 뒤로 내밀어 무언가를 집었다. 기본소득을 홍보하는 유인물이었다. 아이 손에 그 유인물을 꼭 쥐어준 그는 이렇게 말했단다.
"이거 가져가서 부모님이나 주변 분에게 꼭 보여드려라!"
그가 어디 그 아이에게만 그랬을까. 나는 공항에서 그를 마중하는 순간부터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함께 마중을 나온 브라질 대사관 직원 분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에, 이번 대회 때 자신과 판 빠레이스 교수가 발표하는 걸 브라질 대사도 들었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브라질 대사는 상무관 등을 대동하고 대회 첫날인 27일 오후 수플리시 의원이 발표하는 세션을 듣기 위해 진짜로 왔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도 화제는 기본소득이었다. 그는 함께 마중을 나갔던 한동성 사회당 정보기술국장을 붙잡고는 숙소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기본소득 개인 교습을 했다. 숙소에 들어가서도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발표문을 검토했는데, 몇 군데 정정할 것이 있다며 그걸 기어이 정정하고 수정본을 이메일로 다시 보내고 나서야 마중은 끝났다. 지구 반대편에서 오느라 수십 시간을 비행기 속에서 보내 몹시 피로했을 테지만, 그는 기본소득 이야기를 할 때는 전혀 피곤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Blowing in the Wind"를 밥 딜런보다 더 많이 불렀을 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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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노동자당의 수플리시 상원의원 브라질 노동자당의 수플리시 상원의원이 지난 1월 27일 서울 기본소득 국제대회 첫째날 행사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 사회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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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7일 발표 시간에 그의 활발한 손짓과 몸짓, 놀라운 의성어와 의태어에 약간의 신선함과 약간의 충격을 받았을 법한 많은 청중은 28일 종합토론 시간 그의 마지막 발언에 이은 그의 노래에 또 한 번 자지러지며 환호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였다. 2006년에 나온 그의 책 <시민기본소득>에도 이 노래 제목이 부제로 실려 있다. 그는 3절까지 다 불렀다. 중간에 추임새도 살짝 집어넣었다. 나중에 어떤 분들은 그가 밥 딜런보다 노래를 훨씬 잘한다고 치켜세웠다.
1월 29일 저녁에 있었던 초청강연회에서도 그는 이 노래를 불렀다. 1월 30일 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 행사에서 내가 사회당 대표 자격으로 축사를 마친 다음 곧바로 축사를 하러 올라온 그는 예상보다 훨씬 긴 축사를 했다. 축사를 끝내고 대회장을 함께 빠져나올 때 그는 희끗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노래까지 했어야 하는데,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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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플리시 의원이 직접 부른 "Blowing in the Wind" |
ⓒ 최광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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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62475
결국 그는 이날 축사 대신에 축사로 포장된 기본소득 연설을 한 셈이었다. 연설 도중 그는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 슬쩍 눈길을 주었다. '어때 나 잘하고 있지?'라는 의미로 읽혔다. 나왔을 때 그는 진짜로 내게 물었다. 흐뭇한 미소까지 머금으며.
"내가 기본소득 이야기할 때 요점을 빠뜨린 게 있나요? 통역은 멋지게 잘 되었나요?"
그는 지난 1990년 브라질 노동자당 최초의 상원의원이 되었다. 이때 그는 상파울로 주 유권자의 30% 가량 되는 422만9706표를 얻었다. 1998년에는 유권자의 43%인 671만8463표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고, 2006년에는 유권자의 47.82%인 898만6803표를 얻어 3선까지 성공했다. 브라질 상원의원의 임기는 8년인데, 그의 이번 임기는 2015년 1월까지이다.
많은 표를 얻었던 만큼 그는 말도 많이 했다. 그는 브라질 역대 최다 상원 연설 기록 보유자다. 그의 첫 번째 임기동안 이 기록을 세웠는데, 무려 1202회다. 한 해에 150회 가량, 공휴일만 빼도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의회 연설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그는 230건의 정보공개 청구와 23개의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2004년 1월에 룰라 대통령이 승인한 '시민기본소득법'도 그가 기초한 것이었다. 당시 그 자리에는 판 빠레이스 교수도 초대되었다.
최다 상원 연설 기록 보유자 수플리시 의원
1월 30일. 그가 한국을 떠나는 날이다. 호텔 지하 상가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함께 먹었다. 그는 5박 6일간이나 한국에 머물렀지만, 바쁜 일정 탓에 서울 바람을 한 번도 쐬지 못했다. 행사장을 이동하면서 남대문 시장에 잠시 들러 눈구경만 한 것이 전부다.
이제 마지막 쇼핑의 기회가 남았다. 커피가게 옆에 슈퍼마켓이 있었다. 구경 좀 하고 오겠다던 그는 결국 무언가를 샀다. 속옷 몇 벌과 양말 몇 컬레, 그리고 손톱깎이였다. 시식 코너의 빵도 한참을 서성이며 주섬주섬 주워 먹었다. 공항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갔던 브라질 대사관 상무관은 이렇게 말했다.
"의원의 그 소탈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답니다."
수플리시 의원의 전 부인인 마르타 수플리시도 상파울로 시장과 관광장관을 역임한 브라질 노동자당의 유력 정치인이다. 사실 두 사람 모두 브라질 노동자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적이 있다. 상무관에게 애꿎은 질문을 다시 던져보았다.
"상파울로에서는 두 분 중에 누가 더 인기가 많은가요?"
"근데, 저는 리오데자네이로 출신이라 잘 모르겠네요."
현답이었다. 다시 공항으로 출발하는 길이다. 가는 길에 수플리시 의원은 한국에 있는 동안 수단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본소득 강연을 위해 조만간 수단에 가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1월 29일 초청강연회에서 나는 수플리시 의원이 다녀온 나라들을 쭉 열거하면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혹시 안 가보신 나라가 있나요? 있다면 어디를 가보고 싶으신가요?"
"아직 좀 남았습니다. 나미비아, 몽골 등도 가보고 싶네요."
나미비아는 기본소득 시험 프로젝트가 2년 동안 진행되었던 오미타라 마을이 있는 나라이고, 몽골은 알래스카영구기금 배당 모델을 본뜬 기본소득 제도가 곧 실시될 예정인 나라다. 그가 별도로 가보고 싶은 나라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본소득과 관련된 요청이 있는 곳이라면, 기본소득과 관련된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가야만 할 곳으로 보이는 듯 했다.
수플리시 의원이 마지막 공항 문을 나서기 전에 나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는 천천히 큰 글씨로 종이 한 장을 이렇게 다 채웠다.
"서울 기본소득 국제대회에 참여한 것은 훌륭한 기회였습니다. 시민기본소득이 가능한 빨리 한국과 브라질 모두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합시다." |